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시절을 뒤돌아보며.. - 박 복 수
6.25 전 , 종로 종각 건너 서남쪽에 지금의 '교보문고' 자리에. '한성도서 출판사'에서 경영하던 서점이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전 의례히 학우들과 서점으로 직행 , 윤동주, 한용운, 심훈, 괴테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캐등, 시를 읽었다. 배가 고프면 옆집 '나폴리 케이크' 집에서 허기를 채웠다. 서점엔 항상, 그집 둘째 아들인 연대생, H 는 때로는 한복 두루마기에 , '말보로' 긴 담배를 물고 책을 읽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키가 큰데다 미남이었다. 우리 학우 일곱 명이 백금 보석 시계를 사서 누구든, 그가 무릎을 꿇게 하는 애가 그 시계를 ... 어느 날 한용운 시의 - 선사의 설법- 이라는 시로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 시계는 내 차지가 됐다. 허나 6.25 동란 으로 6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지만 울며 불며 매 달리던 그와 결혼은 못 이루었다. 우리집 뒷산을 넘어 새벽 4시경 처 들어온 공산군.. 대청의 커튼을 잘라 어린동생을 업고 뛰 시던 엄마 .. 모두 구두는 못 신고 고무신짝만 끌고 아버지 병원으로 달려갔던 새벽.. 대청 밑에 있던 나의 모든 혼수들은 동란으로 다 없어지고, 홀로 되신 어머니를 두고 시집 갈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효녀 "심청'이라 불리던 나는 세살 때도 어머니가 방바닥에 앉으시면, 보려에 달린 방석을 낑낑 거리며 끌고 가 어머니 뒤에서 밀어 넣어 드리던 소문난 효녀였다.
6.25 가 일어나 외과 의사 이었던 우리 아버지, 중앙대학 외국어 교수 었던 H의 형님, 그의 아버지도 세분 다 납치 당하셨다. 연대생들은 '바풀딱지' 라 불리던 '소위' 라는 이름으로 대구 방직공장으로 다 끌려갔다. H 어머니는 서둘러 '함' 까지 보내왔다. 당시 나는 K.B.S.중앙방송국에서 심야의 나가던 '문학의 밤 '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 또한 모파상, (Guy de Maupassant) 이 쓴 <여자의 일생. 은 언젠가 나도 우리 한 민족의 여인의 일생을 쓰리라는 꿈을 가지게 했다.많은 사랑의 편지들로 너무 행복했던 시절이다.
6.25 전쟁돌발, 첫 뉴스를 담당한 위진록 아나운서 ( 수필가) 와 함께 방송하던 사진 한장이 유일하게 신문기자가 보내주어 나의 블로그에.. http:// blog.daum. net/ jc21th/ 17782728 외많은 번호가..또는 Youtube 에도 또는 (재미 방송인협회 15대 회장 박복수 jc21th.tistory.com 춘하추동방송) 에 재미시인 박복수' 17) 에 나의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진들과 이야기가 올려져 있다. 동난 으로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아직도 내 서재에 걸려 있는 사진이다. 친척에서 얻은 두 살 생일사진, 침모가 해준 양단두루마기, 종로의 단골 포목점 '윤상회' 아저씨가 " 우리 복수 두루마기는 송아지 한 마리 값이네" 하셨다던 꼬까 옷이다. 당시 서울 종로에서 유명했던 '아카데미 사진관'에서 오빠와 손잡고 찍은 것과 인형을 안고 자주색 구두신고 일본에 유학가 계시던 아버지 보러 갈 때 마다 '미쓰고시' 라는 동경 백화점에서 사온 실크 드레스 입고 모자를 쓴 ' 유치원' 때 사진뿐, 동난 전에 것은 아무것도 없다.
