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와 시론 / 기 청

2009.02.06 04:14

이기윤 조회 수:1191 추천:84

조선일보/기 청 시인의 [시와 시론 블로그/ 바로가기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14963&menuId=274593


한국디지탈 도서관 기 청 서재/
http://sosickr.kll.co.kr/


월간 [문학공간] 신 고전기행 연재/
http://www.mhspace.co.kr/


[Weekly Poem Gift ] / 부정기
시와 시론//

대보름 달
- 청 사

대보름날 보름달은
어둔 세상 돌아 나온

맨 먼저
뒷산 마루에 올라가

두 손 모아 빌고 빌던
당신의 소망이


험한 세상 어루만지는
둥그런 꽃으로 피어

올해도 동녘하늘
환히 비추는
어머니의 보름달.


Note// 정월 대보름날 보름달은 모든 어머니의 기원이다.
올해도 대보름달은 동산으로 떠오를 것이다.
어머니가 지상에 남겨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저마다 한 개씩의 소망을

달에 띄워 보내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따뜻한 둥지가 될 것인가.



첨부파일/신 황조가'사랑을 믿지마오소서;월간 문학공간 09. 1월호

신 고전기행3

연재/ 기 청 시인의 新 古典 기행(3)


사랑을 믿지 마소서
-신 '황조가'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짝을 찾아 우는 소리
믿지 마소 왕이시여. 토라져 가는 바람 열길 물속 알아도
겨우 한 길 사람 속은, 왕이시여 믿지 마소 뿌리치며 가는 바람
앞문 막고 뒷문 잠궈도 천장으로 새는 바람

해와 달 짝이 되어 한 쌍이면 족한 것을 두 여인 한품에 안고
희희낙락 즐기더니 오호라 모두가 떠나는 구나
차라리 사냥에서 돌아오지 않았던들 왕관도 내던지고
묻혀서 살았던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부러워 마오소서

서럽다 천 년 비바람에도 불 지피는 그런 사랑.

-氣 淸 지음

---------------------------



황조가(黃鳥歌)/ 원문과 현대문 풀이


翩翩 黃鳥(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雌雄 相依(자웅상의) 암수 서로 놀건마는
念我 之獨(염아지독) 외로울사 이내 몸은
誰其 與歸(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고전 디시 읽기 / 왕과 未完의 사랑

사랑은 기쁨인가 슬픔인가. 사랑은 성취 되었을 때보다 ‘언해피 앤딩’이 되었을 때
더욱절실하고 고귀한 것으로 다가온다. '황조가’도 그런 미완의 사랑이 가져다준
슬픔과 애틋함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노래로
오래 남아 있는지 모른다.
사랑은 시대를 넘어 영원한 문학의 소재가 되어왔다. 문학에 드러난 사랑가를 통해
그 시대의 사회상을 유추할 수도 있다. 통일 신라 때의 향가‘서동요’는 선화공주와
서동(나중에 백제의 무왕)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기 이다.

고려가요‘쌍화점’은 노골적이고 자유분방한 고려인의 성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요에 나오는 ‘회회아비’는 ‘파란 눈의 서역인’으로 유혹의 상징이다.
당시 서역과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슴을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조에 와서 유교적 가치관으로 억압된
‘리비도’의 욕구가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같은 시조에서 은밀히
드러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와서는 근대 혼란기의 애정관이 내재되어 있다.
서구 신문화 유입과 함께 시작된 자연스런 신 연애관이
‘님에 대한 극존칭'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고대 시가 중 하나인 '황조가'는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는 가장 오래된
개인 서정시로 꼽히고 있다.
‘구지가‘에서 보여 지는 집단적 주술성을 떼어버리고
순수 개인 서정시로 나아가는 과도기 노래란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

유리왕은 일찍이 아버지와 이별하고 편모 밑에서 자라다가 어머니마저 이별하고
남방으로 방랑하는 풍운아가 되었다. 나중에 왕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왕비가 일찍 죽자 치희와 화희 두 계비를 맞아들인다.

비록 왕이란 신분이지만 인간적으로 정에 굶주린 그가 더욱 사랑한 쪽은 치희
(중국계 한인의 딸)였는데-
유리왕은 즉위 후 3년 되던 해(BC 17년)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 이레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궁을 비운 사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치희와 화희
두 계비가 서로 다투다 사랑하는 치희가 궁을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뒤쫓아 갔지만 찾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오는 길에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때마침 암수 꾀꼬리가 서로 희롱하는 걸 보면서 자신의 감회를 읊은 노래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설화)

이와는 다르게 보는 견해도 있다. 유리왕이 지었다기보다는 원시 제례의식 중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불려진 사랑노래의 한토막이라고 보는 것이다.
구전되던
고대 서정가요의 일부가 후에 한문으로 번역되어 유리왕 설화 속에 끼어들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정 병욱 교수견해)

황조가의‘슬픈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왕이란 신분 때문에 빚어진
과욕의 결과인지 모른다.
자의건 타의건 두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 자체가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왕의
권위가 여인의 사랑까지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왕관을 벗어던지고
한 여인을 택할 수 있었다면 진정 용기 있는 사랑으로 남지 않았을까?


앞의 글은 뒤의 '황조가' 원문과 배경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재해석하여 풀어서 쓴 필자의 작품이다. 모두를 취하려다 전부를 잃게 되는 왕의
어리석음을 부각시킨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충만하게 된다.

요즘 우리시대의 사랑은 어떤가?
마치 인스탄트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듯.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건 아닌가?
냄비처럼 쉽게 끓어오르고 빨리 식어버리는 사랑-그보다 가마솥처럼
천천히 데워지면서 오래가는 그런 사랑이 그리운 시대이다.
(다음호에 계속)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1
전체:
74,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