[한국소설] 운 정
2024.08.13 14:53
운 정
성민희
맏딸이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이다.
“아버지, 아버지! 저 골목 입구에 엘리트 세탁소 간판이 바뀌었어요.”
가끔 반찬을 해다 나르는 딸이 기이한 장면이라도 본 양 목소리를 높인다. 남의 세탁소 이름이 바뀌든지 말든지 뭔 상관이람. 심드렁한 김 씨의 표정에 대고 딸이 또 한마디 한다.
“주인이 한국 사람으로 바뀌었나봐요. 간판이 ‘운정’으로 변했어요.”
운정이라는 말에 김 씨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운정? 운정이라켔나? 운정이라는 말이 흔치 않은데? 한자로 우째 썼더노?”
“아이고, 아버지도. 미국에서 무슨 한자를 씁니까? 영어로 쓰지요. 더블유 오 오 엔 제이 유 엔 지 라고 좌악 붙여서 써놨죠.”
한국의 시골 동네 이름이 미국 가게의 상호로 씌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운 김 씨와는 달리 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느 때처럼 저녁을 차린다. 오늘의 메뉴는 육개장에 계란찜하고 김이다. 음식 해다 나르느라 고생이 많다. 그냥 마켓에서 사 먹어도 된다는 둥 김 씨가 미안해하자 이 나이에 ‘아버지’하고 부를 사람이 있어서 좋다며 딸은 설거지까지 해놓고 갔다.
거실의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가며 김 씨는 집안을 한 바퀴 휘 둘러본다. 앞마당으로 향한 창문 커튼은 열어본 지 오래다. 다이닝 룸의 식탁도 거실의 소파도 사람 냄새 맡아본 지 언제인가 싶다. 아내 떠나보낸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그리 살갑게 정을 나누며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미국까지 와서 자식들 잘 키우고 남 부럽지 않았는데. 그때는 알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던 아내의 훈기가 그립다. 거실 벽 한쪽에 걸린 가족사진 속에 분홍색 한복을 입은 여자가 활짝 웃고 있다. 아이들이 차려준 그녀의 칠순 잔칫상 앞이다. 김 씨는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집은 남자가 먼저 간다카던데...... 평생을 설치면서 나를 끌고 다니더니 가는 것도 앞장서서 가 삐릿네. 와? 그곳에도 나보다 앞서가고 싶었나? 허.”
김 씨는 해가 지붕 위에 올라앉을 무렵 집을 나선다. 어제 딸이 말한 그 운정 세탁소가 궁금해서다. 세탁소는 골목 입구 작은 상가 건물에 있다. 그곳은 스킨케어, 네일 샵과 함께 리커스토어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굳이 차를 타지 않고도 편안하게 드나드는 곳이다. 거기에서 5분 쯤 더 걸어 나가면 4차선 대로가 나오고 사거리를 중심으로 큰 샤핑몰과 주유소가 있다. 샤핑몰 넓은 파킹장에는 맥도널드와 델타코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서 김씨는 점심 요기를 하러 가끔 그곳으로 간다. 오늘은 맥도널드로 가기 전에 세탁소에 먼저 들러 볼 참이다. 늘 가던 길 방향을 바꾸어 작은 상가 건물 쪽으로 걸어가 보니 딸의 말대로 세탁소 간판이 바뀌었다. ‘Woonjung Cleaner’ 진짜로 운정 세탁소다. 김씨는 슬그머니 가게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본다. 나지막한 음악이 흐르고 계산대에는 아무도 없다. 왼쪽에는 도르래로 돌아가는 기계 위에 옷이 두 줄로 걸려있고 천정에도 비닐을 덮어 쓴 옷과 이불이 나무에 열매 맺히듯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김 씨는 큰소리로 주인을 부르면서 계산대에 있는 벨을 누른다. 계산대 옆에 자리한 옷 수선용 재봉틀 옆에는 빨강, 파랑, 하양, 검정색 실이 어지럽게 놓였고 한국 신문도 있다.
“웰 컴, 켄 아이 헬프 유?”
하얀 블라우스를 단정히 입은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옷걸이를 든 채 나온다. 김 씨를 발견한 여자는 한국 사람을 처음 본 듯 깜짝 놀라며 반갑다고 한다.
“나도 반갑네요. 옆에 리커스토어도 한국 주인인데. 인제 이 건물도 한국 사람이 다 차지하게 생기삣네요. 허허”
사실 그랬다. 이곳은 학군이 좋다고 소문난 동네라 한인이 많이 몰려와 지금은 심심찮게 한국 사람이 보인다. 길 건너 대형 샤핑몰에도 코리언 바비큐, 횟집, 순두부, 중국집 등 한국 식당이 네 개나 된다. 20년 전 김 씨가 이사를 올 때만해도 한인을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이국땅이라도 아쉬울 것이 없는 동네가 되었다. 여자는 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고 들어선 김 씨에게 세탁물을 찾으러 왔는지 묻는다. 간판이 한국 시골 동네 이름이라 호기심에 들어와 봤다는 그의 말에 여자가 활짝 웃는다.
“네. ‘운정’은 주인 부모님의 고향 이름 같아요. 원래 세탁소를 부모님이 운영하셨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 아들이 물려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곳은 이번에 새로 하나 더 오픈을 했구요.”
“그렇구나. 부모 고향이 운정이구나. 돌아가신 주인 아버지 성함이 어찌됩니껴?”
“잘 몰라요. 주인 성이 황씨인데요.”
황씨라? 황씨가 어디 한 두 집이가? 황상구? 그 잘난 부잣집 아들놈이 미국꺼정 와서 세탁소 할 리는 만무하고……. 김 씨는 서운한 얼굴로 돌아선다. 자기 고향도 운정이라 혹시 고향 사람인가 싶어서 들어왔다는 말에 여자가 그를 불러 세운다.
“주인 오시면 고향 분 다녀가셨다고 말할 게요. 어르신 성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나는 김도식이라카요.”
김도식. 여자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김 씨가 가게를 나서는데 여자가 또 부른다.
