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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꼭 읽어 보세요! 시집의 [발문]/정용진

2008.10.29 10:09

이기윤 조회 수:468 추천:48

✪발문(拔文)✪

     평생을 기우려 가꿔온
                  시원(詩園)의 향기
                                           정용진

  시인은 언어의 밭을 가는 쟁기꾼이다.
내가 이기윤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0여년전 “오렌지글사랑모임”에서였다.
우리는 여기서 문학을 논하고 시학을 함께 공부하였다. 그는 일찍이 문학에 뜻이 있어서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고 조지훈 시백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조지훈 스승으로부터 종파(鍾波)란 아호를 부여받은 것만 보아도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얼마나 돈독하고 귀하였던 것인가를 능히 짐작할 수 가 있다.
  그는 천품이 인하고, 인격이 고결하며, 봉사정신이 투철하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려는 일념으로 한의학을 전공하여 박사가 되었고 교수가 되었으며 교회에서는 장로요, 주말이면 애리조나등지로 노구를 이끌고 선교봉사를 하고 있다. 견마지로를 아끼지 아니하는 박애정신의 귀감이다. 진정한 시인은 농부와 같이 천지인(天地人)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탄생한다. 하늘이 준 땅에서 땀 흘려 수고하는 농부와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직관과 사유를 통하여 언어를 조각하는 노력이 위대한 시인을 낳기 때문이다. 로댕의 손에 쥐어진 돌이 생각하는 사람을 탄생시키듯 언어 앞에 절차탁마의 수고를 다하는 연금술사만이 명작을 탄생시킬 수 가 있다. 이기윤 시인은 이런 뜻에서 언어의 밭을 열심히 가는 진정한 시인이다.

조약돌 하나를
내게 주십시오.

가슴속에 넣고 살며
만지작거리면
아프고 연약한 영혼
위안되고 힘이 되는 조약돌.

은하수에  던지면
종소리 파동이
동그라미 물결 일으켜
피안까지 번져가며
별들 하나하나
흔들어 깨울 수 있는
사랑의 조약돌을 주십시오.   <기원> 전문.

  시집 ‘반사체’ 첫장 서시 ‘기원’의 전문이다.  이는 깊은 신앙심에 의지하여 자기 자신을 바르게 정립하려는 간절한 기도요, 그의 아호처럼 맑은 종소리로 자신의 삶 자체가 울려 퍼져 “피안을 번져가며 잠든 별들을 하나하나 흔들어 깨울 수 있는” 주님을 향한 간구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같이 절대자인 신 앞에 단독자로 설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限界狀況)적 존재다.  이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은유가 돋보인다.

내 마음에 메마른 밭이 있었네.
봄비 내려 파릇파릇 희망이 솟아나고
봄바람 불어와 만물이 잠을 깨네.


푸른 밤 하얀 별들이 내려와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더니
아침 햇살 숨으로 마시고
들꽃으로 수많이 모여서 피었네.

흙향 풀향 꽃향으로 두레상 차려놓고
아름다운 새 노래 속에
어여쁜 나비춤 한마당에
맑은 하늘 잔에 담아 생기로 건배하며
사랑의 씨앗들이
봄꽃 속에 수없이 잉태하네.  
                           <봄기운> 전문

  시인의 마음은 그 본향이 봄이다. 이슬비 온 후에 싹이 돋고 꽃이 피는 봄이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향기로운 마음의 밭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 숨으로 마시고//흙향 풀향 꽃향으로 두레상 차려놓고” 더불어 사는 정경이 봄의 정원만큼이나 아름답고 향기롭다. 시인은 누구나 사랑의 봄을 잉태하는 저마다의 밭을 갖고 싶어 한다.


낮은 곳으로 흐르며
허공에 기화 했던 꿈
멍으로 뭉친 구름이 되어
소나기 눈물로 쏟아 내렸다.

