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텃밭

2005.01.22 04:37

김동찬 조회 수:748



김동찬[-g-alstjstkfkd-j-]열린시학 시인선 15번
봄날의 텃밭
김동찬 시집


제1부

부석사 무량수전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든 시골길을 지나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과수원 길을 지나
실직한 친구와 부석사 가는 길

구두를 닦던 날품을 팔던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할 거잖아.
그리고 그 때까진 제발 글 따윈 쓰지 마.
나도 이제 몸이 쑤셔.
언제까지 보험 팔 수 있을지 몰라.

친구는 아내의 말을 가을 햇살처럼
흘려보냈지만
우리는 묵묵히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래 살다보면 부석(浮石) 같은
희망의 틈새가 있을 거야
자디잔 줄기로 아스라니 이어진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친구는 아내에게서
방금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보여준다.

잘 다녀오세요.
소주는 한 병 이상 마시지 마세요.
가을바람이 좋아요.
그만큼 사랑해요.

가을 햇살에 실어
귀가 따갑게 보내 주시는 하늘의 메시지를
그놈의 절집 기둥들은 천년이 넘도록
듣는 듯 마는 듯 해찰하며
배째라 배 내밀고 웃고 있는 중이었다.



개똥벌레에게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세상의 빛이 되었던 너를 그린다.

그렇게 별처럼 초롱초롱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제 그런 방식의 사랑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네가 사라진 들판은
피비린내만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그럴듯한 이름의 가면을 쓰고
종교를 말하면서 테러를 하고,
정의를 말하면서 전쟁을 한다.

목숨이 우수수 지는 가을의 길목에 서서
오래 전 여름밤에
수줍게 반짝이던 네 이름을 생각한다.



벌레

오늘에서야 알겠다.
왜 네가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던
종교, 이념, 민족, 사상, 문화, 예술……이 아닌가를,
사랑이 아닌가를,
시가 아닌가를.

정작
개,
똥,
벌레만도 못한
우리들을 피해
무주 구천동 어디엔가에
숨어 지낸다는 네가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그리웁구나.


겨울연가




눈물을 글썽이며 인터뷰하는 일본 아줌마,
“욘사마가 사랑을 일깨워 주었어요.”

이천 년 동안 피 흘리며
외쳐온 예수의 사랑을
엇갈리며 잘났다고 눈 부라리던 이웃 국민과의 화합을

목사보다
정치가보다

더 빠르게 더 선명하게
잘 깨우쳐 주는
위대한 탤런트의 시대

시인아 시인아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놀라운 세상, 없다




(2003년 2월 11일자 한국일보에 놀랄만한 기사는 없었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목표물을 콕 찍어 타격할 수 있는 첨단무기를 동원해 공격효과는 극대화하면서도 인명 및 재산피해는 최소화하는 ‘경제적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전쟁’은 또 뭔가? 하긴 테러를 ‘聖戰’이라고도 부르니까.)

개그우먼 이경실 씨가 9일밤 남편 손모(37) 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전치 4주의 부상을 입고 서울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오후 10시 40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아파트에서 부부싸움 도중 손씨로부터 맞아 갈비뼈 3개가 부러진 채 병원에 실려와 진통제 등을 투여 받고 치료 중이다. 병원 관계자는 “부상 상태로 봐서 ‘둔기로 맞은 것 같다’”고 말했으나, 이씨측은 폭행을 당한 경위 등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 한편 이경실 씨는 10일 MBC TV의 TV특종 ‘놀라운 세상’을 녹화할 예정이었으나 출연하지 못했다.

(‘놀라운 세상’은 어디로 갔을까?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 전쟁도 WAR CRAFT나 부러진 갈비뼈 밑으로 사라져 버린 걸까? 이제 TV에서도 ‘놀라운 세상’은 없다.)



컴퓨터피아를 위하여




머리를 감고 단말기 앞에 앉는다.

플라타너스는 가을을 숨기지 않는다.
솔직한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함부로 길에 떨어진다.
밟히운다.

보도 블록은 단단히 털끝을 세운다.
햇빛이 부딪다 달걀처럼 부서진다.
거부한다.
무질서 속에서 싹트는 것들을
피어나는 것들을
아! 피어날 것들을

FALL FALL FALL
아무래도 컴퓨터에는 떨어지는 것들이 없다

머리를 감고 단말기 앞에 앉는다.
적확한 출력을 위하여
억만년 찬란할
컴퓨터피아를 위하여

쓰레기 없는 거리.



전갈자리




은하수가 흘러가 닿는 남쪽 하늘에
멀리 보이던 전갈이
적도가 가까운 르완다에서는
덮칠 듯이 꼬리를 세우고 머리 위에 서성거린다.

천개의 언덕을 가진 나라.
산비탈마다 굽이치는
감자밭, 옥수수밭, 사탕수수밭
도무지 가난이 자리잡을 틈이 없어 보이지만
내전으로 백만이 죽고
빈곤과 질병이 횡횡한다.

키갈리의 학살기념관에는
반짝이는 별들을 눈에 담은
어린 천사들의 사진이 웃고 있다.
그들은 이제 엄마, 아빠 품에서 잠들었을까.
어느 하늘 아래에서 떠돌며 울고 있을까.

전갈아
전갈아

이제 치료하는 독을
은하수에 풀어 놓아
이 땅에 스며있는 원한도 녹이고
질병도 죽이고
풍요의 여신을 불러오너라.

그래서
카이로에서 희망봉까지 긴 잠을 잘 수 있다면
저 잠을 설치며 울어대는
Guest House의 수탉들에게
아침을 열게 하렴.

르완다여, 아 아 아프리카여.



희망봉에서 희망은




사십도 중반을 넘어서
새삼스레 희망이라니.

이제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땅끝에 서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희망봉인가

하지만 여기에서는
누구나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풍덩 물에 빠질까.
오던 길로 돌아갈까.

그래,
희망은 어쩌면 희망을 버리는 것.
먼지를 털어낸 주머니에
빈손을 꼭 찌르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빙 둘러 돌아가기로 마음먹는 것.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
남극으로 흘러가는 그 커다란 물줄기가 느껴지고
내 가벼운 몸뚱아리도
또 하나의 바다가 되어 몸을 섞으리니

희망은 아무래도
곡선이다.
바람에 팔랑 날아가는 모자를
그냥 웃으며 저 시퍼런 바다에 날려 보내는 것.
빈몸으로 돌아서더라도
웃음의 빈 자리
아연 햇살이 가득하다



라스베가스 순례




라스베가스는 말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지친 몸뚱일 일으켜 세워
헉헉헉 가쁜 숨을 쉬면서
황영조처럼 뛰어 오라.

모래 바람에 끼쳐 오는
뜨거운 만금의 꿈을 꾸며
저 돌산 너머
너희의 금광으로
후우하 말을 달려오라.

더위와 중노동에 죽어 나간
중국인들의 얘길랑 흘려버리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쌩쌩 엑셀레이터를 밟아 오라.

입간판 위에서
큰 젖가슴 두 개를 가운데로 모으고
금발의 미녀로 길게 누워
라스베가스는 말한다.

괴로운 태양이 저물어 갈 때
나는 하늘의 별들을 지상에 뿌리며
나타나리니
천국이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로마의 황제도,
보물섬의 주인도,
혹은 파라오도 될 수 있다.

네 앞에서 수십 명의 여자들이
옷을 벗고 춤추고
네 침실로 백마가 뛰어든다.