“혹시 전화번호라도 주실 수 있어요? 주인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니까 어쩌면......”
김 씨는 오늘도 에버그린 노인센터(Evergreen Senior Center)에 왔다. 이곳은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라 한국 노인이 많다. 건물 본관에서 음악 소리가 울리자 매니저 헬렌이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방송을 한다. 이 후로는 허리가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물리 치료실이나 한방의료실로 가고, 흥이 많은 사람은 노래공부방이나 무용실로 흩어지지만 김 씨는 평소처럼 식당 구석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다. 훤칠한 키에 숱이 많은 은빛 머리카락. 나이답지 않게 등이 꼿꼿한 김 씨가 무연한 얼굴로 센터에 들어서면 할머니들은 김 씨에게 시선을 보내곤 한다. 순박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두고 상처(喪妻)를 했을 거다, 어쩌면 아픈 아내는 양로 병원에 가 있을 거라는 등 뒷말도 분분하다.
종이컵에 담긴 물을 벌컥 들이키는 김 씨의 허리춤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떤다. 낯 선 번호다.
“여보세요?”
“......”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숨소리만 들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기분이 이상하다. 짧은 정적이 주는 이 느낌은 뭔가? 김 씨는 꿀꺽 침을 삼킨다.
“...... 오빠 맞네. 도식이 오빠 맞네.”
수화기 너머에서 꺽꺽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다.
“누고? 이 목소리는......”
아련한 기억 속에서 가늘게 울려오는 목소리. 순례다. 겹겹이 먼지가 쌓여도 원래의 투명한 모습은 숨어 있는 유리알처럼, 둔해진 음성 속에 맑은 그 목소리가 남아있다.
“순례? 순례아이가?”
김 씨의 말은 격한 날숨에 실려 쉭쉭 소리를 낸다. 아, 아프지 않고 고향을 떠올려본 적이 있었던가. 김 씨는 울음소리만 들리는 수화기를 가슴에 꼭 안고 눈을 감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 씨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미국에 온 후로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운정’이 아닌가. 영원히 묻혀져있을 것만 같았던 먼 옛날의 기억이 빛도 바래지 않은 채 하루 만에 현실로 다시 태어났다. 믿을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순례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에 의해서 내 존재가 의미를 찾았다고 하면 너무 과장인가.
그때는 그랬다. 온 동네가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고 있을 때에도 방앗간 집 굴뚝에서는 밥 냄새가 풍겨 나왔다. 순례 아버지가 운영하는 방앗간은 김 씨 아버지의 직장이자 온 이웃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김서바앙~ 하고 어르신이 부르면 아버지는 한 밤중에도 허리춤을 끌어올리며 뛰어 나갔다. 어느 집 잔치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는 김이 술술 나는 떡을 신문지에 말아들고 환한 얼굴로 들어왔다. 주문한 떡을 쪄주고 남은 것을 긁어모아준 어르신이 고마워 아버지는 싸리문 너머 순례네 집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김 씨보다 세 살 어린 순례는 “오빠, 도식이 오빠” 하며 따라다녔다. 두 집이 나란히 붙어있었기에 학교로 갈 때나 올 때 손을 잡아주면 순례는 깡충거리며 개울을 건너곤 했다. 여동생이 없는 김 씨는 그런 순례가 한없이 귀여웠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전교 일등을 도맡아서 하던 김 씨가 중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평소 김 씨를 아들처럼 귀애하던 순례 아버지 조 씨는 잔치를 열어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시끌벅적할 때 순례는 마당 한 쪽 구석에서 질금질금 울었다. 도식이 오빠가 다른 학교로 가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다닐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에 섧게 울었다. 어른들은 “너그 엄마 죽었나?” 하며 놀려먹었다.
3년 후 고등학교 입학시험에도 역시 김 씨는 수석 합격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미래의 검사, 판사가 우리 동네에서 나올 거라며 야단법석이었지만 김 씨의 집에서는 한숨만 흘러나왔다. 다행히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대체가 되었다. 그러나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까지 유학 시킬 형편은 못 되었다. 아래로 셋이나 되는 동생들을 먹고 입히는 것만으로도 벅찬 가정이었기에 합격자 발표 이 후로 근심이 깊어졌다. 김 씨는 아버지에게 사정 했다.
“아버지, 일단 학교에 입학만 시켜 주이소. 낮에는 공부하고 새벽에 신문배달도 하고 밤에는 어데라도 가서 돈 벌끼라예.”
“니 혼자만 있다카몬 와 몬 보내주겠노. 밑에 동생들이 줄줄이 있으니 말이다. 니가 떠나삐몬 집안일도 문제다 아이가.”
김 씨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한숨만 쉬고 있는 부모님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정말 학교는 가고 싶었다. 김 씨는 슬며시 일어나 사립문 밖으로 나갔다. 순례네 집은 방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김 씨는 갑자기 순례가 보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입학 등록 마감일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김 씨 집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김 씨는 그저 아버지 눈치만 보고 있는데 늦은 저녁에 순례 아버지 조 씨가 김 씨와 아버지를 방앗간으로 불렀다.
“읍내 장에 있는 싸전에서 일군을 구하는데 도식이를 보내몬 어떻겠노.”
학교에 보내주는 대신 싸전에 붙어있는 쪽방에서 먹고 자면서 학교 시간 외에는 일을 한다는 조건이었다. 밤에 싸전을 지키는 것도 그의 할 일이라고 했다. 김 씨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밤에 잠을 안자고도 싸전을 지킬 수 있고, 새벽에 일어나서 등교하기 전까지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며 김 씨는 순례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 깜짝 놀라 도로 놓았다. 순례 아버지는 허허 웃어주었다.
"니는 이때꺼정 우찌 살았노? 영감은?"
순례를 만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입에 물고만 있던 궁금증이다.
"영감 죽은 지 벌써 10년도 더 넘었다아잉교. 오빠는?"