6.25 동난으로 방송국에서 가족과 함께 화물칸에 태워 대구 '키네마 극장'에 내려 주어 방송인들이 합숙, 그 후 부산 방송국으로 대북방송을 하러 가던 중, 우리 방송인들이 탄 차를 대형 화물차가 달려와 충돌, 운전대 옆자리에 앉았던 나는 앞유리창 밖으로 던져졌다. 대구동산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때 받은 이마의 상처는 아직도 내 이마에 남아 있다. 그 병원의 부속 간호학교 학생들이 '문예지'를 들고 몰려와. 싸인을... 그 문예지 표지에는 나의 전신 사진이 " 샛별, 장래가 기대된다" 라는 ...덕분에 이마 좀 다쳤는데 공주같은 과분한 대접을 .. 너무 감사해 외과 과장님께 크리스마스 날, 라이터를 사서 선사했는데 하두 자랑을 해 친구인 산부인과 과장님이 감추어, 병원 곳곳에 "찾아주면 사레금을..." 소동까지..
그 후 우리 방송인들은 먼지 나는 추럭을 타고 일선에 가서, 노래도 부르며 장병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미 공보원에서 나를 일본으로 파송하려 했으나 장녀인 나는 폐물주머니만 의지하고 사시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두고 갈 수 없었다. 우리 방송인들은 녹음을 마친 후 부산 광복동 찻집에 모여 앉아있었다. 어느날 , 아버지가 동경 유학시절, 어머니가 봄, 가을, 아버지 위해 밑반찬을 해 삼광 유치원 다니던 내가 방학하면, 나를 데리고 가시었다. 반찬을 나누어 즐기시며, 나를 친 딸 같이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짝사랑하신) 서울대 교수 님을 만났다. " 공부를 해야지 이러고 시간을 낭비하면 어떻게 하느냐" 고 하셨다. 그 후 교수님 댁으로 데리고 가셔서 시험 공부를 준비 시키시고 등록비까지 내어주셨다. 결국 학교 공부때문에 부득히 방송 일을 그만 놓아야 했다. 서로 홀로 되신 분들 이라 어머니께 재혼을 권했다. '심청이' 라는 효녀 로 불리던 나의 뺨을 처음으로 때리시며 " 왜? 너의 짐이 될까봐?" 하시며.... 결국 이곳 중앙일보 주최: <현부인대회에서 > '열녀상'을 받으셨다.
나의 문학 생활은 다시 이어 졌다. U.C.L.A. 유학을 오기 위해 나의 모교인 서울대 부속 외국어 연수원에서 일년 마치고 문교부 시험에 불합격, 다시 재수 하는데 숙제는 주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외워 가야했다. 거이 암송은 내 차지였고 결국. '조교'라는 별명까지 붙어 교수님 질문의 답은 거이 내 차지가 되었었다. 당시 같은 반에서 남자 친구와 공부했던 친구 내외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가까이 살며 아직도 몇 십년 동안 우리 집 행사마다 참여하고 있다. 1961년 유학을 왔고 U.C.L.A. 대학원 법대생이 었던 남편은 한 학기 남긴, 우리는 둘이 다 63년 재학중 결혼, 나는 두 아이 키우느라 졸업식에는 참여 했으나 12학점 미달로 졸업장은 못 받았다.
남편은 한국에서 여자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전국 영어 웅변대회 때 마다 일등 하며, 6'25 동난 때는 미팔군에서 통역관으로도.. 고등고시에 합격 판사로 인명 받았으나 당시 이화여대 일기생인 누님에게서 매주 피아노를 배우던 제자 (남편이 재직하던 고등학교 주인 이사장의 딸 소아과 의사 ) 와 10년 교제 .. 그 여인이 백아관 근처에 취직이 되 미국으로 오는 바람에 판사자리를 던지고 미국으로 유학왔으나 동서로 떨어져 있었다. 토요일 마다 통화하던 어느 날, 전화를 안 받아 달여간 날, 그녀의 남동생과 살던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려다 보고 기다리는데 차 한 대 와 서더니 어느 남자가 문을 열어주는데 그 약혼녀가 내리더란다. 그 길로 돌아와 U.C.L.A. 병원에서 두 달 간 입원.. 후 나를 만난 것이다. 아무리 울고 불고 매 달려도 일체 변명도 듣지 않고 거절. 그렇게 소중한 10년은 뜬 구름이 되어 떠나갔다.
