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소담山中笑談
오정방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자가 갖고 있는 취미가 있다. 사람의 성격과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취미도 물론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독서, 글짓기, 음악감상, 여행, 낚시, 사냥, 뜨게질, 서예, 골프, 등산 등 수 십 가지가 되겠는데 신혼무렵 나의 취미는 등산이었다.
신혼 초, 우리부부는 내가 쉬는 날이면 배낭에 먹거리를 챙겨서 산으로 떠난다. “서울근교에 이런 명산이 있다니?” 감탄하며 감사하며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청계산을 자주 올랐다. 등산은 정신건강에도 좋고 체력단련에도 아주 유익한 운동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의 내 튼튼한 다리는 팔할이 젊은 날 등산에서 얻은 부산물이다. 그리고 경제적이기도 해서 버스 한 두 번만 타면 산밑에 이르니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나중에 아이 둘이 생기고도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자주 가족등산을 많이 했다. 우리 둘은 결혼 다음 해 봄날 어느 쉬는 날에 늘 하던 대로 배낭을 챙겨 북한산으로 등산을 갔다. 가장 높은 봉은 백운대(836m)인데 기분 좋게 정상에 올라 “야호! 야호!” 크게 외쳐보고 시야에 펼쳐진 산봉들을 내려다보며 또 한 번 감탄사를 연발했다. 뻥 뚫린 사방을 둘러보니 모두 우리 발아래 있다.
산은 내려올 때가 더 힘들다. 다리에 힘도 빠지고 내리막길 넘어질까 신경도 많이 써야하기에 그렇다. 새색시는 이날 따라 좀 지쳐있는듯 보였다. 그렇다고 등에 업고 가기에는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았다. 나는 보속을 조절하면서 기분 좋게 내려오는데 짝궁이 저렇게 힘들어하니 고민이 안될 수 없다. 이 때 내게 이런 기막힌 지혜가 번뜩 떠오르다니? 나는 10여보 앞서가면서 5천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바짓가랑이를 통하여 길바닥에 떨어뜨리는데 성공한다. 60년대 말 5천원은 지금의 5만원쯤 아니 그 이상 가치가 있는 금액이 될까? 힘없이 뒤따라 오던 새색시가 이것을 발견하더니 쏜살같이 내게 달려와 횡재했다고 춤을 춘다. 이 약방문은 주효했다. 돈의 힘이 참 무섭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아이고, 이 돈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애가 탈꼬?”하니 조금은 난감해하는 눈치다. 그렇다고 제 자리에 다시 갖다 놓을 수도 없어서 들뜬 기분으로 하산해 마을로 돌아와 가까운 시장에서 필요한 것을 다 산다. 나는 절로 웃음이 났다.
이 사실을 밝힌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고 우리의 조그마한 이 추억은 지금도 우리 기억에 선명하다. 이는 벌써 57년 전 일이고 우리 결혼 60주년도 3년 뒤로 다가 온다. 날자는 10월 17일.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17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