남의 나라에서 개 같이 벌던 돈이
쿵쾅쿵쾅 쏟아진다.
얼마나 좋으냐.
얼마나 황홀하냐.

주머니가 비고
새로운 아침이 왔을 때,
화장을 벗은
늙은 창기처럼 네 앞에 앉아
비로소 네가 찾던 진리를 보여 주리라.

막막한 사막 가운데로
너희가 돌아가야 할
뜨겁게 타고 있는 먼 언덕길을 보게 될 테니

속은 쓰리고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 지리라.

너희들이 갚아야 할 빚이
지은 죄만큼 깊으며
인생이
그리 짧지도 만만하지도 않다는
깨달음을 입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어리석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엔 공짜가 없느니라.

라스베가스는 말한다.



마 늘



1.
우리들이 갖고 있는 향기 하나가
다른 사람에겐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후욱 불어버리고 싶은
악취일 수 있다.
비누칠 해 깨끗이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생선 냄새처럼
당신의 향기가 내 몸에 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돼지고기를 구울 때처럼
살짝 마늘 몇 개를
더 올려놓는다.
그러면 당신은 말하겠지
코리언은 마늘 냄새가 지독해요.

2.
감기에 걸렸다고
정력에는 그것이 최고라고
만병통치까지 끄집어내며
시도 때도 없이 풍겨내던
내 고향 친구 녀석의
마늘 냄새가
문득, 잃어버린 내 향기인가 싶은
아메리카의 저녁 한 때
도대체
무엇이 나를 끌고 다니며
이토록 지치게 만드는지
알고 싶어서
꼭 알고 싶어서
마늘 한 쪽을
눈물을 흘리면서 먹어 치웠다.



0 이거나 1 ?




우리가 컴퓨터를 껐을 때 팍 사라지는 것들,
영화가 끝나며 없어지는 것들,
헛것이란다.
허구란다.

만져진다고?
느껴진다고?

거짓말,
우리들의 사랑도
만남도 섹스도

심지어 거짓말이라는 거짓말도



큰 일




한국에서 6촌 동생인 재현이가 방문했다. 소식이 뜸했던 친척들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재현이의 바로 아래 여동생인 재경이가 세 번째 애를 낳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유달리 몸이 가늘고 하얘서 어리게만 생각되던 그 아이가 벌써 애를 셋이나 낳은 아줌마가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근데 걔가 애를 낳고 나서 산부인과가 울음바다가 되었잖아요.”
나는 덜컥 가슴이 내려 않았다. “아니, 애를 낳다 뭐가 잘못 되기라도 했나?” 하고 급히 물었다.
내가 깜짝 놀라니까 나를 진정시키며 “별일은 아니구요. 이번엔 딸을 바랬는데 아들을 또 낳아서 섭섭해 했다는 얘기예요” 하고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구, 이 싱거운 친구야. 난 무슨 큰 일이라도 난줄 알았네” 하고 함께 웃었다.



40대, 위기에 관한 몇 가지 메타포




1. 해와 달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분들 중에 해는 동쪽에서 달은 서쪽에서 뜬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서 저 또한 장난 삼아 그걸 주위의 분들에게 물어 본 적이 종종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착각은 과학적 진실에 대한 무관심에서 일어난 일이겠죠. 문학적 진실과 과학적 진실은 반대 개념이 아니고 반대처럼 보일 뿐이지 사실은 가슴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머리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인 같은 개념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늘 진실은 머리로든 가슴으로든, 과학적이든 문학적이든,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통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2 열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게 있어, 그건 뭐든지 억
지로 안 된다는 거야. 소련 중국이 무너지듯이 남북통일도 어느 날 순식간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런 저런 씨를 뿌려 놓으면 언젠가 몇 개는 사막에서도 살아
남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거라는 그런 생각. 그럴까?


3. 우유

미국에 사는 사람들답지 않게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늘 우유를 냉장고에서 유효기간을 지내게 하고 버리게 되곤 합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를 가지고도 시를 쓴 시인이 있더군요. 무엇을 버릴 때마다 한 번씩 시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하고 버리겠습니다. 아, 난 너무 소중한 것들을 별 생각 없이 버리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요. 여긴 아직 십이월 말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지난해에 버렸던 건 무엇이고, 새해를 맞으며 버려야 할 건 무엇이고, 또버리지 말고 시로 만들어야 할 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4. 위스키

언젠가 한국 나갔을 때 용호가 공항에 마중 나왔어. 호텔로 날 바래다 주었는데 엘에이에는 볼 수 없는 눈이 서울의 밤하늘에서 내리는 거야. 호텔 라운지로 갔더니 피아노 생음악 연주가 있고…… 죽이더군. 그래서 “위스키 온더락으로 두 잔!” 주문했더니 용호가 “한 잔만 시켜. 난 운전해야 돼”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나도 비행기에 시달린 몸이라 되게 피곤하더군. 위스키도 맛이 없고 독하기만 하고…… 그 때 그 생각했어. 우리 학창시절엔 몇 백 원 씩 걷어서 막걸리에 두부김치 먹으며 행복했었는데. 호텔에서 먹는 위스키보다 그게 훨씬 맛있었는데…….

5. 총

어린 시절 나는 무서워하지 않을 것을 무서워했다. 다박골 지나 상여집, 공동우물, 제줏집 뒷간, 바람불면 후우우 울어대던 대숲……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뉴욕 테러도 그래서…… 비행기가 그렇게……지금은 사람이 무섭다. 몇 푼의 돈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고 칼로 사람을 고기 썰 듯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총이 있으면 나 또한 어느 순간 쏘아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내 증오

무섭다.



대한독립만세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내 아내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얘기합니다
참 이상해
엄마가 끓이는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는데
엄마는 식당에서 항상 된장찌개만 시켜

미국에서 이십 년을 살았어도
순 한국식 입맛을 가진 아내

유관순 누나가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 부르던
그 모습을 닮았습니다.

잠을 잘 때도
독립문표 속옷이 다 보이도록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리고
대한독립만세!
하는 자세로
쿨쿨 잠을 자곤 합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멀리 바다 건너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열일곱 시간 뒤진 미국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새해 아침을 맞았을 때 저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하는 오후를 보내고 있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요. 시간도 산도 물도 말도 다 다른 곳입니다. 하지만 나는 미국 사람은 아닙니다. 애국자는 아니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나 나의 살던 고향은 하고 누군가 부르는 노래를 들을 때면 괜히 눈물이 조금 나올려고 하는 한국 사람입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하는 노래를 따라 부를 때면 바람 앞에 선 조국을 위해 말갈기를 날리며 만주벌판을 달리는 사람인 양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합니다. 그리고 늘 찬란한 소식만이 한국에서 날아오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러니까 음, 말하자면 나는 별입니다. 태평양 넘어 반 동강난 나라에 한 줄기 빛을 항상 보내고 있는 반짝반짝 작은 별이지요.












제2부




봄날의 텃밭




아버지가 생전에 받아 놓았던 쑥갓, 상치, 아욱 씨들을 텃밭에 뿌려 놓았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잡초도 뽑고 물도 주면서 어린 새싹들이 흙을 밀고 올라오는 걸 하루에도 몇 번씩 숨죽이고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새끼손톱보다 작은 떡잎들 위에 내려앉은 연초록 햇빛들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참새 소리로 재재거리기도 하다가 아버지 굽은 등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식구들이 다 나간 빈 집에서 느리게, 혹은 빠르게 자라나는 새싹들과 얘기도 나누며 저무는 시간을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내 곁에 앉아 상치는 봄에 먹는 게 더 맛있다고도 하고 아욱국은 장모님이 막내 사위 왔을 때 끓여 내놓는 국이라며 웃으십니다. 아버지보다 먼저 떠난 세 형님들이 하하하하 웃는 소리 뒤뜰에 가득합니다. 아버지가 만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봄날의 따뜻함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죽은 것들입니다. 이제사 나는 아버지를 좀 더 자주 만나고 얘기를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제가 비로소 아버지가 될 것 같습니다.