하늘이 맺어 주신 인연은 따로 있어...나도 큰 보석 반지를 끼고 "나는 이미 결혼했다" 하며 남학생들이 근접을 못하게 하고 다녔는데도 . 당시 여학생은 없고 노총각들만 있어 다들 나에게 매달렸다. 이화대 여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약국에서 쌘드위치 나르던 일을 하다 빌려 준 책을 찾으려 갔더니 엽집 식당에서 엉덩이만 가린 옷에 꽁지를 달고 망사 양말로, 머리에는 토끼 귀를 달고 술을 나르고 있었다. 너무 놀라 책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후 공항에서 만났는데, 뱃꼽이 나온 옷을 입고 라스배가스로 라인댄서로 간다고 했다. 후에 들은 말, 그곳에서는 마약들을 한다고 했다.
나의 약혼자는 .6'25 동란 때 영어 사전 한 권을 다 외웠다던, 영어도 영국식으로 발음하며 미 군 병사들의 목숨이 그에게 달렸었다던 법정 통역관으로 맺은, 어느 미병사의 아버지의 지사를.. 사업을 시작, 반도호텔에 제약회사를 갖고 운전도 본인이 직접하며, 우리 학우들을 '아사원' 이라는 중국집또는 '이학' 이라는 일본 식당에서 저녁을 종 종 사주어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 유럽을 자주 오고 가던 그는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 가면 나 같은 귀부인을 볼 수 없다며 그곳에 꼭 같이 가고 싶다고 , 내가 미국에 가 있어야 같이 갈 수 있어 미국 유학을 권했다. 둘이 함께 반도호텔 앞을 걸어가면 모르던 사람들도 다가와 " 아름다운 한 쌍이다..." 등, 6 개월 후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오기로 된 약혼자 청년실업가다. 내 동생이 부산에 친구들과 여행을 하러 탄 비행기에서 만난 그 청년이 "부산에 공장 부지를 사러 간다" 했단다. .. 6 개월 있다 온다던 사람.. 사연을 들어도 보지도 않고. 애들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 6개월, 기다려 보지도 않고..." 하며 고통끝에 그만 젊은 나이에..그의 하와이 지점을 맡고 있던 지점장의 아내였던 나의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만 큰 죄인이 되고 말았다. 당시 남편은 U.C. Berkeley 음대 교수로 와 계시던 누님 덕에 시민권 신청을 하게 되, 나도 얻어 주려고 결혼을 서둘러.. 큰딸이 한 살인데도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녀의 어머니, 학교 이사장, 그녀의 아버지도 미국까지 와서 " 자기 뒤를 이어 학교를 맡기로 약속하고 뭐하는 짓이냐, 자기 딸은 소아과 의사니 애는 더 잘 키울터이니 애를 데리고 가자" 는등.. 그녀의 한 번 실수로 ..결국 그녀는 그 차문을 열어 주던 철학박사와 결혼 했으나 일직 세상을 떠났다.
당시 맨 손으로 유학 온 이화여대생인 나의 Roommate 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차로 태워다 주던 내가 천사로 보였다고 한다. "저 여인을 죽기 살기 내 아내로" 결혼 후 들은 말이다. 60여년 애들 아버지는 나의 마음 속에 핀 꽃으로 < 잉꼬 부부> 라는 이름으로 94 세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 행복했다. 고맙다" 미소로 아내 자랑만 하다 많은 기적속에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처방 약도 없이 주치의도 없이 하나님만 잘 섬기며 건강히 살다 코로나 ' 방콕' 덕분에 운전을 못하게 하니..
