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밥의 추억
오정방
‘쌈밥’이라고 하면 밥을 쌈으로 싸먹는 하나의 식사 형태를 말한다.
쌈밥은 고려 시대부터 존재했다 하며 채소에 밥을 싸먹는 풍습은 우리 민족에게는 많이 익숙한 식습관 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어린 시절에는 겨우 호박쌈이나 배추쌈 정도 싸먹었던 기억이 나고 미국에 와서는 텃밭에 심은 머위나 깻잎 정도 따서 제 철에 즐겨 먹는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쌈밥 전문점’이 생겨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것은 삽겹살이 돼지고기로서 대중화 되면서 별도로 쌈 채소와 함께 쌈밥을 제공하는 형태가 일반화 되어 이곳 저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쌈밥식당이 생겨났다. 바로 그 무렵에 미국 오레곤으로 이민을 오게되어서 떠나기 전 울산에 살고 있는 동생을 찾아갔는데 그가 안내한 곳이 바로 그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쌈밥 집이었다.
식당 큰 방에는 식탁 너댓개 펴 있고 방석을 깔아 놓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이미 주부들 예닐곱 명이 좌정 하고 있는 그 한 쪽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음식을 주문하니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상추, 깻잎, 배추 잎, 머위 잎, 취나물 잎, 쑥갓, 치커리, 고추 잎, 미나리, 곰취, 호박 잎 등 10가지도 넘게 한 상 가득히 나왔다.
그런데 옆 좌석의 주부들은 곗꾼들인지 돈이 오가면서 싸움이 나서 큰 소리가 귀에 너무 거슬려 도무지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인들 식탁으로 용감히 가서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도 약간 의아한듯, 궁금한듯 나를 쳐다본다.
“서울에서 내려와 잘 몰라서 물어보는데요, 울산에서는 쌈밥을 먹을 때 쌈하면서 먹어야 하나요?” 이 한마디가 저들의 싸움을 한 방에 평정해 버렸고 우리는 식사를 참 잘 했다.
요즘 들어 집에서 가끔 호박 잎 쌈이나 머위 잎 쌈을 싸 먹을 때면 오래 전 우리 미국으로 이민올 적에 울산에서 먹어보았던 그 ‘진수성쌈’ 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9월은 우리 가족 넷이서 나름대로의 꿈을 안고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 시로 장막을 옯긴지 꼭 38년 째가 되는 달이다. 날짜는 27일이고 그날은 주일이었다. 세월 참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