바 다




전망이 탁 트인 산타모니카의 언덕에 서서 보아도 바다를 다아 볼 순 없다. 해안선과 수평선에 담겨진 바다의 한 쪽 끄트머리가 문에 낀 옷자락처럼 팔랑거리고 있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환한 바다의 저 건너, 건너편에서는 깊고 깊은 어둠만이 철썩이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는 내려도 내려도 쌓이지 않는 눈이 발을 빠뜨리고, 항구 하나를 덮치려 찬바람이 몸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내 새우눈으로 저 속 깊은 바다의 깊은 속을 도대체 어떻게 다 볼 수 있겠는가. 너는 내 옷자락 끄트머리를 보고 내 마음의 바다 어디쯤을 가늠해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큰비




비가 오면 아버지는 우울해 하셨다.

어렸을 적 어떤 점쟁이가 할머니에게 말했단다.
그 아이에게 큰 비가 세 번 있다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을 때.

아버지는 점쟁이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점쟁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셨다.
두 번은 맞았어.
이제 한 번 남았지.

나는 로즈힐에 아버지를 장사 지내며 따갑고 건조한 햇살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 점쟁일 만나면 틀렸다고 얘기해 주세요.

나는 보상받을 길 없는 아버지의 우울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입심 좋았을 그 녀,
자기가 한 말을 태평하게 잊어버리고 쉬고 있을 그 년.

그런데 그 때 난 빗소리를 들었다.
세상이 물에 젖어 흐려지는 걸 보았지.
참말로 용한 점장이었다.
맞았어.
우리들 가슴에 내리는 큰 비.







시시한 풍경




내 스무 몇 살 피어나던 날.
비발디의 봄을 들으면서
세검정 쪽으로 가던 8번 버스 안

아침 열 시는 넘었지.
창밖으로 보이는 가게들에서는 행길로 물을 뿌리고 있었고.
무슨 여성 살롱인가 하는 방송이 나오고
반짝이는 햇빛 사이로 그늘을 키우고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봄바람이 차들을 밀고 가다가
한가한 차 속을 검문 경관처럼 쑤욱 둘러보고 나갔던가.
그래 예쁘장한 낯익은 여학생 하나 있었지
빈 자리에 앉지도 않고 새침하게 “삼중당 문고”를 들고 서 있던
하얀 목, 긴 머리칼.
햇살이 뿌리는 물살에 바퀴를 굴리며
보도블럭 사이 투두툭 떨어지기도 하던……

스무 해도 훨씬 지나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런 풍경이
정말 까맣게 잊혀졌던 시시하고 시시한 풍경이
작은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 따라
함께 흔들흔들 살아나
나를 흔들어대고 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내내 나를 따라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있는 것처럼



부서뜨리는 바다




바다 앞에 서면
우습다.

지킬 것도 없는데
빈 모래성 하나
문을 굳게 잠그고 있다.

먼지처럼 쌓여있는 모래알들 위에
물새 한 마리
발자국 몇 개를 찍는다.

파도가 밀려와 쓸어낸다.
남은 것은



며칠 동안 찾고 있었던 싯귀절이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 가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인 양
조약돌 몇 개를 집어던진다.

해변의 상가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면
바다는 어둠을 밀고 와
소리로 남는다.

바위도
절벽도
따뜻한 불빛이 있는 술집도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너와 가졌던 오르가즘도
지워지지 않던 미움도
키를 한 치나 더 늘려보려 했던

꿈이라 이름 붙였던 것들도
우습다,
결국엔 다 모래가 될 것이다.

바다 앞에 서면
문득
서럽다.



바 퀴




바퀴 하나 만들며 산다.
동그랗게 그린 것만으론 굴릴 수 없다.
부피를 주어야지.
바람을 가르도록 날렵한 폭과
자갈길에도 깨지지 않을 탄력을 가져야지.
그러나 하나론 안돼.
너와 나,
적당한 거리와
튼튼한 축으로 연결시켜야지.
쿨렁쿨렁 충격도 나눌 수 있도록.
한없이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
돌아보면 험한 길 마다 않고 달려와
어느 새 곁에 서 있는 너.
너로 인해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듯이
너 또한 내게 기댈 수 있고
부수어도 부숴지지 않는
한오백년 달려갈
바퀴 하나 만들며 산다.



은행나무, 그 노란 잎




오랜만에 서울을 만났다. 경복궁 앞 은행나무들은 이십 년 전처럼 여전히 그 곳에 서서 노란 색종이로 나비를 접어 하나씩 날리고 있었다. 가을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입대를 하루 앞둔 나는 그 해 가을의 쌀쌀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젊음의 계절이 어떻게 시드는지를 보았다. 나무들이 환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는 한편으로 낙엽이 한창이라는 것을 알았다. 맑은 나뭇잎 하나를 집어들었다. 내 손이 노랗게 물이 들었다. 나뭇잎 하나 하나에 머물고 있던 찬바람이 옷깃으로 파고들었다. 내 손에서 나뭇잎이 떨어졌다. 부채꼴 노란 손을 흔들며 안녕 대신 바보라고 말했다. 그 말뜻을 물어볼 수 없었다. 바람이 빠르게 그 이파리를 쓸어가 버렸으므로. 마지막 만남. 그렇다. 마지막 만남이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은행나무들은 수많은 연초록 이파리들을 새로 틔울 것이며 가을이면 입대를 앞둔 청년의 눈앞에 세상을 노랗게 만들 것이다. 그 이파리들은 찬바람에 나비처럼 떨어지고 그 날개에 팔랑이는 햇살을 스무 살 눈물 많은 아가씨가 물기를 묻히며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이십 년 전 내가 집어들었던 때 묻지 않은 바로 그 노란 잎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찻길에 떨어진 이파리들이 바람이 지날 때마다 몸을 뒤척였다. 마지막 고운 순간들이, 그 위에 반짝이는 길다란 가을의 햇살들이 ‘바보, 바보’ 하면서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작별의 인사를 던지고 있었다.



겨 울 나 무




너의 누드를 그리고 싶다.

온 하늘을 취하게 하던
붉은 꽃이나
온 땅을 싱싱함으로 넘실거리게 하던
무성하던 이파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던
탐스런 열매들
홀딱 벗고 다 줘 버리고 난
네 모습을 그리고 싶다.

까실한 손등이나
터진 뱃살
눈가의 작은 주름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다.

잘리운 어깨 속의 나이테를 세노라면
따스하고 맑은 날들 사이사이
차라리 쓰러지고 싶은
혹독한 비바람과 살을 베던 추위도
어쩔 수 없이 속살로 굳어져 버린 것
보이고

이처럼 아픈 상처들도
노가리 안주처럼 버릴 것 하나 없다고
웃으며 어루만질 수 있는
네 넉넉함도 담고 싶다.

굵은 눈발 아래
마지막 한 방울 눈물까지도
다 벗어버리고 남은
단단한 사랑 하나,
꽃이나 풀이 아닌
비로소 나무로 꿋꿋이 선 너를

쉬 바래는 물감이나
곧 해지고 말 캔버스가 아닌
잘 깎고 다듬은 가슴으로
가슴속 깊이
새겨 넣고 싶다.



