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4 00:07
▲사진:주말인 11월3일. 청계천 수로(水路)변에 조성된 '책읽는 광장' 전경(全景) / 소니a7M3카메라-소니 50mm 단렌즈
연금술이 빚어내는 문체(文體)로 청자(聽者)들의 마음을 미혹(迷惑)케 하는 시인(詩人) 이윤홍.
그의 시 ‘너, 라는 여자’와 한강의 ‘서시’를 대비(對比)시켰다.
두 문장가(文章家)의 필력(筆力)이 가히 양웅상쟁(兩雄相爭)이다.
◼︎ 너,라는 여자 / 이윤홍
맘에 들어
딱, 내 스타일이야
글에 매어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야무지게 끌고 가는 모습
좋은 말, 찾았다고 좋아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단호하게 잘라버리는 저 직성
독자들이 멋있다, 환호해도,
뭔지, 알 듯 모를 듯
아무래도 한 표현이 맘에 안들면,
무더기 아쉬운 환호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제 맘이 만족하는 그것을 찾아
목매듯 매달리는 저 시인의 자세
두 사랑
둥근 하나 사랑 속에 담아도
제 빛깔 제 모습 또렷이 빛을 내고 있는
너, 라는 여자,
맘에 들어
딱, 내 스타일이야
◼︎ 서시 / 한강
어느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맘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끌어안고 오래 있을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은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말하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사진:주말(11월3일)창덕궁 인근 고즈넉한 카페 / 소니a7M3 카메라- 시그마 24-70mm 광각 렌즈
겨울의 문턱인 11월.
주말(2024년 11월 3일)의 서울 도심은 독서 열풍으로 후끈 달아 올랐다.
‘한강 신드롬’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다.
도서관에서,공원에서,별 다방에서,덕수궁에서, 청계천과 광화문 핫 스팟에서,심지어는 노인회관에서 저마다 책을 펼쳐 들고 독서 삼매경(讀書 三昧境)에 빠졌다.
역시 인간은 ‘사랑할 때’와 ‘책을 읽을 때’ 모습이 아름답다.
한편으론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쳤던 출판계와 도서유통업계도 한껏 고양(高揚)된 분위기다.
국가적 낭보(朗報)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 후 서점가의 매출이 기하급수(幾何級數)로 증폭(增幅)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서계가 때아닌 호황기를 맞은 이 시각, 교보문고 시(詩)판매부스에서 시집을 살피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미주 한국문인협회에서 엄선한 회원 시를 함께 엮어 대한민국 도서 유통시장에 선보인다면 ‘독자들의 지갑이 기꺼이 열릴 것’이는 생각이다.
앞서도 언급한바 대로 빼어난 시문(詩文)을 풀어내는 문장가들(미주한국문인협회)이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협회의 직무 유기(職務遺棄)다.
이산해 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