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순간'은 '초발심시변정각'에 있다

2018.01.24 07:47

동아줄 김태수 조회 수:28

‘시적 순간’은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에 있다

이홍섭




   1. 시를 쓰다

   처음으로 한 편의 시를 완성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것이 시구나, 시를 완성했을 때의 희열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각이 몸에 새겨졌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몇 달 전까지 나의 꿈은 화가였다. 원하지 않아도 미술부로 차출되었기 때문에 그냥화가가 될 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그냥은 천둥 같은, 벼락 같은 한 사건 때문에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생사를 건 싸움을 하셨고,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몸과 마음이 통째로 한 바퀴 도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치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드럼통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던 이때, 캔버스와 4H 연필과 색색의 물감은 나를 구원해주지 못했다. 내 몸과 마음의 변화된 느낌을 싣지 못하는 그림을 평생 그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근본적으로 화가가 될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 길로 미술부를 나왔다. 그대로 있었으면 대충의화가는 되었겠지만, 실존을 건 화가가 되었을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언어가 찾아왔다. 허허벌판 같은 백지를 들고는 무수한 언어들이 마치 전사
(戰士)처럼 들판을 내달려 내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한없이 굴러 내려가는 드럼통 안에서 이 전사들의 말들을 마구 받아 적었다. 그건 나에게 생존과 같았다. 쓴다는 것 자체가 생존이었다. 쓰지 않으면 굴러가는 드럼통 안에서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그 당시 내 옷에 달린 모든 주머니에는 메모지들이 가득했다. 마술처럼 메모지들은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러기를 여러 달, 그 메모들은 점차 시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편의 시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새벽에 완성했는데 그날 아침이 마침 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전교생이 교련복을 입고 운동장에 집합했다. 나는 그 근엄한 조회 시간에 바지 주머니에서 내 첫 작품을 꺼내어 옆줄에 서 있는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는 너 미쳤냐는
표정을 지었다.



   2. 첫 시는 실존이고, 구원이어야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는 한 시인은 학생들이 시를 발표하면 그 시가 너의 실존에 얼마만큼 관계되어 있냐고 묻는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시인이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첫 시, 적어도 습작기의 시는 존재 그 자체여야 하고, 그 자신에게 실존이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언어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구원 그 자체여야 한다. 언어 아니면 나의 실존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절박하게 깨우친 이후에야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다.
   시가 유일한 구원이었다고 쓰면 시인들조차도 피식 웃는 시대이다. 진정성에 관해 이야기하면 구닥다리 시인으로 취급 받는 시대이다. 평론가들이 그런다 해도 시인은 그러면 안 된다. 시는 내가 내 진정성에 속는작업이다. “서정시는 어떤 진실도 즉각 진실이 되는 영역이다.”라고 말한 밀란 쿤데라는 시를 아는 사람이다. 더 들어 보자. “어제 시인은 삶이 눈물의 골짜기라고 말했다. 오늘 시인은 삶이 미소의 나라라고 말했다. 두 번 모두 시인은 옳다. 일관성이 없다 하지 말라. 서정시인은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시인 자신의 감정의 강렬함이 유일한 증거인 것이다.” 틀린 말인가? 아니다. 나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시가 남사스러워지고, 시인들도 남의 시를 안 읽는 시대가 온 것은, 많은 시인들이 시인이 되기 이전에 거쳐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가 내 실존에서 유일한 구원일 때가 한 번쯤은 있었어야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험의 유무가 시인비슷시인을 가른다. 시가 유일한 구원이었던 때를 뼈에 새긴 시인은 멀리 가도 시인이다. 이것이 없는 시인은 평생 비슷시인이다