단 풍



1.
그것은 꽃이었다.

이파리 하나 하나가 빨갛게 피어나는
꽃잎이 되었다.

단풍나무 하나가
하늘까지 닿은
큰 꽃을 피우고 있었다.

2.
그것은 불꽃이었다.

벽에 걸린 유리액자 속에
단풍나무가
초록을 뿜어내고 있더니
어느 저녁
붉게 불타고 있었다.

노을 때문인가 하고
눈을 크게 떠보아도
노을은 노을대로
단풍나무는 단풍나무대로
불꽃을 사르고 있었다.

불길은 강물 되어
마을을 넘어
산을 넘어
흘러흘러 가고 있었다.

3.
사람들은
붉은 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는다,
죽음의 색이라고.

그러나
먼저 떠나간 사람들,

남겨 두고 가기엔 너무나 눈이 아린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검정이나 파랑만으로
쓸 수는 없으리라.

온몸으로 피워 낸
붉은 사랑,
마지막

꽃.



기차역 그림




기차역 가까이
살았던 사람은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그림 몇 장
꼭 갖고 있다.

들어오면 나가야 할 것 같고
나가 있으면 돌아오고 싶던
고향이
타향과 어울려
고단한 모습으로 함께 서성이던
대합실.

잠시라도 곁을 준 일이 없었다는 듯이
먼 곳으로 점이 되어 사라지던
기차.

나 떠날 때마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발을 못 박고
손을 흔드시던
어머니.

이제는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빈 기차역.



이 륙




빨간 막대기 흔들며 전송하는 항공요원
저녁 8시 비행기는 하늘로 떠오른다.
세상은 잠시 기울고
나는 발을 땅에서 뗀다.

내가 깊은 상처를 안고 내린 후에도
밤기차는 아무 일도 없이
예정된 길을 가고
지하철은 도시의 피곤을 나르고
있을 것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 싸여 있던
아무도 없는 내 고향
집, 감나무 집이
어디론가 가 버린 그 자리엔
아무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서고,
‘아무나’들은 그들의 고향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내가 고향을,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만남들을,
시간들을
잃고,
떠나는 순간에도 그것들은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방금 내가 내린 서울이
창밖으로 서둘러 멀어지고 있을 때,

잠시 동안의 꿈이여, 사랑이여, 사람들이여
안녕히……
내 가슴속에는
고향집 탱자나무 가시 하나가
들어와
콕콕 찌르고
있었다.



바람이 없다면




봄눈을 녹이던 하얀 바람이 흰 수선화 향기를 날라줄 수 있었을까.
저 여름나무의 이파리들이 팔랑팔랑 초록을 뿌릴 수 있었을까.

벌 나비도 길을 잃었을 테고
저 나무도 열매 맺지 못했을 거야.

꽃이 꽃일 수 있었을까
나무가 나무일 수 있었을까.
저 물가에 반짝이는 햇살들, 있었을까
무지개가 있었을까 있었을까.

아 만일 바람이 없다면
오십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도
흔들리는 물결이 없다면
내 향기를 너에게 전할 수 없다면
나는 꽃일 수 있었을까

나무일 수 있었을까

사람일 수 있었을까.



지 구




달에 가서 보니
지구도 달 같더라
쟁반 같이 둥근 달보다
더 큰 달덩이더라.
내 마음 어두운 구석까지도
환히 비추더라.

화성에 가서 보니
지구도 별이더라.
초롱초롱
내 눈에 담기더라,
너의 눈빛







제3부

시인은 시로 말한다








새, 나를 깨우는




동두천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봉암리. 어둠 품고 있는 산을 귀로만 마주 보던 밤. 제 삼 초소. 위장망으로 덮여 있던 적막에 가는 금 하나 그으며 후잇 후잇 영락없는 사람이 부는 휘파람. 비석도 없는 초소 옆 무덤이나 조금씩 닳아지던 방벽. 그 옆 자리에 가만히 놓여 있다가, 헛것인 양 언뜻 스치는 그 소리에 나는 눈에 불을 켠 한 마리 짐승이 되곤 했다. 투명한 무서움, 서늘한 깨어있음!을 주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새.

홀로 잠이 깬 새벽. 시계 초침 보다 더 또렷이. 무덤 옆 제 삼 초소, 봉암리, 동두천 위수지역을 벗어나 서울, 그리고 그 길이 어디라고 태평양 건너 로스앤젤레스 외곽 우리 집 마당까지 이십 년이나 걸려 날아와 후잇 후잇 나를 부르는 소리 들었다. 털을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안 보이는 것까지 볼 수 있도록 맑은 신경들을 일으켜 깨우라고. 일어나라고.

새, 나를 깨우는 호루라기.



새, 스왑밋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자리에 생기는 기압골, 늘 바람이 분다.

파장 때면 이는 먼지 바람, 어디서 모여들었을까 이름 모를 새들. 몇 장의 돈을 쥐고 떠나고들 있을 때 새들은 속속 도착한다. 그 중의 한 마리는 낯이 익다. 아, 목포 선창가의 그 갈매기가 아니냐. 먹지 않으면 배고픈 몸뚱아리, 신이 아닌 당신 바로 그 짐승이 아니냐. 먹기 위하여, 먹고 살기 위하여 밑으로 밑으로 내려 앉으라. 먹을 걸 찾으라, 종종 걸음으로. 놓치지 마라, 튼튼한 부리로. 그러나 새들은 안다. 헐벗은 새가 살찐 닭보다 낫다는 것을.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다. 몇 개의 먹이를 구하면 이내 그 날개를 편다. 날렵하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하늘로 솟구친다. 꿈꾸지 않는 자 날 수 있으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어찌 꿈꾸랴.
또 그들은 내려온다. 호흡을 가다듬고 노래하기 위하여, 포근한 잠을 위하여, 둥지 속에서 기다리는 새끼들을 위하여, 다시 날아오르기 위하여 내려온다. 마치 내가 내 새끼들을 떠올리며 밴의 시동을 걸 듯이 내려오고 또 날아오른다. 매일 되풀이하여 천막을 치고 물건을 깔듯이, 또 거두고 밴에 집어넣듯이 내려오고 또 날아오른다. 땅에서는 하늘로, 하늘에선 땅으로 내려오고 또 날아오른다.

파장 때면
늘 바람이 분다.



무지개




비가 내렸다.
10번 고속도로는 어깨 위에 세기말을 짊어지고 있었고
길을 안내하는 표시판이 후줄그레 걸려 있었다.
나는 무거운 발을 끌면서
1999년 12월 31일 오후 세시를 가고 있었다.
스모그와 물에 젖은 세상의 우울한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알지 못하는 미래도
언젠가는 이렇게 잠겨가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이렇게 가는구나 중얼거리면서
가고 있었다.
그 때,
저무는 하늘 위로
아직 남아 있는 오늘의 햇살이 빗금으로 스미고
보이지 않는 상처들로부터
물질문명의 딱딱함으로부터
젖어있는 무기력으로부터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으로부터
지나간 천년으로부터
물방울 하나 하나에 새겨둔 약속이 일어서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저 건너편에서
눈부신 하얀 손을 내미시는 이.



