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에 지는 서커스단의 비운

2010.02.10 02:01

김수영 조회 수:867 추천:178

석양에 지는 서커스단의 비운    올 봄에 서울에 계신 큰 오라버님 80회 생신 축하연이 있어서 동생과 함께 서울에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 또는 이년에 한번씩 가족들을 만나러 서울에 간다. 내년 유월에는 작은 오라버니 희수잔치가 있어서 또 서울에 나가야 한다. 서울에 나갈때 마다 오라버니들이 이곳 저곳 관광을 시켜 주셔서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경북 예천에 있는 부모님 선영에 성묘하고 돌아 오는길에 안동에 들러 이율곡 선생님의 도산서원등 여러 유적지를 들러보고 감회가 무척 깊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여러곳을 구경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큰 오라버니께서 ‘동춘 서커스’를 보러가자고 제안을 하셨다. 경영이 어려워 서울시에서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예술을  보존해야 한다고 후원금을 지원해 주어서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서 두달동안 계속 공연을 하니 우리라도 가서 빈자리를 채워주자고 하셔서 쾌히 승락을 하고 온가족이 동춘 서커스를 구경하러 갔다.    서커스를 본지가 60년이 훨씬 넘었기 때문에 호기심도 있고  웃어른이 제안하시는데 거절할수도 없고 해서 타의반 자의반으로 구경하게 되었다. 한 이백여명이 앉을수 있는 좌 석이 마련되어 있는데도  겨우 십여명만 앉아 있을뿐 자리가 끝날때까지 텅비어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서커스를 공연하는 사람들도 빈자리 없이 만원이 되고 공연이 끝날때마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와야 신바람이 나서 더 열심히 잘 할텐데 너무 관람객이 없으니까 공연자들도 맥이 빠지고 힘이 빠지는것 같아 보기가 여간 안쓰럽지가 않았다. 그래도 관람객이 있던 말던 끝까지 공연을 잘 해 주어서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관객이 많으면 수입을 더 많이 올릴수 있을텐데….. 시에서 후원해주는 기부금도 한계가 있으니 서커스단 자체에서 운영비가 나와야 스커스단을 지탱을 할텐데…..서울시민들의 운동경기 관람은 아무리 티켓이 비싸도 사서 운동경기를 관람하고  예술인들의 노래 공연등 관람율이 엄청 높은데 반해 서커스 공연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것 같아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선 보였던 최초의 서커스단이 ‘동춘 서커스단’이다. ‘동춘 서커스단’은 1925년 박동춘씨가 일본 서커스단에서 나와 한국인 30명을 모아 창단,  70년대 초까지 대호황을 누렸고 단원들만 250여명이 넘었으며 영화배우 허장강, 코미디언 서영춘, 배삼룡, 백금녀 가수 정훈희씨 등 스타들을 배출했다… . 그러나 TV 등장과 극장이 번성하면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풋풋한 인정과 애환이 어우러져 옹기종기 모여살던 곳이 농촌이었고 그런 서민들의 삶의 속내를 꺼내 속으로 다지던 고통을 웃음과 눈물로 연출하던 무대가 바로 서커스였다. 육이오 전쟁을 겪고 보리고개를 맛보아야 했던 우리 일세들은 파동치는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 투성이의 한을 정서로 이겨 내려는 혼으로 연출하던 유랑극단을 겸한 서커스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안정을 찾을려고 했는지 모른다.     나도 어릴때 마을에서 공연이 있는 날이면 어머니를 졸라서 구경을 가본적이 꽤 많은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동물들이 나와 재롱을 떨며 갖은 묘기를 연출하는 곡예사들을 보며 좋아라 손뼉치며 재미있어하던 추억이 떠 오른다. 그 추억 가운데 슬픈 사연이 숨어 있어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느 여름 방학때 고향 시골로 내려갔다. 시골에는 삼일 장이 설때도 있고  오일 장이 설때도 있다. 장날에는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려고 모여들기 때문에 서커스는 장날에만 개장을 했다.     우리 시골 고향 옆 동네에 살고 있던 ‘장달’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 벙어리 머슴이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인심이 나쁘고 흉칙해 불쌍한 이 머슴을 종처럼 농사일에 혹사를 시키고 좀처럼 휴가를 주지 않아 벙어리 머슴은 단 한번이라도 서커스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주인에게 통 사정을 해서 하루라도 휴가를 받아 서커스 구경을 하고 싶다고 여러번 얘기를 한 결과 일을 갑절을 시키고 그 댓가로 하루 서커스 구경을 허락을 받았다. 장달이는 너무나 좋아서 손꼽아 기다리던 장날에 서커스 구경에 마음이 부풀어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기뻐했다. 옆집에 사는 친구 머슴과 함께 서커스 구경을 하러 가서 맨 앞좌석에 앉아 친구와 함께 신나게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코끼리가 나와서 곡예사와 함께 묘기를 보이며 무대위를 활보를 할때 장달이는 좋아라 손뼉치며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처음보는 구경이라 어찌나 신기한지 신바람이 나서 앉았다 섰다하면서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며 너무 기뻐 소리쳤다. ‘으아아아 쪼쪼타타야야 악-----------------‘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순간 그만 코끼리가 놀라서 이리저리 뛰다가 이 장다리에게로 덮치고 마는 불상사가 벌어져 장다리는 많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갔지만 뇌 진탕으로 곧 숨을 걷우고 말았다.     옆집에 살던 친구 머슴으로 부터 이 얘기를 들었을때 어찌나 가슴이 메어 지는지 말문이 막혔다. ‘아! 불쌍한 장달이!’  평생 일에 묻혀 일만 하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다니…기가 막혀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계용묵의 소설 ‘백치 아다다’ 가 생각났다. 벙어리며 백치인 그녀는 첫번째 남편에게 소박을 맞고 두번째 남편에게도 남편의 밭 살돈 150원을 물속에 던졌다고 남편이 물속에 밀어 넣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여인! 대학교 다닐때 너무나 마음 아프게 읽었던 단편소설의 여주인공을 생각나게 하는 장달이의 비극의 종말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 후에 들려오는 얘기로 장달이의 주인은 개과천선하여 선하게 살아간다고 하니 퍽 다행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장달이의 슬픈 얘기는 오늘날 까지 잊혀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 살아서 불쌍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동춘 서커단’이 막을 내림과 동시에 내 슬픈 기억도 내 마음에서 조용히 막을 내리고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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