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12.28 03:19

정전이 남기고 간 것

조회 수 42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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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유난히 차고 기온 뚝 떨어졌던 12월 초 어느 하루 정전이 되었다. 변압기 교체공사 때문이라는 전력회사의 통지를 받았음에도 '하룬데 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집 안에 있는 일체의 전기제품이 작동을 멈춘 다음에야 전기의 의존도를 실감했다. 춥고 배고프다는 말이 사치인 줄 알지만 핑계 삼아 밖으로 나돌았다. 오후 5시, 정전해제 예정시간이 조금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네가 온통 암흑 세상이다.

일찌감치 어두워진 날씨 탓에 길거리는 정적마저 감돌고 집안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다. 전기가 들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다시 나가 저녁 사 먹고 마켓 가서 장까지 보고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캄캄하다. 이 상태로 밤을 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했지만 '나만 겪는 일 아니잖아!' 생각하니까 견딜 만한 일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해 불을 밝히고 선물 받은 향초들을 찾아 불을 붙였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아무 생각 말고 기다리자 싶어,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소파에 쪼그리고 앉았다.

생각해 보니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어디 정전뿐이랴 싶다. 연로하신 엄마한테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하는 이국 생활, 헤어져 산 기간이 길어지면서 희석되어 가는 언니 동생들과의 애틋했던 자매애, 중병에 걸린 친구를 위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냉정한 사실 등등. 마음 아린 일들이 떠오르더니 살맛 앗아가는 한국의 혼란한 정치 현실로 이어진다.

성탄을 상징하는 이름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미국사회 분위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적힌 성탄 카드 구하려고 발품을 팔아야 했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명소로 알려진 옆 동네 입구에는 '크리스마스 라이트' 대신에 '할리데이 라이트' 푯말이 붙어있다.

아쉬운 순간들이 줄을 잇길래 계속 이러면 안 되지,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번쩍, 세상이 밝아졌다. 환한 세상이 어쩜 소리도 없이 이렇게 한순간에 오는 걸까. 마음 속에서 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빛의 위력에 놀라고 늘 보던 집안 곳곳이 새롭게 살아난다. 어둠은 생각만 활동하게 하더니 빛은 생각이 구체화 되고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한참 움직이다 보니 밝은 생각들이 슬며시 밀려온다.

전화로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카톡이 있어 언니 동생들과 수다 떨 수 있고, 아픈 친구에게 음식과 말로 위로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나라도 인재가 나타날 거야 그럼. 크리스마스트리는 내 마음에 세우지 뭐. 한발 물러서는 생각과 함께 동동거리며 밀린 일을 마무리하는 사이에 밤이 깊어간다.

정전이 해제되기를 기다리는 어둠은 불안이었는데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내린 어둠은 평안이다. 내일이면 생각도 나지 않을 일로 마음 졸이며 또 하루가 간다. 그런 날들을 거쳐 또 한해, 그 끝자락이다.

아무 일 없이 잠자리에 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야. 매일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있군. 중얼대 본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2016.12.2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2&branch=NEWS&source=LA&category=opinion&art_id=488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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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uck 2016.12.29 03:56

    오 시인님 !


    희망의 새해를 맞으시기를.


    더불어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독자 최 무열


    http://www.youtube.com/watch?v=dukV646Vv58

  • 오연희 2016.12.30 04:44 Files첨부 (1)

    늘....감사드리며...

    images.png



  • Chuck 2016.12.31 02:42

                 2016년을 보내며 !


    올해도 세밑은 심상하게 보내고 있다. 시간에 무심해진 것은 출퇴근의 반복이 없는, 온전히 내 뜻으로 그것을 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블로그에 이삼일에 한 편쯤 글을 쓰고, 포털의 비공개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에는 비할 바 없이 둔감해졌다. 


    성탄절에 즈음해서야 겨우 올해도 막바지로구나 하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러나 마음은 평온하다 못해 심드렁했다. 회한이고, 아쉬움이고 허망함이고 그런 사치스런 감정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나는 마치 시간의 질서로부터 비껴난 국외자처럼 시간의 흐름을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오늘밤은 2016년의 제야(除夜)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은 ‘송박영신(送朴迎新)’의 촛불을 밝힌다고 한다. 질곡의 해를 보내는 제야의 종을 울리며 

    시민들은 새해의 희망을 어떻게 그릴까.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은 적이 없다.