키 큰 나무




이천 살 먹은 험볼트 삼나무
백 미터 넘는 꼭대기 이파리까지

물은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정한수 기도를 타고
올라가
닿는다

얘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물이 물을 밀고 당기고
만나고 헤어지면서
스무 날 먼 길을 간다

목 말라하는 당신, 어디에 있는가
福音이 마알간 불을 밝히는
겨울 끄트머리
마른 가지에 앉아 있는가.









나 무





무는
서 있다.
서서 있다.
걷거나
뛰거나
날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서서 먹고
서서 생각하고
서서 잔다.
죽어도 서서 죽는다.
하지만 나는 나무의 상념이
가끔 구름을 타고 외출하는 걸 보았다.
어느 비 듣는 날
후루루 노래 부르고
수런수런 목소리도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 말문을 튼 나무에게 물어보았다.
무엇을 보았니?
나무는
넓은 하늘을 보여줄 뿐
다시 입 꼭 다물고


다.



단풍놀이




안개가 옅게 낀 아침,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다.
차들의 꽁무니마다 붉은 색을 달고 있다.
구름도 아침 햇살에 붉다.

늘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잠깐만이라도 쉬었다 가라고
수시로 나를 세우는 저 붉은 신호등

그러나
붉음도 잠깐,
나는 간다.



마지막 열차




밤열차가 내 눈앞에 지나간다.
마지막 열차다

내가 보고 있는지 모르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혹은 어둠을 바라보고
혹은 홍익회 삶은 달걀로 허기를 지우고 있는
저 사람들도 나와는 마지막이다.

보고 싶던 사람을 몇 십 년 만에 만나도
왜 그리움은 그냥 남아 있는 것일까.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마지막 열차를 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의 왕국




주의 - 피곤하거나 졸릴 때 이 글을 읽지 말 것.
때 아닌 눈물을 흘릴 수 있음.

아프리카 초원
큰 나무 그늘 아래
포식을 끝낸 사자 가족이
함께 늘어져 있다.
물기 없는 바람이
코끝에 발라 논 침을
말리고 있다.
콧구멍으로 자꾸
졸음이 기어들어 온다.
대장인 숫놈 사자가
입을 찢어지게 벌리고
하-품
한다.
입이 얼굴보다 더 크다.
하-품
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자가
귀를 쫑긋 파리를 털다
생각난 듯
하-품
하며 공기를 마신다.
사자가 눈을 감는다.











*이 글을 읽고 자연의 프로그램에 따라 하-품하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 세 번을 되풀이 읽어도 하-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존엄을 지킨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 다음 하-품할 때까지.








따가운 햇살을 견디고 난
선선한 밤이면
나무로 만든 캘리포니아의 집들은
삐끄덕 소리를 내며
집으로 돌아온다.

우두둑 뼈마디를 꺾고
끼-익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
근육은 근육끼리
관절은 관절끼리
제 자리를 잡는다.

집이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

집이 내는 그 기척을 엿듣게 될 때면
그냥 자려고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한바탕 아내와 침대를 삐걱이고
집과 함께
집 속에서
단잠을 자곤 한다.



선암사 뒷간




삼류 신파 영화
남의 얘기 같은데 내 얘기

우리들 마음 한쪽이 아릴 때
그래서 떠나간 계집아이나
어머니가 손에 꼭 쥐어 주시던 꼬깃꼬깃한 종이 돈 몇 장에도 눈물겹던 시절
부대앞 삼거리 집 소주에다 새우깡 먹으며 채워지지 않던 기억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유리창도 없이 뻥 뚫린 창틀 너머
언덕에 상사화 한 점 붉게 빛나고
나는 아직도
슬픔의 숙변 한 덩이
시원하게 떨어트리지 못한다.



허리수술 1




먹는 것도
모자란 듯할 때
그만 먹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뭣이든 좀 모자란 듯 하라던
아버지 말씀대로,
허리에 칼 대고 나니
앉을 자리
설 자리
딱 부러지게 구분 못하는
엉거주춤
좀 모자란 듯한
사람이 되었다.



허리수술 2




허리수술 받기 한 달 전부터,
받고 나서 또 한 달
빈둥빈둥 누워 지냈다.
바쁜 세상에 고급병 앓았다.
처음엔 시간이 온통 내것이라서
귀엽고 신기해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삐까번쩍 닦아 광도 내 보고
뽀드득뽀드득 소리도 내 보았다.
그러나
주머니 속의 조약돌처럼
이내 싱겁고 지겨운 일이 되었다.
나는 그 시간을 집어던졌다.
시간은 날아가서 침대 옆 거울을
깨트렸다.
유리 파편이 아내에게, 딸에게
튀는 것이 보였다.
아내는 그것을 아프리카에 간 선교사에게 소포로 부쳤고
딸은 복음성가 악보에 검은 음표로 사용했다.
내가 버린 거울의 작은 조각들이
별이 되고, 보석이 돼
여기저기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것들을 다시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허리를 폈다.
직립으로 서도 아프지 않았다.



질투




피아노 생음악이 우아하게 걸어다니는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양주를 마시며

쥐뿔도 없으면서,
라면에 소주 먹으며 마냥 웃는 한국의 노동자들.
시시한 것들에 감격하는
그들의 웃음,
뒤 끝에 묻어있는 쓸쓸함까지도
부러워한다.

길음시장 술집에서
드럼통을 개조한 연탄불 주위에 모여
40원짜리 닭발을 먹던 내 20대 친구들,
빵꾸난 ‘난닝구’를 입고 있었지.
하지만 마냥 즐거워하던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훈훈한 그때,
우리들은 인생의 가을까지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했었다.

바둑은 끝내기가 힘들고
낭만은 뒤처리가 곤란해.

가난도 젊음도 다 이방의 바다를 건너가고
눈발만 돌아와
추위를 가리는 저녁 한 때.



금연




담배를 끊었다.
갑자기 거룩해져서는 아니고
잔기침 때문에,
가끔씩 쑤시는 가슴
기분 나쁜 목의 따가움.
쉰도 안 됐는데
담배에 목숨 걸 일 있나.

아니 담배를 줄였다.
끊었다고 말했다가 입에 물면
다시 피게 될 것 같아서.

어느 겨울 눈 덮힌 산에 올랐을 때
별빛 반짝이는 허허로운 하늘을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이고
내뿜을 수 있도록.



루미의 털




루미의 명상시집
140쪽을 읽다가
검은 펜으로 주욱 그어 놓은 것 같은
납작 붙어있는 털 하나를 보았다.
털어도 털어지지 않는 털.

사랑을 받는 길이란 험하도다
거기에서 사람은 이별의 슬픔에 떨어지고 말도다
신은 신에게 이르는 길에서의
단 하나뿐인 영혼의 친구이도다

사랑, 이별, 슬픔, 신, 영혼이 있는
14세기 신비주의자의 금쪽같은 시구(詩句)보다도
그 험하다는 길 위에서 오고 가지 못하고 있는
털이 못내 안쓰러워
손톱으로 파
이별의 슬픔에 털털 떨어지게 하고 말았다.



설사




아껴뒀다 먹으면 설사한다.
고스톱 한 번 쳐 봐.



위대한 식사




개미가 마당의 개밥 남은 것에 새까맣게 붙었다.
줄을 잇는다.
나는 그 줄을 따라 주-욱 발로 문지른다.
살아남은 개미는 흩어진다.
그러나 다시 줄을 잇는다.
먹을 것이 풍기는 냄새
먹을 것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부른다.
자기들을 죽이는 발길이 있다는 건 잊어버린다
동료들의 시체를 지나 먹을 것을 향한다.

때론 음식에 대한 갈망이
시체의 공포보다 크다.