"우리 할마시? 허허허"
대답보다 웃음이 먼저 나온다. 가슴 한 켠에 불이 확 켜지며 알 수 없는 환희가 뭉실뭉실 피어난다.
"죽은 지 삼 년 됐다. 억시기 살라꼬 몸부림치더마는 딱 일 년 아프다가 가더만. 그노무 할마시가 돌도 씹어묵겠더마는 위암이라카데. 그거는 수술하몬 된다카던데 그것도 초기에 발견했어야 말이지 너무 늦게 알았던기라. 꺽꺽거리싸도 소화가 안 되는 줄 알았지 누가 암에 걸렸다고 상상이나 했나.”
"그랬구나. 우리 영감은 회사에서 미국 지사장으로 왔다가 귀국 안하고 고마 여기 주저 앉았다아이가. 아이들 때문에. 그런데 뭐, 회사 그만 두니까 할 일이 있어야지. 모아놓은 돈으로 세탁소 차려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난데없이 교통사고가 나 삐릿다.”
군데군데 지워져 얼룩졌던 그림이 입을 오물거리는 순례의 얼굴에서 선명하게 살아난다. 따뜻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휘적이며 지나간다. 김 씨는 눈가 주름이 깊은 순례의 얼굴 속에서 펄펄 날리던 쌀겨와 함께 방앗간 천장을 울리던 어르신의 음성을, 떡시루를 들어 올리던 아버지를, 고개를 꾸벅하며 방앗간을 들어서던 자신을 본다.
"지금은 우찌 사노? 여자는 혼자 살아도 되지만 남정네는 불편할낀데. 자식 집에 얹혀 살기도 그렇고."
"나는 혼자 산다아이가. 할마시 죽기 전부터 살던 집이라 그냥 살고 있다. 아직 내 몸 성한데 자식 신세 지기 싫다."
"맞심더. 혼자 살 형편 되면 혼자가 편하고 좋지예. 나는 아들네서 산다. 노인 아파트로 나가고 싶은데 신청한 후 5년은 기다려야 빈 방이 나온다케서."
"진작 신청하지 그랬노. 언제 신청했는데?"
"인자 겨우 2년. 그 전까지는 둘째 아들네 손자 봐주고 살림 살아주고. 따로 떨어져 나가 살 처지가 못 되었다아잉교. 며느리하고 아들하고 둘이서 저그 아버지가 놓고 간 세탁소에 매달려 있는데 모른 척 못 하겠더라카이. 그런데 인자는 괜찮아예. 손자도 모두 다 컸고 세탁소도 많이 컸다아잉교. 분점까지 차리고. 인자는 혼자서 좀 자유롭게 살라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팔랑팔랑 징검다리를 날아가던 방앗간 집 순례가 진짜로 날아온 것 같다. 김 씨는 찬바람이 잉잉대는 들판에 홀로 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따끈한 온돌방에 들어와 앉은 기분이다.
김 씨는 시니어센터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집에서만 소일하던 순례도 김 씨의 안내를 받아 이곳의 학생이 되었다. 아침마다 시니어센터에서 마주 앉아 옛날이야기를 나누면 두 사람의 하루가 너무 짧다. 버스를 타고 한인 타운에 나가 사먹는 칼국수의 맛도 날마다 색다르다. 함께 한국마켓에 가면 뭘 살까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 가끔 순례가 들고 오는 김치나 밑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리면 김 씨는 혼자 먹는 밥상이라도 행복하다. 몇 년 전에 운전 면허증 갱신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75세가 넘으면서 갱신 조건이 까다로운 터라 그냥 포기해 버렸는데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운전만 할 수 있으면 산타모니카 바다에도 가고 꽃이 지천인 데스칸소 식물원에도 가련만 동네만 뱅뱅 돌고 있으니 괜히 미안하다. 소소한 이야기에도 활짝 웃는 순례의 모습이 좋아 한국 신문도 신청해서 구석구석 읽는다. 시니어센터가 주말에는 왜 문을 닫는지 원망스럽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자식들의 전화는 귀찮고 방문은 더더욱 질색이다.
두 사람의 해후가 시니어센터에서는 샘나는 뉴스거리지만 자식에게는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집 명의는 물론 은행 예금조차 아들 이름으로 해 두었던 김 씨가 어느 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장에서 목돈을 좀 찾아달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는 자식들은 무슨 일이냐며 웅성거리지만 김 씨의 성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으니 황당하기만 했다. 갑자기 변한 아버지의 태도가 마뜩찮은 맏딸이 아버지 집으로 동생들을 소집했다.
"아버지. 갑자기 그 큰돈을 어디다 쓰려고 갑자기 이러십니까?"
"와?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무슨 간섭이고? 일일이 너그한테 허락 받고 써야 되나?"
"그게 아니고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그러지요. 사업하실 것도 아니고……. 참, 어디 여행 가시려고 그럽니까?"
"그래. 여행도 가보고 싶다. 양복도 한 벌 사 입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집수리도 하고. 나도 인제 돈 좀 쓸란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두 분이 함께 여행 좀 다니시라 그리 권해도 꿈쩍도 안 하시더니 갑자기 웬 양복이며 여행입니까? 혹시 아버지 바람나신 거예요?"
막내아들의 농담에 식구들은 왁자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너그 엄마 살았을 때는 내가 몰랐다. 맨날 늙어서 돈 없으면 안 된다고 해 싸니 나도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살았지. 너그 엄마 죽고 나니까 돈 그거 움켜쥐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더라. 다 바보짓이더라."
자식들은 김 씨의 진지한 모습이 뜨악하다. 이런 아버지의 변화는 단순한 노인의 트적질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병원비 아끼느라 소화제로만 버티었던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의 눈에 한낱 바보로 전락되었다. 시니어는 택시를 싸게 탈 수도 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다. 단 몇 불도 아까운 마음에 한 시간 거리쯤은 너끈히 걸었다. 말로는 운동 삼아 걷는다고 했지만 어쩌면 지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그 몇 푼과 바꾼다는 것이 아까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은 고향에서 같이 살던 동생을 만났다. 미국 와서 살면서 내가 너그들 말고 마음 터놓고 지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나. 그런데 이상하더라. 이 동생하고는 헤어진 지 60년이 다 되는데도 남 같지가 않은 기라. 그게 참말로 신기하제. 만나자마자 그냥 마음 문이 탁 열리삐는기라. 우째 그리 그 시절로 금방 돌아가 그때 그 마음이 되는지 몰라.”
