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그리고 지갑

2010.05.19 13:44

정순인 조회 수:292 추천:42

  나에게는 두 가지의 소중한 물건이 있다. 하나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칫솔이고 또 다른 하나는 4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지갑이다.
  10년 사이에 두 분을 차례로 잃었다. 그야말로 고아가 된 것이다. 몇 년간은 덤벙대며 사느라 빈자리를 몰랐지만 이제는 길을 가다 부모님의 연세와 비슷한 분을 뵈면 고개가 절로 움직인다. 그분들이 가시는 방향으로 눈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살아계신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칫솔은 어머니가 입원해 계셨던 병원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퇴원하시리라 믿고 흰색 손잡이가 분리되어 뚜껑이 되기도 하는, 임시방편으로 구입한 여행용이었다.  
  어머니는 병환이 깊어 기운이 다 빠지기 전까지 꼿꼿한 의지로 도움을 마다하셨다. 양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침대에 앉아서 베개를 등에 받치고 링거 줄이 주렁주렁한 손으로 칫솔질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것이 자식의 힘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또 다른 사랑 중의 하나라는 걸 알기에 보는 것조차 송구하기만 했다.
  지갑은 아버지의 비밀 금고였다. 무엇이 들었는지 얼마만큼의 돈을 넣고 다니시는지 몰랐다. 반평생을 함께 해서 낡을 대로 낡은 검은색 지갑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흐르는 세월 따라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었지만 택시비를 아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시기 일쑤라 지갑이 열리는 일은 사진작가로서, 작품의 창작을 위해서가 유일할 거라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가끔은 왜 그렇게 깍쟁이로 사실까 투덜댔지만 손자의 이름으로, 학비가 들어 있는 통장을 따로 남겨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셨다.
  어머니는 퇴원하시지 못했다. 의식이 있었던 순간까지 사용하신 칫솔만 입원실 창틀에 남았다. 아버지는 어쩌면 자식보다 더 미덥게 여겨졌을 지갑을 머리맡에 놓아둔 체 하늘로 가셨다.
  두 분의 손길이 마지막까지 닿았던 칫솔과 지갑은 만지기만 해도 어머니의 의지와 아버지의 검소함이 묻어나오는, 그래서 가치를 가름할 수 없는 보물이 되어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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