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서재 DB

일반영상

| 박영호의 창작실 | 목로주점 | 갤러리 | 공지사항 | 문화영상 | 일반영상 | 영상시 | 그림감상실 | 독자마당 | 음악감상실 |

김수환 추기경님 !

2009.02.17 19:44

박영호 조회 수:217 추천:12



김수환 추기경님 !
"평안히 영복을 누리소서!"







아래의 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평생 일상 행적을 적은 김호승 시인의 시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정 호 승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 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 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
          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예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 주다가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부지런히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다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 처럼
           
          - 정호승시인의 '이 짧은 시간 동안'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