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오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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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크리스마스에 물려받은 우정(?)

2023.12.15 14:49

강창오 조회 수:28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올가의 아들 키엘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집 응접실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가 써 놓고 미처 부치지 못한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옆에는 당신에게서 온 카드가 놓여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신해 보내드립니다”.
 
  며칠 전 유난히 많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도어매트에 쌓여져있었다. 그 중 유난히 눈에 익숙한 듯한 겉 봉투 하나를 집어 반갑게 열어보았다. 아뿔사! 카드 안에는 반가움 보다 기대하지 않았던 슬픈 사연이 촘촘히 적혀있지 않은가?
   
  올가와 비언 부부. 거이 25여년전 노르웨이 친구 소개로 10여일 간의 표르드 보트 여행을 갔었다. 코취와 보트를 번갈아 갈아타며 노르웨이 남부 표르드를 도는 작은 패키지 여행이었다. 그 패키지에 같이 승선한 숫자가  25명 정도였는데 나를 포함해 영국인 2명과 덴마크 부인 1명 그리고 나머지는 다 노르웨이인들이었다. 가이드의 이름은 엘사로써 노르웨이 남편을 가진  핀랜드여인이었다.
 
  영국에서 온 우리 두명은 처음부터 언어장벽을 생각해 다른 승객들과의 소통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곧 대부분의 노르웨이인 승객들이 어느 정도 영어소통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전체적인 그룹 분위기가 어느정도 파악되었고 언어소통을 떠나서 노르웨이인들이 상당히 수줍어하는 국민성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1-2일간은 그저 하루종일 묵묵히 움직였지만 호텔에 들어와서나 다함께 모이는 시간에는 무료감이 엄습하곤 했다. 그래서 귀에 들어오는 노르웨이 단어들을 하나씩 익혀가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써먹기 시작하자 그토록 수줍어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조금씩 펴지며 나름대로 재밋어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어느새 동양 이방인인 나에게 뭔가 분위기 조성같은 것을 기대하기 시작했고 틈만 나면 다가와 자신들의 사사로운 일들과 아울러 속마음을 간간히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다 큰 청장년의 사람들이 조그만 어린아이들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와 자신들을 표현하려 노력하며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는 모습들이 너무도 순수하고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같은 노르웨이인 자신들끼리는 서로간에 대화를 하거나 어울리는 것을 거이 볼 수가 없었다. 어느새 말도 잘 안통하는 동방인인 내가 그들의 그룹진행자가 된 것 이다.
 
  그 중에서도 올가와 남편 비언이 특히 더 수줍어하며 그룹이 모일 때마다 맨 뒤에서 서성이는 것이 보기 안스러웠다. 하루는 일부러 그들곁에 다가가 1994년 노르웨이에서 열렸던 릴레함머 동계 올림픽 얘기를 꺼냈다. 금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비언이 수줍어 하면서도 열심히 그 때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거이 매일처럼 가서 재밋게 관람을 했는데 특히 스키경기가 가장 스릴있었다고 했다. 몽고인들이 일찌기 말타기를 배우는것 처럼 노르웨인들 또한 일찌기 걸음마와 함께 스키를 배운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었고 나머지 일정을 마칠 때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나에게 다가와 이모저모로 노르웨이에 관한 얘기를 해주곤 했다.
 
  여행 마지막 전날 호텔서 가진 송별회는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별로 계획하지도 않았던 일이어서 그런지 모두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처럼 서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언젠가 노르웨이어로 대충 익혀 논 노르웨이 동요 ‘귀여운 꼬마가 닭장에 가서 암탉을 잡으려다 놓쳤다네’ 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라서 그런지 그들은 폭소를 터트렸고 이내 목청높여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그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고 의아해하며 물어왔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잘 부르는 노래라고 했더니 뜻밖이라며 상당히 놀라워했다.
 
  아무튼 노래가 끝나자 한 사람씩 나서서 열렬히 장기자랑을 했고 그때 까지도 수줍은 얼굴들을 하며 각자 10여일간의 여행소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가이드 엘사가 언제 준비했는지 커다란 트롤 도깨비 인형과 꽃다발을 나에게 덜컥 안겨주며 그동안 여행을 즐겁게 이끌어 준 주인공이라며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그냥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일들로 인해 모두가 즐거워하고 나또한 감사의 주인공이 된데 대해 많은 감격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에는 의외로 많은 승객들이 다가와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연락하자고 요청해 와 서로의 집주소를 교환하느라 분주했다.
 
  영국으로 귀국한 후 맨 처음 받은 편지가 올가에게서였고 그 이후 거이 25년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크리스마스 카드와 엽서를 주고 받았다. 10여년전에는 남편 비언이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접했는데 올해 급기야 올가까지 떠난것이다.
 
  아들 키엘이 보내 온 카드에는 인사외에도 또한 어머니 올가가 세상을 뜨게 된 내용이 적혀있었다. 정기 검진을 받기위해 병원에 가서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고 한다. 물론 회복은 못했지만 병원안에서 모든 처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젊을 때 부모들이 가끔 그 표르드 여행 얘기를 할 때마다 나에 대한 얘기도 곁들여 했다면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자기 부모를 대신해 계속적으로 연락을 하자며 자신의 주소는 물론 자기 여동생의 주소까지 보내왔다. 그의 부모가 나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부모가 떠난 후에도 생면부지의 나에게 계속적인 인연교류를 요청 받으니 나름대로 감개무량하다.
 
  아울러 그 당시 가장 수줍어 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젊은 에릭과 스태파니 부부 또한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꾸준히 어김없이 카드를 보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