   3. 시는 계단처럼 좋아진다
 
   시가 계단처럼 좋아진다는 말은 우리 시단에서 내가 처음 한 말이다. 나는 시가 마치 동산에 오르듯이 완만하게 좋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시가 동산에 오르는 것처럼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은 언어와 치열하게 싸워보지 않은 사람이다. 시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은, 그 선택으로 한 편의 힘 있는 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납을 허리에 차고 저 깊은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해녀처럼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바닥을 찍어야만 전복도, 진주도 캘 수 있다.
   한 바닥이 곧 한 계단이다. 적어도 세 바닥, 세 계단은 치고 난 뒤에야 시인이 될 수 있다. 한 바닥을 치고 나면 나도 모르게 한 계단을 훌쩍 오르게 된다. 그다음 바닥을 치고 나면 또 나도 모르게 한 계단을 훌쩍 오르게 된다. 언어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면 결코 다음 계단을 오를 수 없다. 세 계단쯤을 오르고 나면 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언어의 운용, 시의 운용이 자재로울 수 있다.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대가리가 깨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한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시는 이다. 수련하지 않으면 힘을 얻을 수 없다. 요즘 시들이 수다스러워진 것은 이 힘에 대한 수련이 없기 때문이다. 시는 이스트를 넣어 빵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드는 것과 같다. 고물을 묻히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나는 시를 마치 빵 굽듯이 쓰는 것을, 또한 시단이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테크닉의 문제이지 시의 본질, 시쓰기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어릴 때, 집 뒤에 남산
(南山)이라 불리는 작은 산이 하나 있었다. 산 정상에 있는 정자를 구경하려면 백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나는 정자가 보고 싶어 자주 계단을 오르곤 했는데, 오를 때마다 계단 수가 달랐다. 어떤 날은 102개였다가, 어떤 날은 99개였다가, 또 어떤 날은 105개가 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남산의 계단이 몇 개인지 모른다. 계단을 오르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이러할 진데, 언어를 지고 가는 시의 계단은 얼마나 큰 절벽일 것인가. 망상을 피우면 결코 오를 수 없는 계단이 시의 계단이다.  


   4. 시는 힘이다 
     
   시가 예술의 영역에 있는 한, ‘작품이라고 불리는 한 시의 힘’, ‘힘의 시를 추구해야 한다. 인쇄된 시들과 시집들은 이 힘을 겨루어야 한다. 시단은 이 힘을 겨루는 각축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니 좋은 시와 안 좋은 시 간에 분별이 없어지고, 시인과 비슷시인 간에 영역 구분이 안 된다. 언제부터 시가 찌질하게 시인의 배경을 따지면서 평가받아 왔는가. 출신학교, 직업, 수상 내역 등등에 시에 대한 평가가 묻어간다면, 그게 동네 양아치들이 하는 짓거리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이른바 명문대 교수를 지내고 가슴에 훈장들을 줄줄이 달고 있는 몇 분의 시인들 중에는 앞에서 말한 시의 계단을 한 번도 오르지 못한 분들도 있다. 그러고도 시를 말하고, 시인임을 앞세우니 혹세무민도 이런 혹세무민이 없다. 그냥 학자나 평론가로 종사하시면 누가 뭐라 그러겠는가.
   시의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의 장르성에 대한 깨달음과 시의 구성 요소에 대한 오래 수련이 있어야 한다. 시는 산문보다 훨씬 더 고유의 장르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안팎이 단 한 번에 터지듯이, 수좌들에게서 화두가 터지듯이 장르성이 타파되는 날이 있어야 한다. 이 위에 시의 구성 요소에 대한 수련과 자문자답이 더해져야 한다. 아직도 시의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 시인이 있다면 그 시인은 습작 시절로 다시 돌아가 시의 장르성부터 타파하고 와야 한다. “시라는 실체는 원래 없었다, 시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말자. 그런 말을 하려면 다른 데 가서 놀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 서정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5. ‘서정은 있다
 
   ‘서정은 복잡하게 얘기할 게 없다. 시는 대가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것이고, 이성 이전에 감성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불이 붙을 수 있는 심지가 필요하다. 시의 심지를 갖추고 있으면 서정을 갖춘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서정이 없는 것이다. 서정이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서정이 좋은 시를 만드는 임은 분명하다. 심지 없이 종잇장에다 불을 붙일 수 있지만 그건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재가 되고 만다. 심지가 있으면 비록 작은 호롱불이지만 그 불빛은 오래 지속된다. 시가 그런 거 아닌가.
   시의 심지는 시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대가리만 굴리면 대가리 시가 나올 것이요, 가슴을 굴리면 가슴 시가 나올 것이다. 시쓰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시가 가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쓰기가 희열을 동반하는 것도 바로 이 가슴에서 시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정은 대상을 단박에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이다. 쿤데라의 말대로 서정시는 어떤 진실도 즉각 진실이 되는 영역이다. 그건 가슴만이 할 수 있다. 가슴이 뜨거워야만 가능할 수 있다. 그걸 가능한 온도로 높이기 위해 술 마시고, 연애하고,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시의 장르성을 타파하는 과정은 곧 서정을 부르는 과정이다. 장르성이 타파되면 서정은 가슴에 안착하여 언제든지 불이 붙을 수 있는 심지로 깊이 박힌다.
   문제는 우리 시단이 자꾸 비슷시인들의 작품을 가지고 서정을 구태의연하다고 폄하하는 데 있다. 싸움을 하려면 제대로 된 시를 가지고 해야 한다. 한 계단도 오르지 못한 시들을 대상으로 서정이 흘러간 노래와 같다고 얘기하는 것은 나쁘게 말하면 비열한 짓거리다. 김소월은 1902년생이고,진달래꽃이 나온 해는 1925년이다. 우리는 아직 서정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6. 검객(劍客), 선객(禪客), 건달(乾達)
     