천길 폭포에 몸을 맡겨
산산이 부서지는 한
아침 해는 아픔의 분무 속에
청운의 꿈을
찬란한 일곱색 아치로 세운다.
                         <무지개> 전문

  무지개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꿈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성경에서도 인간 구원의 약속으로 내려 준 증거로 들고 있는 것만 보아도 칠색의 고운 빛깔과 아치 모양의 아름다운 형상을 마음속에 담기에 너무나 진귀한 선물로 생각된다. “천길 폭포에 몸을 맡겨/ 산산이 부서지는 한/ 아침 해는 아픔의 분무 속에/ 청운의 꿈을 / 찬란한 일곱 색 아치로 세운다.” 이 시는 무지개를 이기윤 시인의 눈으로 그린 상상화요, 꿈의 상징적 표현이다. 무지개는 인간사에 길조의 징표로 여겨지고 있다. 저마다 저다운 무지개를 가슴속에 품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얼마나 정겨운가. 여기서 무지개는 필자의 칠색 꿈인 것이 분명하다.
 
꽃아, 너를 통해서
사랑으로 섭리하는 그분을  만난다. 
                                 <꽃.1> 일부

봄기운  부풀어  오른
풍만한 대지의 젖줄이
색채와 향기로 솟아 꽃핀다.

꽃은
초원의 젖꼭지

벌 나비 찾아와 단 젖을 빨 때
수정된 생명의 노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합창의 선율이 향기를 싣고
봄 하늘에 가득히 번져간다.
                         <꽃의 선율> 전문

  시인이 시를 쓸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시 속에 절제 된 언어와 은유의 사용이다.
  시에서 언어의 절제가 없으면 군더더기가 끼어 산문으로 흐르기 쉽고, 은유가 가려진 시는 짧은 글에 불과하다.
자신의 서정을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한 이기윤 시인의 ‘기원’에 실린 시들이 대부분 생명과 봄, 그리고 간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꽃을 노래한 이 시는 언어가 잘 절제 된 시다. 그렇기 때문에 한결같이 흐르는 세월이 내 인생의 가을을 알린다.

흐르는 세월이
내 인생의 가을을  알린다.

서리가 내리고
기미 앉은 고희 앞에서
살아온 낙엽을 헤집으며
살갑고 때깔고운
결실만 골라 담는다.

보는 이는 고개를 끄덕이겠지.
                       <회고록.1> 전문

  일생일사(一生一死)는 인간의 주어진 운명이다. 이 단 한 번의 지상의 삶의 기회를 어떻게 감당하며, 활용하느냐가 인생 성패의 근간이요 첩경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내어던져질 때 저마다 저에게 주워진 운명의 그릇을 하나씩 받아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어떤 그릇을 어떻게 받았는가를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자각이요 사명정신의 발견이다. 큰 그릇을 받았어도 지저분한 잡동사니만 넘치게 담는 사람, 비록 작은 그릇을 받았어도 금은보화로 가득 채워 삶을 빛내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필자는 이 시를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화상의 모습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천분과 지족을 스스로 파악할 줄 아는 지혜, 이 얼마나 고귀한가! 


깊이 내린 뿌리로
빨아올린 임의 말씀
있는 힘 다 쏟아
거름 주어 피운 꽃.

덕의 향기 퍼뜨려
벌 나비들 초대한 잔치.
꿀 요리 대접하며
말씀으로 수정受精한 씨방.
사랑을 잉태하여
영원한 생명인 열매 맺을 너.  
                           <꽃.2> 전문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니 내게 접붙임 당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열매 맺지 못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듯 시인은 꽃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 열매로 성숙시키려는 이 작품 속에는 간절한 염원이 주님을 향한 간증처럼 절절하게 부각되어 있다. 물을 마실 때에는 샘의 근원을 생각하고 나무에 올라서면 밑뿌리가 있음을 생각 하라는 “용비어천가”를 연상이라도 하듯이…

흰 머리 날리며
구부정한 시간이
천천히 걸어온다.