말로 뱉고 보니 그렇다. 어린 시절 쌓았던 옛정이 생각보다 도타웠다. 헤어져 살았던 긴 세월 동안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푸욱 정이 삭고 있었나 보다. 술이 익듯이 숙성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 씨의 얼굴에 얼핏 홍조가 어린다. 자식들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표정이다. 귀 밑까지 번지는 아버지의 미소를 보며 맏딸이 바싹 다가앉는다.
"아버지. 고향 동생이라는 분이 혹시? 여자예요?"
질문이 우습기도 하지만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는 설마 하는 마음이 스치는 듯 서로 눈을 맞춘다.
“시니어센터에 가신다고 하더니 거기서 누구를 만나셨군요. 요새 혼자되신 할아버지가 인기라고 하던데. 아버지 정도의 외모에다 건강이라면 엄청 좋은 조건인데요.”
"그래. 여자다. 사실은 저기 운정 세탁소 주인의 모친이 알고 보니 내 고향 동생이더라.”
자식들은 반 쯤 일어섰던 엉덩이를 풀썩 내려앉히며 김씨의 얼굴을 쳐다본다. 벌린 입도 다물지 못한다.
“운정 세탁소? 옛날 우리 마켓 이름도 ‘운정’이라고 지었잖아요. 고향 이름이라꼬. 그렇죠?”
막내아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아이고. 울 아버지 참말로 반가웠겠어요.”
"아버지, 그러면 그 분하고 사귀시는 거예요? "
아들의 반응과는 달리 심각해진 맏딸의 말에 오히려 자식들은 킥킥 웃음을 흘린다. 모두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이 놈들이 아버지를 갖고 놀릴라카나. 고~얀 놈들. 그래. 내가 사귄다. 와. "
김 씨는 카펫에서 먼지가 풀썩이도록 발을 탁 굴리며 일어선다.
"내가 미국 온 후로 어데 여행을 가봤나. 친구를 사귀어봤나. 그저 너그 엄마 등살에 죽자 살자 가게에 매달려 좋은 세월 다 보냈다. 너그 보다시피 엄마 칵 죽고 나니까 남는 기 뭐 있더노.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고생만 바가지로 해가며 모은 돈, 한 푼도 몬 써보고 가버리니 간 사람만 빙신이지. 나는 그렇게 안 살끼다. 누구 좋은 일 시킬라꼬."
김 씨가 완강하게 말한다. 자식들은 갑자기 목대가 세어진 아버지의 태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시니어센터가 텅 빈 것 같다. 순례가 결석한 지 나흘이 지났다. 아프다는 연락이 오기는 했지만 궁금하다. 오늘은 나타날까 하는 마음에 눈길이 문 쪽으로 자꾸 간다. 얼마나 아프기에 나흘씩이나 못 오는 걸까. 전화도 안 받으니 마음이 불안하다. 김 씨는 사무실로 가서 한국 직원을 찾았다.
"조순례 할머니 집 주소 좀 알 수 있능교?"
"왜요? 찾아가 보시게요?"
"며칠 째 안 나오니 걱정스럽네요. 한번 찾아가봐야 할 것 같아서.”
점심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택시를 불렀다. 미국 온 지 겨우 일 년이 되었다는 운전기사는 다저스 티셔츠에 시커먼 야구 모자를 쓰고 있다. 영주권이 없으니 취직도 어려워 노인 상대로 이렇게 불법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차비부터 먼저 달라고 한다. 혹시 돈을 주고 내리는 것을 경찰이 보면 불법택시 영업을 들키기 때문이다. 돈 없이 오는 이민 초기 고생은 듣지 않아도 익히 짐작이 간다. 열심히 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팁도 넉넉하게 주었다.
8324 Garden View Ave. 순례의 집은 붉은 기와를 얹은 이층집이다. 앞마당의 푸른 잔디 주위로 보라색 제비꽃과 흰 씀바귀가 화려하게 피었다. 입을 반쯤 벌린 우체통 다리 밑으로 달팽이 한 마리가 긴 꼬리를 그리면서 지나간다. 이곳에 순례가 산다. 김 씨는 집 앞에 가만히 섰다. 어디선가 쑥 냄새가 난다. 음매에 풀을 뜯어먹다 언덕배기에 배를 깔고 누운 누렁이 소리도 들린다. 차도 사람도 지워진 텅 빈 세상 한가운데 우뚝 선 집 한 채. 김 씨 혼자만 서있는 듯 적요하다. 저 문만 열면 세상의 모든 곳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 것 같다. 허공을 달려 끝없는 하늘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새처럼 훨훨 날아 구름도 뚫을 것 같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가슴을 차고 오른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니 조용히 문이 열린다.
"실례합니다. 혹시 조순례 할머니 댁 맞습니까?"
젊은 여자 뒤로 거실의 소파가 보인다. 된장국 끓이는 냄새가 문 밖으로 퍼져 나온다.
"할머니가 시니어 센타에 며칠째 안 와서. 많이 아픈가 하고요."
"아, 혹시……. 어머니 고향분이세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던?"
옆머리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머리핀과 화장기 없는 얼굴에 피곤이 서렸다.
"어머니께서 중풍을 맞으셨어요. 지금 침실에 계신데."
중풍? 순례에게 중풍이라니? 김 씨는 급히 여자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머리가 베게에 묻힌 순례가 눈으로만 김 씨를 올려다본다. 푸석푸석 부은 얼굴, 검버섯이 더욱 짙어진 뺨, 반쯤 벌린 입술 사이에 고인 침이 불빛에 반짝한다.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바라보는 눈이 금방 촉촉해진다.
