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2005.01.25 23:25

김진학 조회 수:371 추천:22

불씨 / 김진학


그 골목 구멍가게에는 앞니 빠진 할머니가 살고있었다

감나무에서 하나둘 떨어지는 가을이 동짓달 기슭으로 걸어가고

겨울을 닮은 할머니의 얼굴이 물색하늘에 거울처럼 걸린다


감나무엔 아침마다 까치가 울어도 학교를 파하면

조무래기 몇 명 몰려와 과자부스러기를 사갈 뿐,

삐꺽이는 나무창문에 가끔씩 가난한 바람이 쏟아지면

졸던 누렁이가 굴러가는 붉은 가을을 쫓아가고 있었다


높아지다 못해 쓸쓸한 하늘로 돌아가기를

입버릇처럼 염원하는 할머니의 가슴이 태양처럼 타오르던 때가 있었다

동전 몇 닢만 해도 쌀 한 가마니를 쌀 수 있던 그 나이쯤의 불씨가 아직도 남아

굽어진 허리만큼 질곡[桎梏]을 살아 온 시간을 너머

군데군데 이 빠진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200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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