돈가방도 명예패도
갖고 갈 수 없는 길
본향의 입구에서
시간을 응시하며
가을 햇빛으로 몸을 익히고

여생을 담보로 다시 수속하는
사랑과 섬김의 삶.        <세월.3> 전문

  이 시는 윗부분의 시 ‘회고록·1’의  연속인 듯싶다.  
시인은 진실해야 한다. 문(文)은 곧 인(人)이다. 하는 지적이 세월의 흐름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지는 거목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여생을 담보로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어찌 자세가 흐트러질 수 있겠는가.
  시인은 상상력으로 언어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런 시인이나 화가 만이 독자들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어 그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내 스스로가 슬피 울 때 남도 나를 따라 울 수 있는 원리와 같다.


한밤이 다하도록
시심을 응결한 서정으로
유리창에 동양화를 마련한다.

보얗다.
섬섬히 짜인 무늬
곱게 부활한 하얀 코스모스
가슴도 뼈마디도 시린 사랑.

간절한 기도가
아침 햇살 무지갯빛으로 승화할
아름다운 꽃이구나.            <성에> 전문

  화가는 빛깔로, 사진작가는 빛으로, 음악가는 음향으로, 무용가는 율동으로. 자기의 마음을 표출해 내듯 시인은 영혼의 메아리로 자신의 시상을 토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남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고, 남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고, 남의 춤을 대신 춰주며, 남의 그림을 대신 그려준다.
  여기에 시인의 위대성이 있다. 구라파나  미국의 시인 모임에서 시인을 작가(Writer)라고 소개하면 “나는 작가가 아니고 시인이다(I’m a Poet)”라고 스스로 정정하는 고집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밖이 추운 날 생각하고 주님이 구원의 약속으로 내려주신 무지개를 연상하는 시인의 아름다운 마음, 이 시야말로 참으로 뛰어난다. 시인은 항상 독자를 위하여 상상의 여백을 남겨두어야 한다. 과욕으로 너무 많은 시어들을 남발하다 보면 시 자체가 지루하고 고루해진다. 군살을 과감히 제거하는 필자의 시심이 돋보인다.


태양광파 눈부시지만
범위가 한정되니
지구 반대쪽 친구 집은 깜깜한 밤.

태양빛 반사로
다정한 사랑을 충동하는 달님
뒤쪽의 어둠 때문에
보름만에 커졌다.
보름동안 작아지며
암흑으로 사라지다.

빛 되신 당신은
무한 범위 우주 비추시니
생길 수 없는 그늘과 어둠.

당신의 반사체가 되게 하소서.
그 빛 받아 그대로 반사하여
그늘과 어둠을 몰아내는 사역
감당하게 하소서.         <반사체> 전문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 가장 흥분하는 것은 용모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지만 자녀의 이름을 지으면서 다시 한 번 흥분한다.
  시인이 첫 시집을 출간할 때에는 마치 자식을 얻는 기쁨과 환희에 젖는다. 그리고 책 제목을 정할 때 고민에 빠진다. 이기윤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첫 시집 제호를 “반사체”로 결정한 것만 보아도 그의 삶 전체를 능히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은 소조(所造)가 아닌 소여(所輿)의 존재다.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 것이란 뜻이다. 하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은 될 수 가 없고, 그 빛을 받아 전하는 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도가 곧 이것이 아닌가. 우리의 생명이신 빛의 예수그리스도가 저기 계시다. 손을 들어 정확히 가르칠 뿐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기윤 시인은 분명한 신앙 시인이요, 이 시집은 아름다운 신앙시집이다. “반사체”는 작가 본인의 주님을 향한 자기 고백이요, 진정한 간증이다

둥글넓적 곰보 얼굴
포갤 때
암쇠 구멍에 수쇠를 맞추고
맷돌 입에
불린 녹두 퍼 넣는다.

둘이서 마주보며
호흡 맞춘 회전운동 맷돌질
녹두 갈린 뻑뻑한 액
거품이랑 물컥물컥 흘러내려
함박지에 고인다.

국자로 떠
달구어진 번철燔鐵에
참기름 휘 두르고
꾹꾹 눌러 지글지글
노릇하고 고소한 것
가난한 벗 대접 위해 떡으로 승격.