"아이쿠우, 이기 무슨 일이고? 순례야, 니가 이기 무슨 일이고?"
김 씨는 갑자기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옴을 느낀다. 온 몸에 전기가 찌르르 지나가고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만 같다.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싶다. 김 씨는 두 손으로 순례의 얼굴을 감싸 안는다. 왼쪽 눈은 반쯤 감기고 입 끝은 귀 밑으로 올라가 있다. 어깨 아래로 손을 넣어 윗몸을 일으키자 왼손이 툭 떨어지며 눈물이 주르르 뺨에 흐른다.
"어머니가 원래 혈압이 높았어요. 며칠 전부터 계속 머리가 아프다 하셔도 우리는 그냥 감기인가 했지요.”
자신을 둘째 며느리라고 소개한 여자는 두서가 없어 보인다. 처음 보는 김 씨 앞에서 마치 자기 보살핌이 소홀했던 것으로 보일까봐 변명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토요일 저녁 화장실에서 나오시다가 그냥 ......."
말꼬리가 힘없이 사라진다. 며느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순례의 툭 떨어진 팔이, 반쪽 감긴 눈이 김 씨의 심장을 후빈다. 중풍은 낯 선 말이 아니다. 중풍에 걸린 사람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순례는 아니다. 순례를 일으켜 가슴에 끌어안는다. 앙상한 등허리의 뼈가 손끝에 부딪히며 차가운 왼쪽 볼이 힘없이 어깨에 얹힌다. 어디선가 강물이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홍수 때면 철철 물이 넘쳐흐르던 개울이 있었다. 운정 저수지가 부려놓은 개울이었다. 김 씨는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건만 헐거운 고무신은 사정없이 흙탕물 속으로 휩쓸려가 버렸다. 손뼉을 치며 웃어대는 친구들 앞에서 김 씨는 한쪽만 남은 고무신을 움켜쥐고 씩씩 눈물을 닦았다. 질컥거리는 논바닥을 허리도 못 펴고 종일 헤매던 어머니. 저녁마다 물에 퉁퉁 불은 발을 주무르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다. “내게는 이 신발 밖에 없단 말이야.” 고무신 한 짝을 물고 간 개울가를 해가 저물도록 떠나지 못했다. 그 물 소리가 들린다.
김 씨 어깨에 온 몸을 얹은 순례가
"도-시기 오바아……."
어눌하지만 알아듣겠다. 오빠가 와서 반갑다고. 차도 없는데 어떻게 왔느냐고. 온 몸이 아닌 한쪽으로만 마비가 와서 다행이라고. 순례의 눈에서 끝없는 말이 흘러나온다.
"MRI를 찍어보니 다행히 뇌출혈은 아니고 혈관이 막힌 뇌경색이랍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2-3주가 지나면 차츰 좋아진대요."
며느리가 방문 앞에 서서 말한다. 감기가 오려는지 으스스 등에 찬기가 들면서 갑자기 허기가 진다.
"암, 암 좋아져야지. 하모 좋아지고말고. 하모. 하모.”
김 씨는 매일 아침이면 시니어센터가 아닌 순례네 집으로 간다. 뒷마당에 나가 조심조심 걸음마를 시키고 신문을 읽어주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한 달이 지나자 비뚤어진 입도 제 자리를 찾아왔고 눈을 반쯤 덮고 있던 눈꺼풀도 슬그머니 제 자리로 올라갔다. 감각이 없던 팔 다리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 아직 기신이 없긴 하지만 혼자서 걷는 일만 남았다며 김씨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순례야, 니하고 같이 있으니까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그렇제? 나도 그렇다. 오빠하고 같이 있으몬 와이리 고향 생각이 간절한지 모르겠다."
"그때 말이다. 추석 전 날이었던가. 갑자기 비가 억수로 퍼부었제."
"그날을 우찌 잊어묵겠노.”
기억은 풍경과 사람과 감정을 한꺼번에 싣고 날아가 생각나는 옛날의 그 장소에 데려다 놓는다. 아니, 내동댕이친다. 그 힘이 얼마나 거센지 현실은 순식간에 의식의 등 뒤로 밀려나버린다. 순례의 두 볼이 발그레 물이 든다.
추석 하루 전 날이었다. 사람들은 퉁퉁 불린 쌀을 들고 방앗간으로 왔다. 인근 동네에서도 몰려온 덕분에 쌀 대야는 방앗간 마당 끝까지 줄을 지었다. 발밑에 쌀 대야를 두고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 머리 위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가면서 소나기로 변했다. 무섭게 퍼붓는 비로 금방 쌀 대야에 물이 고였다. 당황한 일군들은 뛰어 나와서 쌀 대야를 방앗간 안으로 옮겼다. 사람들의 동동거림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섞여 방앗간은 더욱 소란스러웠다. 모처럼 명절을 쇠러 온 도식이와 순례도 우왕좌왕 사람들 속에서 뛰어 다니며 도와주었다.
“순례 니가 비를 맞으면서 그 무거운 것들을 들어 나르는데 참말로 애처럽더라.”
손님의 떡값을 계산해서 받던 도식이가 돈 주머니를 겨드랑에 낀 채 순례의 두 팔에 안긴 대야를 받아들었다.
"오빠가 내 대야를 몇 번 받아 주는 새에 다른 동네에서 온 사람이 돈도 안내고 도망가삣제."
"너그 아버지한테 혼나고. 허허허. 혼나는 모습을 니한테 보이는기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더라. "
“나는 그때 우리 아버지가 너무 밉더라. 오빠가 그리 열심히 도와 준 거는 안중에도 없고 얼마나 통박을 놓던지.”
순례는 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도식이 옆으로 가서 바짝 붙어 섰다.
“아부지, 도식이 오빠가 열심히 일할 때는 칭찬 한마디 없디마는 그깟 돈이 얼마나 된다고 이랍니껴?”
생전 얌전하기만 했던 딸의 상상도 못한 모습에 조 씨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
“잉? 순례 니가 와 나서노?”
