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2.10.25 04:43

자식 결혼과 부모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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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동안 연락이 뜸했던 한국의 한 지인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조만간 전화통화를 한번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십수 년 전 우리 가족이 주재원으로 영국에 사는 동안 친언니처럼 따랐던 분으로 그녀를 빼고는 영국에서의 나의 추억을 온전히 엮을 수 없을 정도로 붙어 지냈다.

갑자기 이메일에 전화까지 하겠다는 걸 보면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아 얼른 답장을 보냈다. 며칠 후 정말 전화가 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말이 마구 헛나올 정도로 반가웠다. 서로 안부를 묻고 답하고 놀라고 깔깔대고 한참을 수다를 떤 후에야 본론이 나왔다.

친한 친구 딸이 동부 쪽에 살고 있는데 서른이 조금 넘었으며 공부도 할만큼 했고 부모도 반듯하고 직장도 인물도 괜찮으니 신랑감 좀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설마 이 말 하려고? 고개가 갸웃해졌고 '부모가 반듯하다'는 말이 크게 들려왔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추세라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해가 바뀔 무렵이 다가오면 과년한 딸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이 영 편치가 않은 모양이다.

늦은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몇 해 전 우리 집을 다녀간 한국의 먼 친척 조카가 생각난다. 자기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중인 조카는 당시 20대 후반이었는데 결혼 계획은 없느냐고 슬쩍 물었더니 몇 해 동안 사귄 사람이 있었는데 헤어지고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 사귀고 있다고 했다. 연하인 남자친구를 위해 선물을 샀다면서 연애 기분에 약간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어 '나이도 있는데 너무 고르는 거 아니냐?' 한 마디 던졌더니 사실은… 하면서 결혼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귀는 남자와 어느 선까지는 잘 간단다. 그런데 남자가 결혼하자고 하면 불에 덴 듯 뒤로 물러서는 자신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던 부모를 보고 자라면서 가정을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접고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더욱 우뚝한 존재가 되는 것에 삶의 즐거움을 두기로 했다는 조카의 말에 가슴이 아렸다.

그때는 조카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부모가 그랬기 때문에 따뜻한 가정을 이루어야겠다는 갈급함과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잘 지켜야겠다는 각오가 더 컸다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하면서 닥쳤던 몇 번의 위기를 결혼 생활이 원만치 못했던 부모님 때문에 외로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넘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이가 들면 결혼생활의 본이 되지 못한 부모도 그 속에서 외로워했던 자녀도 서로 안타까이 지난 날을 바라볼 뿐이라고….

내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녀 말을 들으며 늦었지만 조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입안에서 뱅뱅 돈다.


미주중앙일보 '삶의 향기' 201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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