" 다시만나자" 며 천사와 함께 무지개타고... 아직도 나의 Roommate 였던 그녀는 " 우리 아름다운 유일 무일한 어데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언니 " 라는 카드를 명필로 몇십년이 지난 오늘까지..허나 존경스러운 여인은 그동생이다. 8남매를 다 대려다 공부시키고 결혼 시킨 여인이다. 그녀의 오빠가 보내 준 " 박복수여사님은 우리의 구세주 이십니다." 라는 편지가 아직도 .. 그 동생에게 일년 전 에도 내가 결혼했을때 어머니가 배편으로 보내주신 자개장 세트 어른 옷장, 아기 옷장, 문갑, 대형 경대 등, ( 내 동생이 8천불 주고 마사지의자를 또 사보냬서 ) 먼저 사준 5천불 준 마사자 의자랑, . 항상 내 자개장들을 부러워 해 내가 더 늙기 전에 다 주었다. 남편이 처음 사준 보석 귀걸이도 어머니가 두고 가신 루비반지도 그녀에게 주었었다. 아버지가 북경에서 사다 어머니께 드린 대형 보석들이달린 비취 반지는 교회건물 구입에 .. 그후 선교지로 떠나던 젊은 사모님에게등, 세번이나 손에 낀 보석 칵텔 반지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 받아 한 평생 주는 행복으로 살아왔다. 언제나 모임이나 교회에 갈 때 두 서너 사람에게 줄 가죽 옷이고 아무리 비싼 옷도 아낌 없이 ... 또는 어디나 50명 정도의 모임엔 고기 만두나 과일이든 떡이든 항상 남편이 실어다 주었다. 방송인협회 이사회 때 마다, 남편은 항상,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기 아내가 고문이니까..하며 식비를... 많은 분들의 감사한다는 사랑을 많이 받아 행복했다. 문협 사무실을 얻었을 때도 우리 내외는 후래임들을 사다 장식도 하며 최선을 다 했다. 여북하면 문인귀 고문님은 우리 부부에게 " 두 분은 물심양면으로 우리 문협을 위해...". 라는 '감사장' 을 주셨다.
한인타운에 '달마사' '수도사' 를 세우신 어머니는 달마사 회장으로 15년을 섬기시며 아침마다 각 나라에서 큰 스님들의 문안을 받으시던 분이다. 항상 겸손이 주머니 여는 일에만 앞장서시고 특석은 항상 사양하시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시던분, 우리들의 기도로 명예권사로 주름도 하나 없이 고운 얼굴로 천국에 가시던 날, 동생이 울음이 터지며 천장을 올려다 보니 양쪽에 아기 천사 둘이 웃으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 후 그 동생은 교회를 세우고 배를 사서 선원들 전도사역등 아직도 열심히 사역자들을 돌보며 무슨 일이 있을때 마다 젊은 교역자 내외분이 달려온다.
1978 년 미주 중앙일보 주최: '현부인대회' 에서 어머니가 '열녀 상' 을 받으셨을 때다. 사회자는 방송 후배였고 나와서 축사를 하라 해서 갑자기 -어머니 우리 어머니 - ' " 한 떨기 수선화, 아름다우시어라..어느 백조보다 우아하시어라...." 낭송... 당시 한국에서 많이 유행하던 노래를 작곡하신 김학송 작곡가 님이 700 여명 관중속에 계시다가 "이북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나게 해 눈물을 쏟게했다"며 작곡을 해 주셔서 T.V. 와 한국일보에서 우리 가족과 작곡가님과 인터뷰등...
한국문단에 등단 하기 전, 많은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 음악가협회의 '창작의 밤' 에 수차 나 의 시가 작곡되어 발표할 기회가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내려 주신 특별한 사랑이었다.
(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 2001 년) The Korean American / Who's Who / Celebrating The 100th
Anniversary of Immigration to America (자랑스러운 인물역사 , 업적을 이룬 명사들) Proud People
History. Celebrities with Achievements/ (한인이민사 사회를 개척하고 두각을 나타낸 인물 주류 롤.모델들 584명을 선발, ) The Korean -American Population Exceeded 500.000...584 of them were selected ( 한인 커뮤니티 초과 인구 500.000 오십만명이 되는 속의 ...)
from among those who pioneered and stood out in the Korean immigrant community ... The main stream 'Role-Models/. Bok Sue Park : The President of the Broadcasting Association / 재미방송인협회 회장, 박복수 .. 학력, 약력, 소개 / 창립20주년 행사.. 사진들.. 협회가 하는 일들 ( 252 쪽에) Photos of the 20th Anniversary Event .. etc..Introducing what the Association is doing// Photos of Awarding
at the contest as a 'Miss Korea ' Judge 's Education and Career Introduction ( Photography) 231 Pg) 라디오 코리아 주최: 박 복수 심사위원이 미스 코리아 당선자에게 시상하는 사진// 등재...
후 고원 교수님의 글마루, 시와 사람들에서 문인귀 선생님, 시문학 , 단국대 세미나를 통해 계속 공부를 했다.
