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눈물 그릇

2011.02.18 03:02

이선희 조회 수:490 추천: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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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눈물 그릇 / 이선희

아내의 눈물은 장맛비다. 간헐천처럼 멎어지는 듯싶다가도 주르륵 쏟는다. 예측불허의 기상도다. 한 곳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부부이련만, 나까지 그러면 누가 집안일을 건사하랴. 애써 내 눈엔 건조주의보를 내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우선해야 할 일들이 잡혀졌다. 차분해진 나는 아내를 감싸 안고 어떤 말로 위로할까 애가 달았다.

그날 저녁엔 교회 회합에 참석하고 있었다. 연이은 핸드폰의 진동. 발신자 확인을 한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전화기에선 흑흑대는 아내의 흐느낌소리뿐...... 급히 차를 몰아 집안에 들어섰다. 아내는 가녀린 어깨를 계속 들썩이는 것으로 말을 깨물고 있었다. 참다못해 터진 일성, “어 엄마!” 조금은 예상하고 있은 상황대로였다.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는 장모님께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비보였다고 했다. 막내는 어른이 돼서도 엄마를 찾고, 엄마는 무덤안에서도 막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고 했던가. 자정이 지난 침상에서도 아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쉼 없이 묻어오는 소낙비다. 빗소리에 묻혔다가 간간히 이어지는 후렴. 결혼 해 미국으로 떠나는 막내딸에게 무얼 더해주지 못해 애달파했던 엄마! 막내딸 내가 엄마에게 무얼 한 것이 있다고...... 양가 부모님께서 장수하고 계신 중에 처음 맞은 상이라 감당이 잘 안되나 보다. 아내의 슬픔을 어찌 위로하고 진정시킬 수 있을지. 참 난감했다.

다음날로 아내와 함께 한국행을 결정하고 우리 일정을 한국에 알리기까지 했었는데 내 여권을 꺼내보니 만기가 두 달이나 지내있지 않은가. 할 수 없었다. 아내만 먼저 출발하고 나는 여권을 재 발급받는 대로 뒤 따라 가기로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부터 공휴일이 연이었다. 게다가 조기발급서류를 갖춰 새 여권을 받는데도 하루를 더 보내야 했다. 서둘러 항공편을 예약했지만 그나마 좌석을 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뜻밖에 이뤄진 28년 만의 한국행에 약간 들뜨기도 했다. 철없는 생각인지는 몰라도 가서 슬픔에 잠기신 장인어른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고향나들이는 물론이고 못 가본 고국 땅 곳곳을 둘러보려했다. 뿐이겠는가. 말로만 들은 발전상을 직접 확인하며 어릴 때 뛰놀던 시절과 격세지감의 회포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저녁 늦게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장례식을 마쳤으니 주말을 지내고 천천히 왔다가 돌아갈 때 아내와 함께 같은 비행기로 동행해 가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항공티켓 날짜를 조정했다. 이틀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지금 오는 것 보다는 좀 더 기다렸다가 장인어른 기력이 회복될 때쯤에 나와서 모시고 가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내 한국행 계획은 일단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하루가 여삼추라더니 매일 저녁 아내와 국제통화를 했다. 아내는 엄마 생각에 울고 싶어도 아버지 마음을 상심케 할까봐 애써 참는다고 했다. 그래 미국에 돌아와서 실컷 울겠단다. 알았어. 그러 무나. 대답을 얼부무렸다. 하지만 떠나기 전날, 밤을 꼬박 새며 새벽까지 울고, 또 장례 날, 차가운 땅속에 시멘트 관이 내려지고 흙이 덮여질 때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목청이 터져라 울더라는 친구의 전언을 들었는데 아직도 남은 눈물이 있단 말일까?

이번 주말이 지나면 분명히 핏기 없는 핼쑥한 모습의 아내를 공항에서 맞게 될 것이다.
떠난 지 23일 만에 돌아오는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대합실을 걸어 나올지 궁금하다. 내게 말한대로 아버지가 걱정되어서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터뜨린다면 온 집안엔 습기로 눅눅해질 것이다. 하얗게 밤잠 설칠 것을 생각 하니 아득히 현기증이 몰려온다. 그래도 정말 슬플 때 슬퍼 할 줄 아는 아내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남편은 아내의 눈물을 거두는 그릇이고, 슬픔과 아픔을 함께 하는 동반자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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