사랑 지진 부침이. 
                       <빈대떡 貧待餠> 전문

  시인은 잊혀 진 역사속의 얼과 언어들을  재 발굴하여 세상에 내어놓는 광부다.
  거친 광맥을 목숨을 걸고 곡괭이로 파헤쳐 새로운 금맥을  찾아내는 환희와 감동 이것과 맞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시인의 시 창작 특권이다.
  가난한 이웃과 눈물을 섞어 먹으며  함께 사랑을 나누던 우리의 거친 삶, 그 참 모습이 이 시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가을을 가슬로, 채소를 남새로 부르는 지방도 있다. 시인은  잃어버린 언어, 잠자는 언어들을 불러 일깨워 주는 나팔수다.


흰 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
흐뭇한 행복이 밀려온다.
감사의 눈물이
눈 못 보는 이웃을 향한 긍휼로
자전(自轉)하며 외친다.
“시각으로 들어온 현실이
마음을 가리어 볼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진찰(珍察)은
육안(肉眼)을 감아야
심안(心眼)으로
병을 보고
혈관과 신경을 보며
바늘 끝의 방향과 깊이를 재고
경락을 겨냥하여 침을 꽂으니
도망가는 병이 보인다.

하늘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나를 맥진하는 큰 손이 보인다. 
                        <진료(珍療)> 전뮨

  이기윤 시인이 문학의 뜻을 품고 시를 쓰면서 다시 한의학을 공부 한 것은 평소에 힘들고 가난한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침술을 배워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하겠다는 결심에서였을 것이고, 이는 예수님의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이 틀림없다.
  허준의 인술과 편작과 화타의 침술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지 않았겠는가? 여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께 하였으니 명작임이 분명하다.


며느리가 시집올 때
곱게 싸서 정표로 가져왔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은색이다.
오랫동안 품속에 지녀왔다.

강산도 변한 세월
변함이 없다.
속 깊은 깊은 아이다.

다만
바뀐 거라면
촉끝이 동그래졌을 뿐이다.

각진 내 마음의 귀퉁이 닳아지듯
손안에 들어오는 은장도
그 부드러운 칼날에
베어지는
절망
슬픔
미움들
잘여 나간다.

따뜻한 피가
詩가 되어 흘러나온다.

만, 년, 필(萬年筆)!        <선물> 전문

  선물은 주는 사람의 정성과 받는 사람의 기쁨이 함께하는 사랑의 교향악이다. 만남과 교환의 아름다운 정성이 잘 묘사된 이 시는 과연 절창이다. 며느리의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진리를 정확하게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일생을  함께 사는
새 한 마리.

눈만 뜨면  짹짹짹짹
좋으면 좋다고 짹짹짹짹
싫으면 싫다고 짹짹짹짹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면 짹짹짹짹

입에다가
믿음의 재갈을 물려
내 귀 좀 쉬게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혼자만 있으면 허전한 가슴
죽도록 사랑해야지!

이 새가
딴 세상 날아가면
아쉽고 그리워
어찌 살까
함께 날아 가야지!         <아내> 전문

  자고로 부부란 인생의 파트너다. 나는 이 발문을 쓰면서 혹시 아내에게 주는 노래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내심으로 걱정을 하였는데 아내가 떠나면 함께 떠나겠다고 다짐을 한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새의 시로 절정을 이룩하신 문단의 선배 고 박남수 시백께서는 부인이 작고하신 이후 뒷뜰 나뭇가지에 새가 날아와 울면 필시 이는 내 아내 일 것이다. 눈물을 흘리셨다던 모습이 떠오른다. 참으로 부부간의 삶은 서로 힘들 때도 많이 있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이 시는 부부 일심동체(一心同體)의 노래다.


민속과 추억을
섞어 끓인 동지팥죽
유월절 양의 피처럼
문설주와 인방에
뿌리고 바른다.

