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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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별나라에 전화하기 ( 수필 )

2024.06.26 20:53

김향미 조회 수:6

   

                         별나라에 전화하기

 

   기계치에 가까운 내가 요즘은 제법 셀폰을 애용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나에게 전화기는 전화만 주고받으면 되는 이름 그대로 전화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이런 저런 기능 사용에 익숙해지더니 스마트해서 붙여진 별명만큼 스마트한 셀폰을 잘 사용하고 있다. 

   오늘 한적한 시골길을 운전하게 됐다. 조금은 나른한 운전길이다그런데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하이웨이 철망 가장자리에 내가 무척 좋아하는 해바라기가 무더기로 피어 있다.  여름 초입에 만난 키 작은 노란 해바라기 군집은 군데 군데 줄을 이어 화사하게 모여 있다. 보이다 끊기고 또 다시 보인다. 마치 해바라기의 열병식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마음까지 환하게 밝아진다. 그러다가 순간 가슴에 전기가 찌르르 흐른다. 한동안 끊어져 있던 회로가 작동하는 것 같다.

   2017 그해 화창한 여름은 나에게는 너무나 어둡고 아픈 계절이었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암진단을 초봄에 받으셨다.  수술을 하면 완치도 가능할 것 같다는 병원의 진단과는 달리 막상 수술을 하고 나니 암의 상태로 미루어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절망적인 선고를 들어야 했다.  조직 검사때와 수술 후 막상 떼어 낸 암덩어리의 실체는 극과 극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하고 병원에서 권하는 치료를 받으시게 했다. 하지만 아버지도 어렴풋이 짐작을 하신 눈치였다그래도 의사가 권하는 것마다 밝은 모습으로 쉽지 않은 치료를 이겨 내셨다. 나도 아버지 앞에서는 덩달아 씩씩하고 명랑한 맏딸의 모습으로 간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 즈음에 아버지는 결국 암치료를 포기하고 호스피스 간병만 받기로 결정을 하셨다.  의사가 말한 일년을 채우려면 아직도 반년이 남았는데 아버지의 팔뚝은 점점 가늘어져 갔다.

   아버지가 드실만한 음식을 만들어 챙겨 들고 종종 걸음 치며 들어가는 병원 길목에 화사하게 핀 여름 꽃들이 발목으로 스쳐 보였다.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햇빛을 받아 짙은   초록빛 잎사귀와  고운 빛깔의 꽃잎이 눈부시게 고왔다. 순간 아버지는 내년에 이 꽃들을 또 보실 수 있을까아버지가 떠나가실 그 곳에도 이런 곱고 환한 꽃들이 똑같이 계절마다 피어 날까 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참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아버지가 이사 가실 그 곳에도 이런 것이 있을까? 즐겨 보시던 드라마를 마지막회까지 보지 못하고 떠나 가시면 궁금해서 어쩌실까? 혹시 그 곳에서도 드라마를 계속 보게 되시지는 않을까….?  

   아버지는 결국 드라마의 마지막회를 보지 못하고 일년을 딱 반만 채우고 돌아 가셨다. 내가 가보지 못한 그곳으로 서둘러 떠나 가셨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가 떠나가신 그곳의 모습이 정말 궁금해졌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하늘나라의 모습은 이제 기억에서 지워진 듯했다. 그저 내 아버지가 계시는 그곳 만이 알고 싶고, 지금 무얼하고 계시는지 너무 궁금해 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아버지에게 대답 없는 말을 걸어 본다.

   시골길을 달리다가 눈에 훅하고 들어온 노란 해바라기의 정겨운 장면은 오래 전 아버지와 함께 캠핑 가는 길마다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 가족과 함께 여름 캠핑 가는 것을 유난히 행복해 했던 아버지. 들뜬 마음으로 나서는 여행길 첫 감동은 주로 노란 해바라기의 열병식이 되곤 했다. 

   캘리포니아의 여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키 작은 해바라기를 어쩌면 어제도 어느 길가에서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오늘 왜 이렇게 사무치게 노란 꽃 빛이 가슴을 두드리는 걸까. 문득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거신 건 아닌지 가슴이 설레인다.

   아버지가 계신 그곳으로 내가 전화를 건다면 받으실까? 닿을 수 없이 너무 멀어서 안되는 걸까? 문득 운전대 옆에 걸린 셀폰을 본다. 길치인 나에게 길도 잘 알려 주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스마트하게 척척 해결해 주는  이 작은 요술상자가 어쩌면 아버지와 연결 시켜 줄 수 있지는 않을까억만년은 걸려야 빛이 되어 보여질 어느 작은 별에라도  나와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기지국 하나 세워지면 그때는 셀폰으로 아버지에게 묻고 또 물을 수 있지 않을까…?

   “    아버지,  거기도 해바라기가 흐드러졌나요?  여기는 지금 노란빛 지천이예요….  “

 

 

          2024 미주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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