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4 23:49
▲사진:삼성역 인근 스타필드 코엑스 내 '별마당 도서관' 전경(全景) / 소니a7M3 카메라-시그마 24-70mm 광각 줌렌즈
이월난의 시는 인간 내면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심미적(審美的)표현으로 독자(讀者)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시가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인간 존재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직시하는 서사(敍事)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이월난의 시는 이미 수많은 평론가(비평가)들로부터 검증(檢證)됐기에 군더더기 부연(敷衍)은 잔소리다.
필자(이산해)는 이월난의 시가 교보문고 시(詩)판매대에 진열되길 바란다.
단언컨 데, 독자들에게 크나 큰 사랑을 받을 것이다.
특히 감성이 풍부한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계엄령이 해제(2024년 12월 4일)된 다음 날인 5일, 언제 그런 해프닝이 있었냐는 듯 하늘은 맑은 거울처럼 쨍했다.
장비(카메라)를 챙겨 서울 스케치에 나선 뒤 예의 없이 교보문고 책방을 둘렀다.
그러고는 곧바로 시집 판매대(販賣臺)에 다가갔다.
판매대에 올려진 베스트 셀러 시집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한강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였다.
뒤를 이어 윤동주와 기형도, 서정주 그리고 류시화 시인의 시집이 독자들의 손을 거쳤다.
필자는 시집 판매대에 몰려든 독자들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이 곳 부수에 이윤홍 / 정국희 / 이월난 / 오연희 / 김영교 시인의 시집이 진열돼 있다면 ‘대박’일 텐데!”
날개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이월난
우린 가끔씩 마룻바닥의 틈 사이로 숨겨진 어둠을 들여다보곤 했었지 해를 걸어 다니던 신발이 한 번씩 튕겨 들어가 나오지 않을 때면 가늘고도 긴 희망의 작대기로 끄집어내어 다시 신고 돌아다녔었지 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들은 집 박쥐였어 모가지에서 초음파가 나온다는, 그래서 그 반사음으로 거리를 재고 동서남북을 구별한다는
그 예민한 반향 체계를 가진 그 것들에게 밤마다 잡아 먹힌 나비들이 몇 마리나 되는지 몰라 그 짧고도 높은 파장의 소리로 먹이인지 장애물인지 구별한다는 건 타고난 축복 내지는 보람 없는 업적의 서막이었어 꽃박쥐가 오면 꽃이 되었고 흡혈박쥐가 오면 따끈한 피가 흐르는 짐승이 되어 주었지 그 박쥐동굴 위에서도 가슴이 뽕긋이 자라는데
관광객 같은 타인들로부터 배인 빛의 냄새를 독침처럼 숨기며 살았지 철퍼덕,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신을 치울 때마다 올려다 본 하늘은 하도 파랗고도 파래서 꿈이 착지한 것이라고 여길 뻔 했지 마룻바닥이라든지, 지붕 아래 천정 위라든지, 그 절묘한 공간으로부터 옮겨 붙은 공수병으로 림프샘이 퉁퉁 붓던 날은, 쥐들이 나의 몸을 밤새 뛰어다닌 아침으로 햇살을 둘둘 감고 살균하는 날
그렇게 오래도록 위독해지는 병을 아직도 다 치르지 못해 치사량 훌쩍 넘긴 어둠의 환각제를 삼키고 나면 은신처들이 몸을 불리고 있지 맞아,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 날아다니는 유일한 포유물, 파르르, 낙태되지 못한 앞다리로 밤마다 날고 있었던 거야
마크 로스코와 나
-2월의 죽음
한강
미리 밝혀둘 것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 태어나
1970년 2월 25일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7일 태어나
아직 살아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의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이산해 글 /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