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개작)
이월란(2014-8)
두껍지 않은 명상록이 되어
관절처럼 굳어진 페이지를 넘긴다
코브라 곡선 위로 함몰된 가슴 어디쯤에서
언젠가 잡아먹은 새 한 마리 툭 튀어나올지 모른다
투명한 의자에 앉아 잊힌 통증을 읽는다
한 번도 서로를 들여다보지 못한 손과 발은
마주볼수록 낯설다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두 발에 실린 작은 카르마
비만해진 과거를 싣고 발을 떼는 것조차 두렵다
개와 고양이의 포즈로도 사람이 달리 보인다
비틀어보고 나서야 똑바른 길이 보인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뿌리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섬이 된다
배가 들어온 적도 없는데 꽃이 핀다
배가 떠나간 적도 없는데 꽃이 진다
우뚝 솟은 산 위에서
뿌리 없이도 서 있는 나무가 된다
가지 끝에 만져지는 하늘 한 줌
꽃잎처럼 발끝에 심는다
꿈이라 높이 얹어 둔 가쁜 호흡
이제야 까치발로 내려 턱밑에 심는다
끊어진 숨 사이 관속처럼 누운 땅에
숨은 바람이 빠진다
침묵 속에서만 들리는 것이 있다
언어를 갈아 마신 호흡이 다시 가빠오면
합장하는 시선 아래 위태롭지 않게 그저,
나마스테
[시평] 미주문학 2015년 가을호 --------------------- 김기택
이월란의 「요가」는 여러 요가 동작을 하면서, 처음 보는 흥미로운 책을 읽듯이 또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광 속으로 들어가듯이, 몸을 관찰한 작품입니다. 요가는 몸으로 하는 명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몸에게 다른 동작, 안하던 동작을 하게 하면 이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몸의 여러 가능성과 힘을 발견하게 되고 정신적 심리적인 안정과 행복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요가의 동작 속에서 보니, 우리 몸에 개나 고양이도 살고, 몸이 섬과 바다가 되거나 산과 나무와 꽃으로 변형되기도 하네요. 몸을 비틀고 잊혀진 통증을 읽다 보면 몸에서 “코브라 곡선 위로 함몰된 가슴 어디쯤에서/ 언젠가 잡아먹은 새 한 마리”가 나오기도 하고, 바다 위에서 섬이 되거나 산위에서 나무가 되기도 하네요. 그 나무의 “가지 끝에 만져지는 하늘 한 줌/ 꽃잎처럼 발끝에” 심기도 하네요. 이 시는 몸이라는 신천지를 여행하는 기행시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몸은 정신과 기억과 무의식과 감각이 있는 장소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저장되어 있는 곳이며, 혼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훼손되고 시간에 의해 변질되면서 온갖 물리적 정신적 상처가 생긴 곳이기도 합니다. 몸은 아직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일과 사건들이 저장된 신비의 장소이고 시가 무진장 흘러나오는 보물창고이기도 합니다. 요가를 통해 몸속에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에 귀 기울이면서 거기서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 더 밀고 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