먹는 것은 위대하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어느 날




문득 생각한다.

내 거시기가 어느 날 잘려 나갔다면
혹은
늘 같은 모양으로
한 가지 오줌 누는 기능만 수행하는 날이 오면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부둥켜안고 뒹구는 일 따위는 잊어버리고
오직 티없이 맑은 정신으로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현자가 되어 있을까.

아니야,
아마도 나는
입으로 양기를 쏟아내는
슬픈 음담패설꾼이 되어 있을 거야.
틀림없이.









밥을 먹다가




뭐라고 뭐라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떠들던
텔레비전을 껐다

그 순간 세상의 소리에
포오즈(PAUSE) 단추가 눌려졌었나
맑은 고요가 머물고 난 후
내 귀는 더욱 밝아져
창밖의 새 소리를 받아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식탁 위에 굴러다니고
아내가 화안하게 웃자
상추 하나는 더욱 싱싱해지더니
노오란 꽃들을 피우기 시작했다.





제4부




민들레 1




꼭 바람 때문이었을까

민들레 꽃씨 몇 개
솜털 세우고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던 것은

모든 것이 숨을 멈추고
햇볕은 따뜻하여
눈부시게 맑아 있을 때
물무늬 짓듯 조용히
알맞게 불어온
그 때 그 바람 때문이었을까

말 없이
눈물 없이
옷자락 끌며
돌아보는 미련 없이
서있는 듯 날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등을 밀지 않아도
민들레 바람 불면
햇빛에 하늘 건너는 무지개로
나 그대를 그렇게
떠나야 할 때
떠날 수 있을까



민들레 2




안으로, 안으로만 흘려보내던 눈물
딱분으로 꼭꼭 누르고
어머니
떠날 채비를 한다.

흰 고무신 닦아 신고
손지갑, 치맛자락 가볍게 붙들면
피어나는 들꽃 하나도
눈에 아프다.

배고픈 고향 마을에
나물을 키우던
따뜻한 바람 하나,
딛고 올라서면
이내 하늘이 된다.

이승의 짐이 이리 가벼웠던가.
떠나는 열차 무심히 못 보내던
질긴 인연들도
놓친 풍선처럼 빠져나가고

새 무덤가의 바람개비
잠 못 이루며 쌓아 두었던 한숨을
바람인 양 돌리며 서 있다.



민들레 3




우리를 눈물나게 하는 것이
비단 견딜 수 없는 슬픈 일 뿐이랴

분하고 억울해 혀라도 깨물고 싶을 때,
우습고 즐거워 숨쉬기 힘들 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문득 그리워 질 때,
시계 소리만 서성이는 빈 방에서 홀로 남겨져 있을 때,
하품할 때,
두 손 위에 담기는 햇살처럼 아무것도 아닐 때,

민들레 꽃씨 하나
텅 빈 하늘로 날고 있을 때.








민들레 4




돌아가지 않겠다
돌아갈 수 없으니까

바람 부는 대로 실려 가겠다
거스를 수 없으니까

발길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꽃을 피우겠다

시베리아 툰드라 단단한 얼음 위나
하와이 사탕수수밭 뙤약볕 아래

혹은,
로스앤젤레스의 공동묘지
로즈힐(Rose Hill)이라도 찾아가
그곳의 흙이 되겠다

우리 형처럼,
우리 엄마처럼



민들레 5




사람들이 아이엠에프 하늘이라고 말하던 우중충한 날, 수제비 반죽처럼 눈이 떨어져 차들이 길을 이고 기어다니던 날, 우리들은 워커힐 이 층 뷔페 식당에서 만나 오래 전의 겨울과 봄을 얘기했다.

맥주 먹고 취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농담 삼아, 우리들 주머니 사정을 안주 삼아 사십 원짜리 닭발을 뜯으며 소주를 먹던 시절이 있었지.

동대문 종합상가 점원으로, 냉동 학원생으로, 택시 운전사로, 공돌이로, 말단 은행원으로, 대학을 다니는 자취생으로 바람 닿는 곳에 모진 시멘트 틈새를 찾아 뿌리를 내리던 시절이 있었지.

얼음도 잘 얼지 않는 남도의 겨울은 서울 와서 보니 애들 장난이었어. 영하 이십 도. 세숫대야가 손에 쩍쩍 달라붙었으니 참말로 추워도 징하게 추운 시절이었지. 그래도 내복 한 번 안 입고 그 겨울을 견뎠으니 젊음이 난로였지. 니들 얼굴 한 번 보고 소주 한 잔 하면 몸에서 불이 났지.

창경원에 왁자지껄 벚꽃 피어날 때, 그 잘난 서울의 봄을 낮은 키로 쳐다보며 여기저기 밟히면서 우리의 꽃들을 피워 냈지. 개나리, 병아리, 고향의 따뜻한 햇살, 그 촌스럽디 촌스러운 색깔로.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와인을 마시다 말고 한 놈이 말했다. 옛날 짬뽕이 먹고 싶다. 그래 건더기는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소주 한잔. 우리는 숟가락을 놓고 일제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그치고 내려갈 길이 뚫리길 기다렸다. 음식이 식고 있는 동안에도 눈은 무심한 얼굴로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은 민들레 하얀 꽃씨가 되어 하나씩 춤추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민들레 6




이렇게 남는 것일까.

하나, 둘 떠나고 나면
결국
남은 것 없이
시린 손으로 남는 것일까.

솜털 하나까지도 간지르던
봄바람의 숨결도
이제 들리지 않는다.

달랑
꽃받침 하나로 남아서
까까머리,
하숙방,
‘밤의 플랫포옴’을 알리던 ‘이사도라’의
끊일 듯, 끊일 듯 이어지던 선율을
추억한다.

자정 너머 새벽녘까지
무엇인가를 얘기했었지.
그것이……
무엇이었더라.

우정,
사랑,
문학,
그런 시시한 것들이었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어쩌면 무심결에
내가
훅,
불어 버린……



민들레 7




죽었니? 살았니?
내가 이만큼 와 있는 동안
너는 어디에 가 있는 거니?
한때는 어깨도 부딪고
머리칼로 내 얼굴을 간지르기도 했지.
바람결에 소문이라도 간간히 전해 주더니
그나마도 끊겼다.
죽었니. 살았니.
주소불명으로 돌아온 민들레 꽃씨 하나.
손 위에 놓고 묻고 또 묻는다.




민들레 8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정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사과나 꽃병의 그림자
그 끝에서 살아오던 역광

가 만 히 가 만 히 들여다보면
응달에서도
춤추는 풀
노래하는 벌레

밤이 너무 깊은 새벽
무거운 그림자를 벗는
닭 우는 소리에
마음의 상처에서도 조금씩 새살이 돋았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뒤안에서는
투명한 꽃씨 사푼 내려앉고
노오란 우주 하나
새롭게 피어나고



민들레 9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일 다닐 때
아파트 계단에서 늦도록 기다리시던
어머니

집도 사고 좀 안정되었을 때
술 처먹고 늦게 들어오면
늘 문열어주시던
아버지

오늘도
현관 문 앞에
가만히
내려와 계시네



민들레 10




막 피어난 솜털꽃씨
귀후비개 같아서
그걸로 묵은 먼지 털어내다 보면

귓 속에 꽃길이 열려
수섬수섬
꽃말도 다 들리겠네



비 밀



1.
시커멓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른 아침 산에 오르고
저물녘이면 내려오는
그 사람들

민간인을 가장해
우리들 깊숙이 침투해 있는
그 수상쩍은 무리들

잘 분간이 안 가지만
잘 살펴보시라,
유난히 큰 그들의 귀.
말을 아끼고
듣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산사람들의 귀는 당나귀 귀.
산사람들의 귀는 당나귀 귀.