단국대 종강 , '만리장성'에서 지도교수 김수복 총장님의 시 낭송을 부탁하셨다. 김교수님이 내게 오셔서 "죽은 시를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셨다. 박덕규 교수님은 " 그 긴 시를 암송... 감동 할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매일로 격려해 주셨고..'왕 언니의 향기' 라는 수필집에... 김영교 대모님은 " ...열렬한 시 사랑으로 그 긴 시를 암송, 실내를 감동으로 몰아갔다. 모든 분들의 천사 같은 격려들은 나의 삶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딸들이 어린 시절, 그림이 당선, 시청에 전시도 되고 해 더 그림 공부를 시키려고 갔던 화가협회 회장으로 섬기며 5년간 전시회 때 마다 한국일보에서 -<여류화가의 단상> 이라는 수필과 나의 그림을 매년 ... 당시 권사회 회장으로 섬기던 교회 '월간지' < 오직 예수> 에 매달 수필을... 방송인 협회 회장으로 섬길 때는 라디오 코리아 도산 홀에서 창립 20주년 행사 프로그램에 올린 졸시들과 수필을 젊은 아나운서들이 하두 아름답게 낭독을 한 덕분에 .. 방송작가 후배 인 소설가와 시인협회회장이었던 김문희시인, 미주문협 오문강 회장님등, 한국 문단에 등단을 권해..마침 방송위원으로 내가 일하던 기독교방송국 사무실을 빌려 쓰시던 - 글마루- 전 미주문협 회장인, 김동찬 시인님이 총무일을 맡으셨을 때다. 고 고원 교수님 에게 1년 더 공부하고 2000년 -수필과 비평-으로 <행과 불행> 수필 등단.. 2001년 -문예운동-으로 시 '<피렌체 광장의 피에로> 로 등단, 시와 수필 한'영 문학집, 출판으로 청하문학상 한;영 시집은 '오늘의 시인상' 서울 문학과 문화원 공동 주최로 외.. 한국일보의 정숙희 기자님은 < 다재 다능한 칠순의 문학 소녀 > 라는 등단을 알린 대형 사진과 마침, 미주 예술총연합회 와 총영사 님으로부터 '공로상' 들을 받았다는 기사와, 불란서 <르'살론> 세계화가전에서 '동상'을 받았다는 등, 또 이 정인 기자님의 < 우리는 아직도 신혼> 이라는 우리내외 결혼 25주년 기념 사진인 쿠르즈 <결혼 갱신서약> 에서 찍은 대형사진과 과찬의 기사를. 그 외에도 우리 부부기사가... 또 80생일 < 감사음악회> 기사들을 3번이나 내 주신 지급은 중앙일보 에서 사회부 부장인 김형제 기자님 들의 은혜는 구순이 넘고 넘은 오늘까지 항상 감사한 마음 어찌 갚고 이땅을 떠나야 할지 .. 하늘이 크신 사랑으로 가득히 축복해 주시길 빌뿐이다.
나의 문학 생활에서 또 하나 하나님이 주신 기적들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이 팔순에 나의 시들을 남가주 음악가협회 회장 테너 교수님들과 듀엣으로 직접 본인이 부른 음악회 .. 그 외 고명한 오패라 가수님들과 성대히 음악회를 ... 전에도 후에도 이런 음악회는 없을 거라는 기사들, 방송들, 신문에 나간 나의 졸시들을 작곡, 한국에서 첫째로 손 꼽히던 고 권길상 원로 작곡가님이 당신 전집에 ...소식을 듣고 사례금을 드리려 갔더니 오히려 저에게 주셔야한다 거절.. 하늘에는 하나님께 땅에는 작곡가님께 감사음악회로 보답을 했다. 미주문인협회와 국제 팬 미주지회, 한미문학 진흥 재단으로 부터 공로상들도 주시어 너무 감사한 음악회였다.