“오빠는 오늘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옳게 먹지도 못했어예. 바빠서.”
“도식이 점심 못 먹은 거를 니가 우찌 아노?”
“같이 일하는데 그것도 모르겠어예? 오빠가 얼매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아부지는 무조건 사람을 무시하고……. 오빠가 아직도 아부지 일군인 줄 압니꺼?”
“이 노무 가시나가 마!”
순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벌게진 조 씨의 오른 손이 번쩍 들렸다. 아들이 야단을 맞을 때는 멀리서 곁눈질만 하고 어쩔 줄 모르던 도식이 아버지가 와다닥 달려왔다. 순례를 등 뒤로 밀어내며 조 씨를 가로 막았다.
“아이고, 어르신 와 이라십니껴? 마, 참으시라요. 도식이 저 놈이, 마, 마,”
옆으로 밀려나있는 도식이에게 발을 탁 구르며 어서 가서 일하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일군과 손님들의 눈을 의식한 조 씨는 못 이기는 척 돌아섰다.
“...... 알았다. 어서 일해라.”
한 마디를 하고 안집 마당으로 통하는 뒷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무안하기도 하고 화가 난 순례도 씩씩대며 방앗간 밖으로 몸을 돌려 뛰쳐나갔다.
“순례야, 이 비를 맞고 어데로 가노?”
놀란 도식이가 순례의 뒤를 따라 나갔다. 장대비로 질퍽해진 마당에는 처마 밑에 매달린 전등이 안간 힘으로 어둠을 쫒아내고 있었다. 둘은 쏟아지는 비를 피해 엉겁결에 방앗간 뒤 헛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순례야, 고맙다.”
도식이의 손이 순례의 양 어깨에 걸쳐지자 순례는 와락 그 품에 안겼다.
“그때 오빠가 고마운 마음만큼 측은하더라니까. 나를 볼 때마다 씨익 웃어주던 오빠가 좋았는데. 그날은 참말로 좋더라.”
순례는 희끗희끗 쌀가루가 묻은 그의 바지가 저녁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말도 한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에 밤을 새웠다고도 했다. 김 씨도 그랬다. 그 날 이후로 예전에는 더넘차기만 하던 순례를 자신 있게 불렀다. ‘순례야~’ 크게 부르고 나면 왠지 기운이 솟았다. 공유한 비밀을 나누듯 ‘오빠야’ 대답하며 미소를 지어주는 순례의 모습에 마음속의 맞방망이질을 누르느라 한참 서 있기도 했다.
몇 년 후 김씨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밀양 읍내 우체국 직원이 되었을 때 순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신랑은 동네에서 제일 부자로 소문난 황씨 집 아들 황상구라고 했다.
“그 방앗간 아직도 있을까?”
"모르지. 니가 결혼해서 서울로 가고 나서도 한참 더 있다가……. 내가 떠나온 지도 벌써 30년 넘었다아이가."
"가보고 싶다."
"나도. 그 헛간도 그대로 있겠제?”
“…….”
“그리도 고맙고 인정 많던 어르신 산소하고 우리 아부지 산소에도 가서 절을 올리고 싶다. 우리 둘이 같이 가몬 참 좋아하시겠제.”
“내가 평생 불효로 살았다 싶다. 아버지 산소는 어찌 되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아이가.”
"한번 가보고 싶나? "
김 씨가 순례 집을 드나든 지도 어언 한 달이 되었다. 순례의 병세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부축을 받으면 걸을 수도 있고 숟가락질도 서투르나마 혼자서 할 수 있다. 어느덧 겨울도 가고 뒤뜰에 새싹이 연초록 잎사귀를 밀어 올린다. 김 씨는 시간이 갈수록 고향에서의 기억이 점점 더 선명해져간다. 그의 깊은 의식 속에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무성 영화가 있다. 순례를 만난 이후로 상영되는 그들의 영화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가. 10년을 살아도 30년을 살아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말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법으로 막지도 않는데 우리는 왜 고향에도 못 가고 이리 살고 있을까. 아무리 세월을 흘려보내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안고 말이다. 바보같이.
김 씨는 맏딸에게 전화를 했다. 한 자식도 빠지지 말고 모이라고 했다. 지난번에 툭 던져준 아버지의 말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아버지의 변화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구시렁거리던 자식들은 호출이 편하지 않은 듯 무거운 걸음으로 왔다. 김 씨는 며칠 내내 생각했던 말을 꺼낸다.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순례와 함께.
"그러면 아버지. 중풍 맞은 그 할머니하고 같이 말입니까? “
“누가 가서 산다고 하나. 그냥 한번 다녀 오겠다는긴데 와이리 말이 많노.”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가 시골에 가면 얼마나 불편하시겠어요. 병원도 시원찮을 거고.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요. 아버지."
모두 아버지를 불러대지만 김 씨는 입을 꾹 다문 채 눈마저 감고 앉아있다.
"너그들이 암만 그래싸도 나는 결심했다. 고향에 가 볼란다."
"아버지. 고향에 누가 있습니까? 누구 볼 거라고 가 본다 합니까? “
"아무도 없기는 와아 아무도 없노.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나무도 있고 내가 먹이던 소도 있다. 방앗간도 있을 끼다."
자식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만 볼 뿐, 단호한 아버지의 생각에 맞설만한 한마디 말도 찾아 내지 못한다. 억지도 보통 억지가 아니다.
“산도 강도 나무도 소도, 그것이 그 자리에 있기는 한단 말입니까?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연로한 육체를 이끌고 가 보실 이유가 됩니까?
"너그들 마음도 잘 알겠는데. 나도 생각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나도 내 마음 가는 대로 한번 살아볼란다. 평생 눈앞에 어른거리는 고향에 가서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마음 놓고 한숨 자고도 싶고, 옛날 꼬치 친구도 만나 텁텁한 막걸리 주고받으면서 이놈 저놈하며 욕도 하고 싶다. 내 나라 우리 말 실컷 하면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 컴컴한 밤길도 마음 놓고 편하게 걸어보고 싶단 말이다. 너그들이 내 맘을 우찌 알겠노.”