산이 침묵으로 말하는 이야기와
풀벌레와 들꽃의 미세한 노래까지
그 귀는 놓치지 않는다.

그들이 나무에 기대어 잠시 쉴 때에도,
때 묻지 않은 푸른 바람
계곡의 물이 내려가며 들려주는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 히말라야의 가슴 깊이 숨겨진
비밀을 들으러 간다고 한다.
크레바스에 누워서 돌아오지 않는 산악인들과 셀파들이
왜 거기 그토록 오래 누워있는지……

2.
한없이 작은 사람에게,
작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
살아서 그 위에 딛고 서있는 사람에게,
산중의 산들이,
만년설과 빙벽이,
거침없이 내려 꽂히는 햇살이,
네팔과 티벳의 신들이,
산에 발붙이고 살아온 그곳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얘기를
그들은 그 큰 귀로 들을 것이다.

그리고 무얼 들었냐고 묻는
우리들 곁으로 돌아와
씨-익 건강한 웃음으로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대신하리라.

산사람들의 귀는 당나귀 귀.
산사람들의 귀는 당나귀 귀.

* 2001년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는 재미한인산악회원들을 위한 축시.



맑은 울림




‘맑은’ 하면
물방울이 생각난다.
처마 밑에
낙숫물이 고인 작은 호수에는
하늘도
나무도
꽃도
목욕을 막 마치고 나온
어린 아이들의 눈동자처럼 빛난다.

‘울림’ 하면
파문이 생각난다.
한 방울 물방울 떨어질 때마다
출렁 즐거운 소란이 인다.
옷을 벗는 모래알들
물장구치며 신이 난다.
웃음소리
내 가슴에도 가득 번진다.

‘맑은 울림’하면
어릴 적 바라보던 고향집 낙숫물이
아직도 떨어진다.
세상은 어느새
맑아지고
밝아지고
화알짝 웃는다.

(<맑은 울림> 창간 10주년을 축하하며)








다섯 아버지




오늘
2003년도 달력이
달랑달랑하는 세밑에
초등학교 동창 승규를 떠올렸다.

난 아버지가 다섯이야
하나님 아버지
원장 아버지
감독 아버지
학년 아버지
진짜 아버지

소전원 아이들은 모두 아버지가 많았다.
아버지가 많으니 동생도 형도 많았다.
한 명이라도 싸움에 휘말리게 되면
모두가 함께 나섰다.
기계똥으로 도장이 찍혀 있는,
빡빡 깎은 머리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아버지가 많고
형제가 많은
승규는 6학년이 되었을 때
반장이 되었고
학교를 대표하는 어린이 회장이 되었다.

이민 온 지 백년이 된 코리안 아메리칸,
처음엔 빼앗긴 내 나라 쪽을 보며
사탕수수밭에 눈물도 심었지만
이제 백만의 형제를 가졌다.

다섯은 아니지만
한 쪽 가슴에 하나씩
훈장처럼 빛나는 두 개의 조국을 갖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승규를 다시 만나면 얘기해 주고 싶다.

초등학교 때 내켜하지 않았던 박수를
이제라도 그 친구를 위해
아주 오랫동안 쳐주리라.

(미주 한겨레 신문, 2003년 송년시)











■발문

마늘의 詩學


정일근
(시인)





김동찬 형. 우리가 처음 인사를 나눈 곳은 광주로 기억합니다. 그 땐 광주여대에 있던 이지엽 교수가 소개를 했습니다. 작은 문학행사장이었고 우린 처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친구라고, 고등학교 때 문학공부를 같이했던 친구라고 소개했고, 동찬 형은 다음날 목포로 간다고 했습니다. 아니 무안 어디로 간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까진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은 흔한 만남이었습니다. 나는 고향에 다니러 나온 미국의 한인을 만났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사실 나는 반미감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별다른 호감을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형에게서 ‘버터냄새’가 나지 않아 편했습니다. 말에 반쯤은 영어를 섞어 쓰고, 잊어버린 모국어를 찾는다고 끙끙거렸다면 싫은 소리 몇 마디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는 넓고도 좁았습니다. 그 뒤 L.A.에 사는 동찬 형의 홈에 안부를 전했는데 중앙아시아 키르키즈 공화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에게는 중학교 한 해 선배인 최갈렙 목사가 형의 홈에 남긴 안부를 읽고 메일을 보내 온 것입니다. 본명이 최근봉인 갈렙 목사의 메일을 받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갈렙 선배는 10년째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갈렙 목사와 나는 진해에서 중학생 시절부터 친형제처럼 붙어 다닌 사이입니다. 자주 만나던 사이인데 내가 진해를 떠나고부터 연락두절 상태가 되었습니다.
천산산맥이 지나는 키르키즈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동찬 형 홈에 남긴 내 메일주소를 알고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에 두 분도 아주 친한 사이라고 했습니다. 두 분은 군대 시절 만난 전우며 그 인연으로 갈렙 선배가 동찬 형에게 지금의 부인을 소개시켜 주었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찬 형의 처가가 내 고향인 진해이고, 부인을 만난 인연도 내가 친형처럼 따랐던 갈렙 목사의 소개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세계지도 위에 세 개의 점을 찍어보았습니다. 갈렙 목사는 키르키즈에, 동찬 형은 L.A.에, 나는 울산의 산골마을에 점을 찍어 참 거대한 인연의 삼각형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삼각형이 그리는 인연에 사뭇 감동까지 했습니다.
김동찬 형. 이쯤 되면 우리는 보통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 동찬 형도 내 사는 우거를 다녀가고 갈렙 선배도 가족들과 함께 다녀갔습니다. 비록 서로 서로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이 아득히 먼 곳이지만 언제 그 세 꼭지점이 만나 하나의 점이 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김동찬 형. 나는 이번 시집 원고―그러고 보니 이 시집은 형의 첫 시집이 되는군요. 1997년과 1999년 시와 시조로 문단에 나와 시조집과 산문집은 냈지만 시집은 처음이네요―에서 민들레 연작시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10편의 민들레 연작시에는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시인 김동찬의 인간적인 정체성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 정체성의 배경에는 언제나 ‘나’가 아닌 ‘가족’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일 다닐 때
아파트 계단에서 늦도록 기다리시던
어머니