팥죽 그릇마다
나이에 하나 더한
새알수제비
소망 하나를 더 담아 먹는다.

연중 가장 긴 밤 새려
둘러앉아 사랑가
타령을 부르노라면
눈에는 눈물이 고이는데
입가엔 미소가 돌며
흥이 어깨에 걸치니
궁둥이가 둥실댄다.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유월절 구원의 힘이
재앙을 누르며
무럭무럭 자라간다.      <동짓날> 전문

  위대한 민족일수록 설화와 전설이 많다. 우리 민족은 특출하여 단오, 한식, 추석, 동지 등 명절을 때를 따라 지키면서 조상들께서 물려주신 풍속을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왔다. 동지팥죽을  떠올리며 이스라엘 민족의 유월절과 우리민족의 동짓날을 상기시켜주는 아름다운 마음, 미풍양속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워 소리치면
산 너머
그대도 맞장구
소리 지른다.

사랑의 갈증이
강 건너 산을 향해
고함을 친다.

당신이 음파를 타고
가슴에 들어오기에
소리칠 힘이 솟아나
사랑으로 커간다.         <메아리> 전문

  메아리는 사랑의 응답이다. 여보 사랑해요.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이것은 죽은 부부다. 야호! 빈산을 향해 소리쳐도 그 크기만큼 아름답게 울려 되돌아 오는 메아리,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믿음, 이것은 필시 교만한 간구이거나 죽은 믿음이다. 기도의 응답은 믿는 자의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야호! 사랑의 메아리 그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찬양 부르며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만나는 상대마다
끼인 때를 씻어주고
모난 곳을 갉아낸다.

하늘빛을 받아
꽃 피고 열매 맺게 도우려
사랑을 실어 나르며
밑거름으로 스며든다.      <시내> 전문

  맹자(孟子)를 읽어보면 영과이진(盈過而進)이란 유명한 말이 나온다.  
  아무리 급히 흐르는 물이라 할지라도 가다가 그 앞에 웅덩이
가 나타나면 반드시 채우고 난 후에 앞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급하면 돌아가라는 명언이 있다. 그러나 우주에는 질서가 있고, 인간에게는 윤리가 있다. 낮은 곳을 향해 주야로 쉬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유연한 마음과 가슴을 비우는 겸손을 배운다. 깊은 산길을 오르는데 시냇물가 커다란 바위에 누군가가 세심천(洗心川)이라 써놓은 것을 본 일이 있다. 세심정혼(洗心淨魂)의 준말이다. 마음을 맑게 씻고 혼을 정결하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필자의 시 ‘시냇물’을 읽으면 고향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가 떠오르고 둥근 돌을 엎어놓고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잊혀져가는 옛 고향의 정취를 되살려 놓는 것이 시인들의 사명이다.
  이러한 시골 정서의 시냇물에 사랑과 찬양이 함께 하였으니 금상첨화다. 자연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보인다.


가지에 매달린 삶
오랜 긴장으로
알알이 익힌 열정
초롱초롱 눈을 뜬다.

허공을 날던 새가
가지에 앉아
사랑을 노래하니

또랑또랑 뜬 눈에 미소 짓고
마음을 담은 향기로
반기며 마주한다.        <눈뜬 석류> 전문

  석류는 나무 모양이 귀족적이고 바위와 어울려 동양화의 귀한 몫을 차지하는 과목에 하나다.  세한삼우(歲寒三友)나 사군자(四君子)의 대열에  는 못 끼지만 그 꽃의 빛깔과 모양부터 아름답고  영글어 입을 벌린 석류는 루비의 간살처럼 찬란하고 예쁘다. 필자의 시 ‘눈뜬 석류’야 말로 시 자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곱고 시상이 시조 같이 고풍스럽다. 종파선생의 시에서는 곳곳에서 우리 선조들의 옛 시조 가락이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옛을 모르고 어찌 오늘을 알 수 있으랴.


창공 스크린에
구름으로 그린
그림.