방 안이 잠시 조용해진다. 끊임없는 풀무질로 김 씨의 가슴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점점 거세어지는 풀무질이 피워 올리는 불꽃이다. 모든 것 다 태우고 재만 남은 그루터기 어디에 이런 불씨가 남아있었을까. 그 불씨를 어떻게 모른 척 외면하고 살아왔을까. 김 씨는 자식들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욱대기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새삼 자신에게 놀란다.
“딱 한 달만 여행하고 돌아오꾸마.”
김 씨는 오른 손으로 무릎을 짚고 끄응 일어선다.
그 후로 김 씨와 순례네 식구는 의논 자리를 가졌다. 노인들의 한국 여행에 대하여 밀고 당기는 씨름은 계속 되었지만 두 사람의 결심은 단호하다. 자식들의 염려는 아무런 힘이 없다. 자식들은 결론을 내린다. 겨울도 가고 새 봄도 무르익는 4월에 그렇게도 그리던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고 오시라고. 마지막 효도라는 말에 모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김 씨의 세 아들과 딸, 그리고 순례의 두 아들은 서로 처음 만나보는 얼굴인데도 오랜 세월 함께 한 사람 같아 보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골 고향이지만 마치 자기들도 복닥복닥 함께 자란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모양이다.
드디어 고향으로 떠나는 날이 닷새 남았다. 김 씨는 한인 타운에 있는 선물센터에 들러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촌 동생과 친지들에게 선물할 게 뭐가 있나 둘러보는 중이다. 영양제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할아버지세요? 저, 조셉입니다.”
몹시 급한 어투다.
“아, 순례 아들이가? 그래, 우짠 일이고?”
조셉이 잠시 뜸을 들인다.
“와, 무슨 일이고?”
“할아버지. 큰일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넘어져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어이? 그기 무슨 말이고?”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은 마음은 잠시, 침대에 누워있던 순례의 모습을 처음 보던 날처럼 전율이 전신을 찌르르 훑어 내린다. 차가운 피가 온 몸에서 모두 빠져나가는 듯 현기증이 인다. 갑자기 하늘이 빙 돌며 다리가 꺾여 김 씨는 찬 바닥에 철버덕 주저앉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수화기 너머에서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김 씨는 앉은 채로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댄다.
‘그래, 많이 다쳤나? “
“예,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어느 병원이고?”
김 씨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선반 아래에 던져두고 계산대로 갔다.
“택시, 한국 택시 좀 불러주소. 아이고, 큰일 났네.”
영문을 모르는 가게 주인의 급한 호출에 택시가 왔다. 김 씨는 조셉이 문자로 넣어준 주소의 병원으로 가면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제발제발 툭툭 털고 일어나게 해 주이소.”
응급실 한쪽 귀퉁이에 조셉과 며느리가 보인다. 며느리는 침대 옆에 앉아 앙상하고 흰 순례의 손을 잡고 있고, 조셉은 등을 돌리고 서서 창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필리핀계로 보이는 간호사가 환자감시모니터(Patient Monitor)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적더니 눈으로 인사를 하고 나간다. 순례는 가슴만 달싹이고 있을 뿐 잠을 자는 건지 꼼짝도 않고 누워있다.
“의사가 뭐라카더노?”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며느리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김 씨는 누워 있는 순례에게 시선을 꽂은 채 물어본다.
“고관절이 부러져서 수술을 해야 한답니다. 지금 수술 날짜를 의논 중입니다.”
“수술하몬 괜찮나? 의사가 괜찮타카더나?”
“수술을 하기는 해야 하지만 워낙 몸이 쇠약해서 마취와 수술을 잘 견딜까 걱정이랍니다.”
김 씨의 가슴 속에 설렁한 바람이 지나간다. 김 씨는 조셉이 가져다주는 의자에 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쓰윽 문지른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시계바늘을 하루만 더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아니, 아니, 앞으로 빨리 돌아서 순례가 수술도 끝내고 다시 뒷마당을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례가 감고 있던 눈을 뜬다.
“오빠, 미안해. 내가 또 이 꼴이 되삣다아이가.”
“아이고. 무슨 소리. 크게 안 다치고 이만큼 한 것도 참말로 고마분데. 고맙다. 고맙다. 눈 떠 줘서 고맙고 살아있어서 고맙데이.”
김씨는 목소리가 끅끅 목젖에 감겨든다. 눈물 같은 것, 설움 같은 것, 울분 같은 것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주위에 함께 누운 응급 환자들이 하나 둘 병실을 찾아 떠나더니 드디어 순례 차례가 되었는지 파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 간호사가 들어온다. 한 사람은 곱슬머리와 까만 피부에 쌍꺼풀 없이 찢어진 눈이 흑인과 아시안의 혼혈인 듯하다. 다른 사람은 굵은 팔뚝에 문신이 요란한 멕시칸 청년이다. 두 간호사가 위아래에서 순례가 누워있는 시트 자락을 통째로 들어 올린다. “조심조심” 김씨는 복도를 지나갈 때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에도 두 손을 침대 모서리에서 흔들며 애원을 한다. 두 간호사는 마주보고 픽 웃으며 김 씨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일부러 조심하는 척 어깨를 아래위로 들썩여준다. 순례는 6층의 2인실 병실에 내려졌다.
복도에 음식 냄새가 자오록 퍼지고 병실마다에 저녁식사가 배달될 때 얼굴이 하얀 백인 간호사가 들어왔다. 허공에 매달린 링거병에 진통제를 주입하며 순례에게 얼마나 아프냐고 묻는다.
“진통 정도에 따라 1에서 10까지 번호를 매긴다면 지금 어느 번호 쯤이예요? 최고로 아픈 게 10이구요. 번호가 낮아질수록 덜 아픈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멀뚱히 쳐다보는 순례에게 조셉이 설명을 해 준다. 순례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8이라고 한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 나아질 거라는 한 마디를 해주고 나간다.