    올드 랭 사인으로 마감하는 1년


    텔레비전 중계화면이 아닌 사람들이 운집한 거리에서 그걸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제야를, 묵은해를 보내는 그 형식적 의례를 소설의 한 장면으로만 기억한다. 

    그건 일종의 관념이다. 2016년의 축축한 물기가 섞인 센티멘털한 관념.


    소설에서 말하는 ‘이별의 노래’는 흔히 ‘불망(不忘)’이라고 불리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배웠던 그 노래는 여운이 자못 쓸쓸했다. 이 노래는 스코틀랜드의 시인인 로버트 번스가 1788년에 지은 시와 곡에서 비롯되었으며 영미권에서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부르는 축가로 쓰인다고 한다. 

    올드 랭 사인은 스코트어로 ‘오랜 옛날부터(old long since)’의 뜻이라 한다. 강소천이 번역한 한국어 가사를  뜯어 읽고 노르웨이의 여가수 지젤이 부르는 올드 랭 사인을 되풀이해 들으면서 2016년과 작별한다. ( sent that from Korea )


    "https://www.youtube.com/embed/UOwNBP_B1xo" 

     

  • Chuck 2017.01.02 03:20

    Ode to joy !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시집『웃음의 힘』(지혜, 2012)
    .....................................................


     한해를 날고뛰었던 사람이나 태평하게 팔자걸음을 걸었거나 엉금엉금 기었던 사람이거나 똑 같이 새해를 선물로 받았다. 잘 나고 힘센 사람이라고 새해의 근수가 더 나가고 못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해서 그 무게가 가벼운 건 아니다. 시간이 주는 선물은 참으로 공평하여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누구나 고루고루 새해를 안았다. 이럴 때 살아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벅찬 기적이란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모두 제 깜냥으로 제게 주어진 형편껏 살다가 똑 같이 새해를 맞았다.


     우주의 손바닥 안에서는 모두가 뛰어봤자 벼룩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새해니 각오니 소망이니 분답하다. 황새, 말, 거북이, 달팽이, 굼벵이들은 서로 견주거나 따지며 순위를 매기지는 않는다. 인간들의 공연한 취미로 경주를 붙여보기도 하는데, 애당초 의미란 없고 판가름이 날 승부는 아니었다. 심지어 바위조차도 가만 앉은 채로 새해를 맞았지만 결과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묵묵한 결가부좌의 자태가 의젓해서 돋보인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낙오하지 않고 정유년 새해 벽두에 당도하여 이제 막 새 출발을 했다.


     이 시는 2012년 1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광화문 교보빌딩 벽에 대형 걸개로 내걸려 화제가 된 바 있다. 황새나 말처럼 용빼는 재주를 가졌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달팽이나 굼벵이처럼 느려 터졌다고 침울할 이유도 없이 우리 모두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 이렇게 살아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해 첫날을 다함께 겸허히 맞이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아 시를 채택했으리라. 하지만 우리 인간에겐 새로이 펼쳐진 무대에서 첫 순간의 가지런한 카펫을 밟는 소감이 다른 생명체와 달리 엄숙하고 존엄한 것이리라.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인간이기에 다른 생물이나 무생물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간의 균질성을 알고 오늘의 해가 어제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지만 새해 첫날에 의미를 부여하며 산뜻한 기분으로 맞는 것은 오로지 사람만이 가능한 태도이다. 다만 지금까지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굴렀던 모든 걸 잊고 기득권을 지우는 일 또한 사람의 지혜라 하겠다. 서로 덕담을 건네며 복을 비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지난 성과와 과오를 깔끔하게 털어버리고 누구에게라도 편견 없이 겸손하게 대함이 옳지 않으랴.


     촐싹대지 않고 바위의 묵직함을 배우며, 잔잔한 범사에 감사하고 조화로운 삶을 소망할 일이다. 진정한 기적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운데 잠복되어 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사랑의 샴페인도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상태이다. 배를 뒤집은 격랑을 가라앉히고 새 배를 띄우리라. 나라도 마을길도 다시 만들어 새롭게 길을 떠나리라. 그리고 걱정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리라.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새해 새날들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권순진)


    "https://www.youtube.com/embed/LYMTFTXI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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