꽃으로 피어나고
나비로 춤을 추며
벌새로 노래하고
온갖 악기 되어 연주하는
아름다운 감동 주는
동영상 입체음향.

너는
진리의 가슴에서
사랑으로 자랐기에
사람들 마음마다
감동과 깨우침을 일구는
감동자感動子.             <시詩> 전문

  시인은 잠든 언어에게 혼을 불어넣어 구름으로 떠다니게도 하고, 시냇물로 흘러가게도 하며, 때로는 바람 소리가 되게도 하고, 새가 되어 창가에서 노래도 하게하며, 달이 되어 고목 가지에 걸터앉아  시인과 함께 긴 밤을 지새우며 시를 쓰게도 한다.
  이 시 속에 구름, 꽃, 나비, 벌, 새, 악기가 등장하는 것도 시인의 마음인 것이다.


내 모습을
찾으려 한다.

바위덩이에
정을 대고
숨 가쁜 망치질
집중된 힘과 정성
피땀 흘리며
쪼아 낸다.
진통의 리듬
쪼이어서 패이며
뼈에서
튀는 불꽃
몸 타는 향기.

그 속에
아버지 닮은 모습
사랑이 조각이 되어
참모습 이루어진다.            <조각> 전문

  거듭 강조하거니와 시인은 분명 잠자는 언어들을 흔들어 깨우고, 혼을 불어 넣어 생동하는 작품으로 만드는 언어의 장인이다. 내 모습을 만들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아버지의 형상을 조각하는 조각가나 시인의 마음, 이것이 진정한 예술인의 마음이다. 본래의 심성 그 자체란 뜻이다. 이 시에서 필자는 아버지의 참 모습과 사랑을 합쳐서 하나의 고귀한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그  착상이 얼마나 고귀하고 진지한가.


삶의 짐을
내려놓는다.
하늘이 보인다.

한恨과 원願이
구름으로 날아간다.

고치 벗은 나비다.
하늘 날다가
꽃에 앉아
사랑의 꿀을 빨며
가루받이 하는데

감싸주는 하늘빛이
추수하는 날을 향하여
환하게 내려온다.      <환한 새날> 전문

  이 시 속에는 생성소멸의 깊은 의미와 진리가 저변에 깊게 깔려 있다.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음미해야 그 진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소가 진정한 양분을 얻기 위하여 반추를 계속 하는 것과 같이 깊은 뜻이 내재되어 있다. 독자 여러분들의 재독 삼독을 권한다.


봄을 피우기 위해
하늘 향해 곧바로 서서
머리 위에 피운 꽃
간절한 기도.

불꽃기도 심지가
몸과 맘을 녹이니
흐르는
밝은 빛 뜨거운 열
간절한 사랑 눈물.

어두움 밝히어
하늘의 뜻 깨우는 일
영광된 사역 새 생명의 환희.     <촛불> 전문


  이제 발문을 끝내려 한다. 내가 다 예화로 들지 못한 시들의 감상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이기윤 시인은 신앙심이 깊으신 장로이기 때문에 모든 시들 속에 빛, 생명, 꽃, 사랑과 기도가 철철 넘쳐 흐르고 있다.
  시집 ‘반사체’의 첫시가 ‘기원’으로 시작하여 자기 몸을 스스로 태워서 희생의 아픔으로 어두움을 밝히는 ‘촛불’로 마감하는 의미가 심장하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여러분이나 이 시집을 세상에 첫아들로 내어보내는 이기윤 시인 위에 그리고 이를 지켜
보면서 진심으로 기뻐하실 사모님과 가족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넘쳐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평생 심혈을 기우리고 땀 흘려 가꿔온 이기윤 시인의 향기로운 시의 동산으로 초대 받은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나는 “시란 직관의 눈으로 바라다본 사물의 세계를 사유의 체로 걸러서 탄생시킨 생명의 언어인 동시에 영혼의 메아리다”라고 정의를 내린 농부시인이다.

                                  미국 샌디에고 에덴농장에서 秀峯 鄭用眞 씀
                                                                   정용진 시인
                                                                   전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