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40년 후의 101번째 편지 (6)

2003.05.16 11:41

김영강 조회 수:442 추천:83

    당신 옛날에 연애한 여자 있었다며?  꽤나 깊은 사이였다면서?  당신이 그러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아?  나하고 삼십오 년이나 살았는데도 아직 내가 어떤 여자인지 모르겠어?  난 아냐.  차원이 다르다고.  그래도 그 여자 시집만 잘 갔다 그러더라.  그 여자 이름이 박영선이라며?
    이렇게 이름까지 정확히 대고 몰아 세우면 남편은 어떤 얼굴을 할까?  깜짝 놀라겠지.  너무 놀라 아마 뒤로 나가자빠질 거야.
    
    벼르고 벼르며 남편을 기다리고 앉았는데 시간은 왜 그리 더디 가는지.
    가만히 앉았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남편이 박영선이한테 달콤한 말로 살랑거리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옥희를 향해 적극적인 공세를 편 것과 마찬가지로 박영선이한테도 그랬을 것이다.  중학생 때는 좋아하는 여학생한테 말 한마디 못 부치고 가슴을 앓았다는 남편이 옥희에겐 그 반대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여자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했다면 좀 지나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예쁘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할 줄 아는 남자였다.  소소한 일에도 신경을 써주며 아주 자상하게 옥희를 대해 주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상한 성격이 가끔은 쪼잔하게 변모를 해버려 탈이지만 말이다.
    또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유머는 옥희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정말 다방면으로 아는 것이 많아, 만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옥희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찌나 웃기는지 깔깔대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그러다가 둘 사이가 급속도로 진전이 되어 옥희는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처음 선본 남자를 남편으로 맞았다.
    
    그런데 남편은 어떤가?  박영선이 말고도  여러 명의 여자하고 사귀었을 지도 모른다.  박영선이와는 오래 사귀고 꽤 깊은 관계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 깊었을까?  잠까지 잤을까?
    불쾌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맘속으로라도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어 다른 남자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아무 추억 거리가 없는 옥희다.  있다면 그것은 김동추의 편지 백통뿐이다.
    
    김동추가 파트너로 지정이 되었을 때, 옥희는 '아이구, 아니 올시다, 하고 실망이 컸었다.  체격이 왜소하고 키가 아주 작았기 때문이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하얀 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처음에 편지가 힉교로 계속 배달이 되었을 때, 오죽하면 친구들이 하얀 멸치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거기다가 꾸어놓은 보릿자루처럼 말을 별로 하지 않아 정말 재미없고 지루했었다.  수재만 모인다는 일류공대 학생인데도 옥희 눈에는 그가 바보같이 보였다.  한데 어떻게 그런 글귀들이 나오는지 옥희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감탄을 했다.  외모에서부터 선입감을 가졌기에 그의 진가를 몰라본 것일까?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 옥희는 참말로 철이 없었다.  키 작은 남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은근이 외모를 중요시했었다.  중매가 들어오면 어머니가 몰래 먼저 보고서는 툇자를 놓았었는데 하나같이 다 좋은 자리였다.
   그러던 중 키도 크고 외모도 반듯한 남편을 만났다.
  
    언젠가 김동추가 집으로 찾아와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공교롭게도 어머니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무슨 남자애가 그리도 비리비리 하냐?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더라.  걔 어디 아픈 거 아니니?  나가서 돌려보내.  원 세상에, 널 처녀로 늙혔으면 늙혔지 그런 놈은 절대로 안된다."
    물론 그는 옥희로부터도 문전박대를 당했다.
    "옥희 씨를 꼭 만나려고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오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동추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얼른 돌아서 가버렸다.  그때 김동추의 몰골이 정말로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 말대로 바람만 불어도 금세 쓰러질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참 안됐다.  너무 교만했던 자신이 미안하기 짝이 없다.
    
    사실 따지고 들면, 남편보다는 김동추가 훨씬 더 유리한 결혼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김동추의 집안을 아는 한 친구가 말했다.  기가 막히게 머리 좋은 수재에다 대대로 내려오는 땅 부잣집 외아들로 부모는 둘다 대학교수라는 것이었다.  키가 작은 것이 당장은 흠이 되겠지만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때는 친구가 너무 속물 같아 콧방귀를 뀌었으나 세월이 흐른 후, 딸들을 시집 보낼 때는 옥희 역시 속물이 되어 있었다.
  
    이제 세월이 40년이나 흘렀으니 그 땅들이 지금은 금값이 됐을는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든 친구가 참 대견스럽다.  집이 어려워 중도에 대학을 포기하고 어디 취직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그 후론 까마득히 잊어버린 친구다.  그녀로부터도 일체 소식이 없엇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나면 편하게 이야기가 잘 되는 친구였다.  가끔 서울엘 나갔었는데도 그 친구의 소식은 바람결에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아! 내 주소를 혹시 그 친구를 통해 안 것이 아닐까?  김동추는 그 친구랑 어떻게 연락이 닿았을까?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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