집도 사고 좀 안정되었을 때
술 처먹고 늦게 들어오면
늘 문열어주시던
아버지

오늘도
현관 문 앞에
가만히
내려와 계시네
― 「민들레 9」 전문

형의 홈페이지에 소개되는 약력을 보면 1985년 미국으로 이민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형의 미국 이민 20년을 보여 주는 풍경화가 이 시 한 편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풍경화 속에는 먼 이국땅에서도 이 땅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진 향기와 색깔을 잃지 않는 민들레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민들레는 분명 외래종 노란 민들레가 아닌 토종 흰민들레일 것입니다. 토종이라 하지만 외래종의 득세로 한국에서도 보기 힘들어진 흰민들레입니다. 또 이 풍경화 속에는 처음 이민 가서 밤일 다니던 젊은 초상이 있고, 살만해서 “술 처먹”는 사내의 모습도 보입니다. 자신과 싸워야 하는 이민생활, 형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던 약은 흰민들레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흰민들레라고 강조하는 것은 흰민들레와 노란 민들레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민들레를 Mongolian dandelion이라 합니다. 그런데 흰민들레는 Korean dandelion이라 합니다.
토종인 흰민들레는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보다 약성이 뛰어납니다. 또한 노란 민들레는 쉽게 수정을 하는데 흰민들레는 오직 흰민들레에 의해서만 수정이 가능합니다. 수정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노란 민들레 꽃씨가 날아와도 단호히 거절하곤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일편단심 민들레’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땅에 뿌리내리고 살다보면 사람이나 들꽃도 같아지나 봅니다. 흰민들레에게는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색의 꽃이 피고 절개를 목숨처럼 지키는 특성이 있어 나는 흰민들레를 좋아합니다.
나는 형이 그리는 풍경화 속에 노란 민들레가 만발한 이역땅에 따뜻하게 뿌리내린 두 송이의 흰민들레를 봅니다. 밤일 나간 아들과 술에 취해 돌아오는 아들의 귀가를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형의 산문집 『심심한 당신』(고요아침刊)에서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새 학기가 되면 모든 교과서를 헌 달력 종이로 겉표지를 싸주시던 아버지와 맛있는 깨비국을 끓여 주시던 어머니를. 이제는 그 두 분 다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형의 현관문 앞에는 흰민들레가 피어 있습니다. 그것도 ‘가만히’ 말입니다.

돌아가지 않겠다
돌아갈 수 없으니까

바람 부는 대로 실려 가겠다
거스를 수 없으니까

발길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꽃을 피우겠다
시베리아 툰드라 단단한 얼음 위나
화와이 사탕수수밭 뙤약볕 아래

혹은,
로스엔젤레스의 공동묘지
로즈힐(Rose Hill)이라도 찾아가
그곳의 흙이 되겠다

우리 형처럼,
우리 엄마처럼
― 「민들레 4」 전문

여기 또 한 편의 민들레 시편에서 이를 악문 형의 초상화가 보입니다. 이민을 온 이상 그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의 배수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겠다/ 돌아갈 수 없으니까”라며 이를 악무는 것입니다.
지난 2002년이 한국의 미국 이민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에서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이듬해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한 100여 명의 한국인이 최초의 공식 이민자였습니다.
그 10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는 200만 명의 재미한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형도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수구초심이 있는데 형은 “발길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겠다고 합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로스엔젤레스 공동묘지인 로즈힐(Rose Hill)에 뼈를 묻은 형과 어머니가 있습니다. 또한 형은 운명론자입니다. “바람 부는 대로 실려 가겠다/ 거스를 수 없으니까”라며 그 운명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은 가족이민과 운명론에 따라 체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꽃을 피우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시베리아 툰드라 단단한 얼음 위”일지라도 “하와이 사탕수수밭 뙤약볕 아래”라 할지라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은 미국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흰민들레’입니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재미한국인입니다. 그런 결과는 뼈를 묻겠다는 배수진으로 이를 악문 세월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김동찬 형. 시로 보자면 형은 긍정적인 시인에 가깝습니다. 웃음이 묻어나는 몇 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가을 햇살에 실어
귀가 따갑게 보내 주시는 하늘의 메시지를
그놈의 절집 기둥들은 천년이 넘도록
듣는 듯 마는 듯 해찰하며
배째라 배 내밀고 웃고 있는 중이었다
― 「부석사 무량수전」 끝부분

잠을 잘 때도
독립문표 속옷이 다 보이도록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리고
대한독립만세!
하는 자세로
쿨쿨 잠을 자곤 합니다.
― 「대한독립만세」 끝부분

아버지보다 먼저 떠난 세 형님들이 하하하하 웃는 소리 뒤뜰에 가득합니다. 아버지가 만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던 것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 「봄날의 텃밭」 부분


― 「시인은 시로 말한다」 전문
실직한 친구와 부석사를 찾아가며 “그래 살다보면 부석(浮石) 같은/ 희망의 틈새가 있을 거야”며 시인은 절망에도 반드시 희망의 틈새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의 모습을 “배째라 하며/ 배 내밀고 웃고”있다고 합니다.
「대한독립만세」에서 시인은 유관순 누나가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 부르던” 모습처럼 만세를 부르는 모습으로 자는 아내의 잠버릇을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눈이 반짝 빛나며, 아내 속옷의 독립문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봄날의 텃밭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받아 놓은 쑥갓, 상치, 아욱 씨를 뿌리며 시인은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텃밭에 뿌린 생명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아버지, 제가 비로소 아버지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시인도 미소로 답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로 말한다」의 전문은 “시”라는 한 음절뿐입니다. 제목을 보고 무슨 말을 할까 싶어 귀를 열다가 “시”라는 한 마디에는 읽는 이들이 모두 웃고 말 것입니다.
김동찬 형. 이런 웃음들이 형의 오랜 이민생활의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형의 시편에는 눈물도 있고 분노도 있고 서러움도 있습니다. 생이 나무라면 바람에 흔들리는 않는 나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형은 그런 바람이 사람을 꽃으로 만든다고, 지천명의 나이에 가까워져 이 아름다운 시편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봄눈을 녹이던 하얀 바람이 흰 수선화 향기를 날라줄 수 있을까.
저 여름나무의 이파리들이 팔랑팔랑 초록을 뿌릴 수 있었을까.

벌 나비도 길을 잃었을 테고
저 나무도 열매 맺지 못했을 거야.

꽃이 꽃일 수 있었을까
나무가 나무일 수 있었을까.
저 물가에 반짝이는 햇살들, 있었을까
무지개가 있었을까 있었을까.

아 만일 바람이 없다면
오십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도
흔들리는 물결이 없다면
내 향기를 너에게 전할 수 없다면
나는 꽃일 수 있었을까
나무일 수 있었을까

사람일 수 있었을까.
― 「바람이 없다면」 전문

김동찬 형. 시인은 시로 말한다고 형이 말했습니다. 형의 첫 시집에 담기는 시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 일은 이제 이 시집을 만나는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나는 형의 시를 ‘마늘의 시학’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아메리카에 모국어를 가지고 시를 쓰는 일은 마늘, 그것도 눈물을 흘리며 생마늘을 먹는 일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기름진 버터냄새 속에 스스로 독한 마늘 냄새를 풍기는 일일 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풍겨내던
내 고향 친구 녀석의
마늘 냄새가
문득, 잃어버린 내 향기인가 싶은
아메리카의 저녁 한 때
도대체 무엇이 나를 끌고 다니며
이토록 지치게 만드는지
알고 싶어서
꼭 알고 싶어서
마늘 한 쪽을
눈물을 흘리면서 먹어 치웠다.
― 「마늘」 끝부분

‘코리언은 마늘 냄새가 지독해요’라고 말하는 아메리카에서 마늘 냄새는 형의 근원이며 또한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우고 싶은 문신―코리언 바코드일 수 있습니다. 형은 그 마늘 냄새를 “잃어버린 내 향기인” 것을 알기에 “아메리카의 저녁 한 때” 눈물을 흘리며 마늘 한쪽을 먹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인의 자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자신의 향기와 색깔로 말하는 것입니다. 형이 이 시집의 제목을 『봄날의 텃밭』으로 정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시민권자가 아니라 내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형이 더욱 마늘 냄새나는 시와 만나길 부탁합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노매드(Nomad)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땅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흰민들레’가 되길 바랍니다. 먼 이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은 모국어의 영토를 넓히는 개척자입니다. 그렇기에 형의 첫 시집은 형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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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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