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4 05:03
사진:한강 노들 섬에서 바라 본 여의도 밤 전경(全景) / 소니a7M3 카메라 / 시그마 24-70mm 줌 렌즈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
지난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은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수여(授與)했다.
아시아 출신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은 이날 노벨상을 상징하는 블루 카펫을 밟고 시종일관 환한 웃음을 보였다.
노벨재단 이사회 의장인 아스트리드 쇠데르베리 비딘은 축하 연설을 통해 ‘올해의 문학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깊이 탐구(探究)한 작품에 수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간 존재의 비극적 조건을 극명하게 드러낸 한강 작가의 탁월한 필력에 존경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필자(이산해)는 스웨덴 한림원(翰林院)의 한강 작가 지명은 매우 타당했다고 본다.
한편으론 국내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이 한강 작가의 몇몇 소설 작품을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하며 논쟁을 부추겼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들은 한강의 베스트 셀러(채식주의자 등)를 정치적 시각으로 대하지 않고 시대를 반영한 문학작품으로 읽어 내리는 경향(傾向)이 크다.
노벨문학상 수여식이 끝난 뒤 차를 마시며 미주 한국문인협회 서재 목록에 들어섰다.
이들 회원 가운데는 한강의 필력에 버금가는 천재 시인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별의 순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단언컨 데, 게으른 탓이다.
한강 작가가 지구촌 스타로 부상(浮上)한 배경은 이렇다.
그의 천재성(天才性)이 빚어 낸 글을 접하고 기꺼이 번역에 나선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비지우(출판업자)와 영국 출신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여”채식주의자 번역)의 인연이 낳은 결과 였다.
이처럼 ‘별의 순간’은 타이밍이다.
빼어난 작품과 인지도(認知度), 번역가의 공감능력(共感能力)이 그것이다.
단단한 필력(筆力)으로 문장가(文章家) 반열(班列)에 오른 오연희 시인에게도 노력여하에 따라 ‘별의 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이는 허튼 소리가 아니다.
오시인의 문장(文章)이 결코 한강에게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 오연희 시인의 다양한 시를 두루 읽었다.
그의 내재(內在)하는 현실세계를 고찰(考察)하며 오시인이 ‘LA 변방(邊方)’에 머물고 있음을 안타까워 했다.
한때 그의 시집이 출간된 전례(前例)는 있지만 그 명문(名文)들은 지표(指標)속에 박제화 되고 있을 뿐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어쩌면 오연희 시인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이산해 글 / 사진
블랙엥그스
오연희
사우스 다코다에 가면
금빛 초원위를 노니는
세월 좋은 검은 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둑어둑한 저녁나절
눈발이 휘날리는 들판에서
해가 지든 말든 눈이 오든 말든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데
영악한 사람들은 하늘을 가리는 어디론 가 다 피하고
우둔한 저들은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운 하얀 눈세상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축복의 크기를 확인하기에는
어둠 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듯
눈이 발하는 수억의 빛을 온 몸으로 읽으며
세상 여념 없이 풀을 뜯고 있는데
얼만큼 어두워 져야 집으로 돌아가는지
느린 저 걸음으로 밤새 다다를 집이 있기나 한지
혹은 저 들판이 바로 저들의 집은 아닌지
온갖 상상을 하다가
차든 집이든 건물이든
더 크고 더 멋진 곳에 몸싣은 것을 지고의 낙으로 삼다가
자기 몸 크기만한 관속이나
혹은 한줌의 뼛가루를 담을 조그만 단지 속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결국과
그 인간들을 위해 한 몸 온전히 다 내주고 가는
저들의 결국에 대하야 생각하다가
영혼 꼭 붙들고
가던 길 쪽으로 사라져 가는 일 외에
길이 없어
길을 간다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