나이 팔순 생일, 결혼 50 주년, 오늘의 시인상 을 기념 한 한'영시집 < 사랑, 금혼의 노래> 출판 등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회..신문, 방송 듣고 오신 분들이 300 권 책을 다 가지고들 가셔서 그날 오신 300여명 중 거이 책을 받은 분이 없었다. 공연 후 쏟아 져 온 과찬의 격려의 이메일 들.. 신문기사등.. 나이 80에 할매가 소프라노로, 본인의 시들을 고명한 작곡가가 작곡 , 직접 부른 음악회는 ..그런 시인은 세계 어느 곳에도 아직은 못 보았다고들 하셨다. 작곡가님은 자기평생 50여년 동안 음악계에서 이런 음악회는 전에도 후에도 없을 거라 하시며 기뻐하셨다.
오직 하늘이 내리신 기적이라 믿는다. 각 음악원 원장님들, 지휘자님들 25명이 합주자로 ..저명한 피아노 반주자 4분이.. 방송국마다 대표 아나운서님들은 사회로 시 낭송을.. 사진작가협회 회원들은 Video를.. 서예가들은 이 할매의 졸시를 써서 전시.. 우리 집에서 10여년간 매주 성경 공부하던 경기여고 동창들과 대학 후배들은 출연자들에게 줄 꽃다발들을.. 우리가 돕던 작은 두 교회 교우님들은 음식 준비를.. ''한국의날' 행사마다 출연하는 고명한 무용가협회 유수경, 유희자 원장님들은 제자들을 데리고 와 무용과 가야금 연주등..
"나를 지으신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이도 하나님,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 은혜라,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 나를 붇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소프라노 이귀임 교수님과나와 듀엣으로 부른 찬송가다.
윤동주 선양회 암송대회 때 마다 대상을 타던 나를 항상 과찬으로 격려하시던 신문의 칼럼이스트로 활약하시던 김준자교수님은 " 한인사회 추축이 된 29명의 롤.모델 들의 에세이집" 과 다음 해 또 "조국을 가슴에 담고 한국을 빛낸 영웅들의 이야기". < 한인보> '방송인, 재미시인 박복수' 라 게재. 방송으로도 소개...
<국제 팬> 한국본부에서는 < 세계한글작가대회 기념 한'영 애세집 " 에 두 번을 ." 이사장님, 편집국장님의 " 훌륭하십니다. " 라는 격려의 이-매일등, . 책을 받고 놀라운 일은 몇 천명 작가들이 세계 곳 곳에서 보내 온 글 속에서 오직 147명만 ... 세번째 원고한 청탁은 기한이 지나서 열어보고 불참 ...한국일보 창간 축시 46주년 < 절륜의 징검 돌> 51년 < 세기의 금자탑 > 53년 등 세번이나 원고 청탁을.. 내 나이 90인 지난 해 2022년 , 창간 53주년 축시도 < 한 민족의 영원한 길잡이> 등 이외에 방송인협회 축시들, 월간지 <코리안 뉴스> 창간 축시등, 많은 하늘이 내려주신 큰 기적들 , 사랑의 빚을 어찌 다 갚 아야 한단 말인가 ?
지난 토요일 5월 27일 2023년, 내 나이 92세를 바라보며 .. 한인 사회에 유일한 '피오 피코 도서관' 개관 45 주년 축하 행사에 축시와 낭송 청탁이..시만 다음 날, 써서 보내고 고령에 하루에 다 외울 수 없을 것 같아 암송은 사양했다. 허나 애기같이 졸라 이길 수 없어 나갔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존경합니다, 감동했어요, 멋집니다. " 하며 시를 좋아들 하시며 과찬으로 격려 해 주시어 너무 행복했다. 더구나 나간 김에 가까이에 있었던 미주 문협, '다카시 전시회' 에 들려 내 작품 들 앞에서 사진 한장...하고 들렸다 많은 분들의 환대로 너무 감사했다. 어느 원로 목사님 내외는 출판 하신 책을 영문으로등 이 것 저것 세권이나 주시며 " 양노병원에 가 있을 나이에, 주름하나 없이.. 'Amazing! " 하시고 그 부인은 딸이 어머니 날 사준 길게 늘어진 나의 귀걸이를.. 내 머리를 만져 보시며..." 놀랍습니다!" 만 연발..