   나는 처음에 시인이 검객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언어를 운용하고, 시의 구성 요소들을 운용하는 게 마치 검객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단박에 승부를 보는 것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습작기 때는 검객과 같았다. 칼을 쓰기도 전에 눈으로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었다. 깡패도 나에게는 덤비지 못했다. 바람을 가르던 시기였다.
   인연이 되어 깊은 산속 절집에서 한 10여 년을 보낼 때는 시인이 선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잿빛 승복을 입고 찬바람을 가르는 것은 검객과 닮았으나,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선객만의 그 무엇이 있었다. 그 모습과 태도가 시인의 그것과 닮았다.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에서는 화두를 참구할 때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무릇 화두를 참구할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되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잡듯, 배고픈 이가 밥을 생각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하듯, 젖먹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뚫어낼 때가 있으리라.” 앞서 말한 시의 장르성을 타파할 때까지는 이처럼 해야 한다.
   조계종출판사에서 출간된, 그러니까 공인된 주석
(지안스님 역)에 따르면, 위의 구절은 닭이 앍을 품는 것은 따뜻한 기운이 지속되는 것이요,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은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요, 배고플 때 밥 생각하는 것이나 목마를 때 물 생각하고 젖먹이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으로 일부러 만드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하다. 참선하는 데에 이 간절한 마음 없이는 뚫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경험상, 위의 구절을 놓고 본다면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은 시의 장르성을 타파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모습과 참으로 닮았다. 따뜻한 기운이 지속되어야 하고,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간절해야 한다. 그래야 터진다.
   지금은 좋은 시인은 건달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달은 원래 불교 용어 건달파
(乾達婆)에서 유래했다. 건달파는 원래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제석천의 음악을 맡아보는 신이었다. 음식 대신 향()을 맡고 허공을 날아다녔다. 중국에서는 이 건달파가 마술사를 가리키는 말로, 건달파성은 신기루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종합하면 건달파는 음악을 좋아하고, 향을 맡고 살며, 신기루를 쫒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변화를 거치면서, 건달은 할 일 없이 놀고먹으면서 술과 춤을 즐기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언젠가 한 원로시인이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좋은 시를 남긴 시인들은 건달처럼 살았던 시인들이라고 회고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즉각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말의 느낌과 뉘앙스를 즉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검객과 선객을 지나면 그 다음에는 건달이다. 건달은 신기루를 쫒으며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 시의 궁극은 자유를 얻는 것인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자유를 얻고, 누리기 위해서는 건달처럼 살아야 한다. 나머지는 최소한만 남기고 버려야 한다. 그래야 시를 쓸 수 있다. 앞서 살다간 좋은 시인들은 대부분 그랬다.
 

  
7. ‘시적 순간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에 있다
     
   불교 경전에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是便正覺)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발심한 그때가 바로 깨달음을 이룬 때라는 뜻이다. 순수했던 그 초발심이 곧 정각이기 때문에, 수행이란 그 초발심을 끝까지 유지하는 행위이다.
   시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시의 장르성을 타파하기 위해, 온몸을 시를 향해 투척했던 그 지순한 초발심으로 돌아가면 시적 순간은 늘 유지된다. 그때 온몸을 휘감아 돌던 존재론적 질문은 화두처럼 남아 시를 쓸 때마다 따라오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만은 아니다. 연애할 때는 연애시가, 이별할 때는 이별시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시의 내용은 시간, 공간, 사람, 자연, 우주의 인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연기
(緣起)에 따라 늘 바뀌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시를 처음 만났을 때의 초발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때 맡은 향기와, 그 때 들려오던 음악과, 그 때 펼쳐지던 신기루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시적 순간은 찾아온다.
   시가 안 될 때는 책상 위를 싹 치우고 시집들을 올려놓아야 한다. 내가 사랑했던 시집, 내가 존경하는 시인들의 시집을 다시 읽어야 한다. 초발심시변정각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동안 시가 찾아오지 않아 이리저리 헤매다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이홍섭
강원 강릉 출생. 1990년 《현대시세계》 시,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가도가도 서쪽인 당신』 『터미널』 『검은 돌을 삼키다, 산문집 곱게 싼 인연』이 있음.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시인시각 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작품상〉 〈강원문화예술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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