“수술은 꼭 해야 되나? 언제 한다카더노?”
김 씨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 한국 여행 때문에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여지없이 구겨진 것도 못내 속상하다.
“내일 아침에 의사가 의논하자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들어가 보세요. 여기는 저희들이 있겠습니다.”
순례도 손사래를 친다,
“오빠가 있다고 안 아플 것도 아이고 고마 가이소. 다음에 수술한다카몬 오이소. 수술하기 전에 얼굴은 한번 보고 들어 갈라요.”
김 씨는 식탁에 앉았다. 딸이 갖다 준 시래기국과 밥에서 하얀 김이 보일 듯 말 듯 올라온다. 밥을 한 술 입에 퍼 넣으며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수술하기 전에 얼굴 한번 보고 들어갈끼라꼬? 그기 무슨 소리고? 그라몬 죽으러 간다는 말이가?’ 그 말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 큰일이 아니라고 마음을 아무리 달래도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주위에서 고관절 수술하는 사람을 하나 둘 본 것도 아니고, 그 수술로 죽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김 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마음을 다독인다.
몇 술 뜨지도 못한 김 씨가 갑자기 숟가락을 국그릇에 걸쳐둔 채 딸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면 비행기 표부터 캔슬해야겠네요.”
자초지종을 들은 딸의 첫 마디다. 어쩌다 그리 되셨대요? 할머니 수술은 언제하신대요?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린대요?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곧 일어나실 거예요. 이런 따위의 위로는 못해 줄망정. 못 된 년. 나뿐 년. 애비 마음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비행기 값 걱정부터 한다.
“캔슬하지 마라! 날짜만 좀 미뤄라!”
노여움이 잔뜩 묻은 김 씨의 목소리에 딸은 무슨 말을 할 듯 하다가 곧 네,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는다.
수술은 사흘 뒤로 잡혔다. 온갖 검사로 순례의 상태를 살핀 후 내린 결론이다. 몸이 쇠약해서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다. 꼼짝 못하고 누워서 통증을 호소하거나 잠만 자는 순례의 모습을 보며 김 씨는 헛웃음을 웃는다. 하나님은 왜 이리도 내게 인색하실까.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보낸 어린 시절, 가난에 눌려 입에 풀칠만 하다가 똑똑한 간호사 딸 덕분에 미국까지 왔다. 한국과는 달리 부부가 밤낮으로 일 한 끝에 겨우 작은 가게도 마련하고. 거기에 더하여 미국 주류사회에서 변호사로, 대기업 임원으로 성공한 자식들 덕분에 평생 지고 다닌 열패감이 조금씩 엷어지나 했더니 덜컥 아내가 떠나 버렸다. 속살까지 적시는 외로움에 서서히 익숙해 질 무렵, 어쭙잖은 축복이었을까. 순례를 만났다. 자기 인생에 이런 화사한 햇살이 기다리고 있었음에 그는 놀랐다. 환호했다. 미칠 듯이 기뻤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처음부터 누군가의 낙서장이었을까. 무채색으로 뒤죽박죽 환칠해진 화판이었을까. 김 씨는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가난했지만 불행하지 않았고 외로웠지만 슬프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뭔가. 세상을 향해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다.
무겁기만 하던 몇 밤이 지나고 그 날이 왔다. 아니,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 그 날이다. 김 씨는 새벽부터 일어나 샤워를 하고 노란색과 남색의 체크무늬 남방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는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녀에게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다. 기다리고 있겠다는 강한 열망도 보여주고 싶다. 한국행 비행기 표는 아직 캔슬하지 않았다고 꼭 말을 해 줄 거다.
병원에는 순례의 두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교회의 목사님 부부가 와 있다. 수술은 오후 두 시에 시작한다고 한다.
“좀 어떻노? 잘 할 수 있제?”
어제 오후부터 금식을 한 순례는 침대에 널브러진 채 눈을 뜨기도 힘 드는지 고개만 끄덕인다. 김 씨는 얇은 눈꺼풀 아래에서 선하게 흔들리는 순례의 시선을 느낀다. 허연 쌀가루를 묻힌 채 비에 젖어 축 들러붙은 바지에 주던 따뜻한 시선을. 어르신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의 이마에 와 살포시 앉던 촉촉한 시선을. 뜨거운 그의 입술 아래에서 바르르 떨던 그 부드러운 입술과 수줍은 시선을.
병원의 시간은 다른 곳에서의 시간보다 열 배는 빠르게 지나간다. 의사와 간호사가 들락거리더니 건장한 두 남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동 침대로 옮겨진 순례를 따라가며 김씨는 “조심조심!” 크게 외친다. 이놈들아, 너 에미 모시듯이 좀 살살 해라. 수술실로 들어가는 침대에 긴 꼬리표를 붙이듯 김 씨는 끝까지 ‘조심조심’을 붙여서 들여보낸다.
쾅 닫힌 수술실 문에 얼굴을 박고 서서 돌아설 줄 모르는 김 씨에게 간호사가 다가왔다. 가족 대기실에 가 있으면 수술 끝나자마자 연락을 줄 거란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산란한 표정으로 대기실 의자에 앉는다. 눈물을 닦는 며느리에게 목사 사모가 말한다.
“수술하러 들어가는 사람보고는 울면 안돼요.”
김 씨는 미국에 들어오면서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한 대 푸우 피우면 좋겠다. 어디선가 강물이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홍수 때면 철철 넘쳐 오르던 그 개울물 소리다. 한쪽만 남은 고무신을 움켜쥐고 씩씩 눈물을 닦던, ‘내게는 이 신발 밖에 없단 말이야.’ 해가 저물도록 떠나지 못했던 그 개울물 소리가 들린다. 너무 크게 들린다. <한국소설> 제76회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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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 말이 통해서 살고 있니? | 성민희 | 2024.08.13 | 17 |
155 | 리셋 (Reset) | 성민희 | 2024.08.13 | 11 |
154 | 사진으로만 남은 사람 | 성민희 | 2024.08.13 |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