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스오티 강을 지나며' / 기영주

2008.02.26 07:20

박영호 조회 수:406 추천:40

해외문학 12호(2007-8) <올해의 미주한인 시작품 중에서에서>

자연과 인간의 원형적 모습에 대한 향수
- 올해의 미주 시작품 중에서 -
                                                                         (시인 평론가)  박영호
미주에서 발표된 올해의 시작품은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다룬 작품이 가장 많고, 다음으론 이민시를 포함한 현실적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나 생의 가치와 그 지혜를 주로 표현한 일종의 생명시와 생활시에 속하는 시들이 많고, 그리고 사물의 현상이나 존재가치 등 일종의 관념세계나 담론 등을 표현한 시들, 이렇게 크게 세 부류의 시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주로 시의 내용에 관한 구분인데, 여기에서는 주로 첫 번째로 거론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이고 원형적인 모습에 대한 향수를 다룬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러한 면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이 기영주의 '사라스와티 강을 지나며' 이다.
기원 훨씬 이전에 이미 사막이 되어버린 황량한 땅 위를 지나면서, 지금 현대에 흐르고 있는 강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물질문명 속의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일찍이 계속 흘러오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시라스와티 라는 고대 원시사회에 흐르고 있었을 그 옛 강물과 그 순박한 인류의 모습이 그립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금까지 잘못 흘러왔고 지금도 계속 잘못 흘러가고 있는 현대인류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순박했으리란 인류사회의 원시적 강물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대 사회는 물질문명이 크게 발전되어 왔지만, 그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는 바의 이상과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지금도 계속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히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일종의 문명에 대한 사색의 세계를 사라스와티 강이라는 사라진 강물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는 시의 형태가 이처럼 방대한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 대한 비판을 단 몇 행의 언어로, 그것도 보다 가치 있는 미학적 세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시인이 사학자나 철학자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할 수 가 있다는 것이다.  
      
멀고 먼
그리고 아주 오래된
강바닥
목선 하나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대 홍수가 나기 전에
사람들은 알았을까
계급사회의 부도덕을
먼 훗날의 자본주의를
모반과 폭력의 세계를
판독할 수 없는 문자로 쓰여있는
인장
증서는 하나도 없다
                      기영주  '사와스오티 강을 지나며' 의 일부(미주문학 2007 여름호)

시인은 이미 고대의 강과 함께 상실되어버린 그래서 잘못 흘러오고 있는 강, 현대라고 하는 인류의 문명과 고대사회의 인류 모습 등 고대와 현대의 시간을 넘나들며 우리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깊은 사색에 잠긴다. 그리고 그릇된 현대 사회의 인류의 양심을 비판하고 옛 시오스오티 강가에서 풍족한 삶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을 고대사회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원래 고대 인도 사막에는 두 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흐르고 있는 인더스 강과 그리고 일찍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사와스오티 강이다.
사와스오티 강이 흐르고 있었을 기원전의 고대 인류사회는 다시없이 풍족하고 부도덕과 계급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였지만, 그 강이 사라지면서 우리 인류는 전쟁과 모반과 폭력을 일삼는 인류사회로 타락한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두 강물은 인류의 고대와 현대 원시와 문명 그리고 인류의 선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와스오티 강은 이미 에덴동산처럼 사라져버렸다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강인 인더스 강은 지금도 흐르고 있는 현대라는 문명의 강으로 잘못 발전되어 온 인류의 의식 구조와 함께 현대 물질문명 의 병폐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시인은 현대 인류의 의식과 문명사회가 무언가 인류의 원형으로부터 크게 잘못 발전되어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인류가 원래 지니고 있었던 고대나 원시 사회의 순박한 형태로 회귀해야 한다는 소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떠나오지 못한 오래된 목선 하나, 이것이 바로 시인이 바라는 바의 인류의 순박한 참된 모습이고, 이것이 시인이 말하는 인류의 지혜다. 결국 그 목선은 사와스오티 강과 함께 사라져버린 인류의 바른 꿈과 이상을 실은 배라고 할 수 있고, 그 강물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래도 인류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듯이 그 목선은 강바닥에서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인류사회의 모습에 대한 대 변혁을 상징하고, 그래서 시인은 이제 강바닥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목선이 떠날 수 있는 그런 노아의 홍수와도 같은 또 다른 대홍수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다.  

'목선 하나 떠나지 못하고 있다'

위의 표현은 결국 그 배가 떠날 수 있고, 그리고 떠나야만 한다는 변혁을 필연적이고 의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우리가 인간의 원형적인 고대 인류와 다름이 없는 순박한 인간의 원형적 모습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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