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견공시리즈 120)
이월란 (2012-3)
분별없는 백치의 눈이 그립다면, 개의 눈을 보라
선택해야만 하는 자유가 없는 눈이 그립다면, 개의 눈을 보라
주석이 달리지 않은 백지 같은 눈이 그립다면, 개의 눈을 보라
판단해야만 하는 습성에 물들지 않은 눈이 그립다면, 개의 눈을 보라
그 어떤 사치에도 구속받지 않는 영역 밖의 눈이 그립다면, 개의 눈을 보라
아직 도태되지 않은 원시의 욕망으로만 채워진 눈이 그립다면, 개의 눈을 보라
영악한 사람의 눈을 캄캄하게 만드는, 우둔한 빛이 휘둥그레 떠 있는 작고 동그란
세상이, 초롱초롱한 지상의 언어들을 배불리 먹고 블랙홀처럼 웃고 있는 두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