너무 시간이 없어 수고한 분들, 고마운 분들을 저녁 식사 대접을 못하고 급히 돌아와야 해 마음이 아프다. 결혼 후는 남편 머리 이발도 내 손으로 60년을.. 미장원 한번 가지 않는 알뜰 주부로..책출판에 돈을 낭비하지 않고 어린 애들을 데리고 낯선 땅으로 떠나는 교역자들을 아낌 없이 응원..내 손에 낀 반지도 빼서 사역을 돕는 사모님들 손에 아낌없이..백화점엔 목사님들 양복을 사러 가도 나를 위해 서는 가지 않았다. 많은 분들을 최선을 다 해 열심히 섬겨왔다고 믿는다. 보석 귀거리, 루비 반지, 보석반지등, 아버지가 북경에서 사다 드린 어머니 고가의 반지는 교회 건물 사는데 받혔다. 해마다 생일과 결혼 기념일 마다 동생들 사위들이 보내 준 크루즈를 가면 마지막날 모든 상품은 세일을 해 팔목 시계등 몽땅 사가지고 와 많은 문인들, 특히 우선 교회 교역자들 16명을 먼저 섬겼다.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화환으로 출판, 생일, 환영 축하 아니면 장례 위로등..생에 나 만큼 꽃을 많이 보낸 사람은 없을것같다는 꽃집 주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강풍에도 쓸어지지 않은 대 나무 처럼 속을 비워 그저 감사 만이 넘치는 후회 한점 없는 삶으로 더욱 배풀며 많은 분들이 나로 인해 행복 하시 도록, 더욱 노력하여 만 만분의 일이라도 하늘이 내려주신 은혜를 갚고 싶다. 이세상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기에.." 거저 받은 것 거저 주는 삶.. " 성경 말씀대로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것 만이 이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그리하여 우리 부모님의 본을 받아 베푸는 삶으로 감사가 넘쳐, 가는 날까지 건강히 여생을 보내고 싶다.
우리 모두 화이팅 하세요 !
- 오! 내 이름도 - 박복수
늦은 가을 태평양 바다
희게 부서 지는 달빛
함께 어울려 선실을 기웃 거린다
나는 보았다 은빛 타고
닥아 오는 한 날개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었을 쓰고 계세요?
그 분을 사랑 하는 이들의 이름이요
그럼 내 이름도 있나요?
아니요
일렁이는 은빛 파도를 타고 사라졌다
무거운 하루를 보낸 다음 날
그는 환한 빛을 띠며
다시 나타나 근심에 잠긴 나에게
하나님이 축복한 이름들을 보여 주었다
오! 내 이름도 있다!
..................
- 빗물 삼킨 지중해 - 박 복 수
맑은 하루
갑자기 검은 구름 밀려
소낙비 쏟아 놓은다.
바다 위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지난 밤 흘린 별들의 눈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지중해 한 복판
낮 익은 흔적을 지워가며
무수한 이름들이 물결 되어
어디론가 숨 가쁘게 가고 있다.
나를 비켜가는 이름들이
바다에 잠기는 빗물인 듯
나는 속절 없음을 보았다
참으로 지나간 것들은
되 돌릴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고 아름다워
나는 기꺼이 빗물 삼킨
파도 되어
만나도 만나도
그리워 지는 친구로
오래 오래 남고 싶다
사랑에 빚진자 박 복 수 큰절. ~ 05- 30-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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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lebrating the 45th Anniversary of Pio-Pico Library -
개관 45주년을 축하 하며... 5월 27일 2023년
박 복수 ( 방송인협회 고문)
- 한 민족의 금자탑 -
메아리 치는 희망
새날의 다짐 앞에 피어난
한인사회 문화, 교육, 민족 사랑
망 망 대해 미국 땅에 닻을 내려
땀으로 견뎌 온 당신네 이마
길이 후세에 전하여질 업적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집념
밝아 오는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정열
생동하는 맥박, 살아 숨쉬는
한 민족의 금자 탑
기쁘고 해 맑은 깃발 세워
불굴의 의지로
살아 있음을 제 조명하는 오늘
당신들의 꿈은 아름다운 향기로
영원 무궁, 환희의 깃발로
승리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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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umental Tower of the Korean Nation -
Echoing hope
Blooming in front of the promise of a new day
Korean community culture, education, Nation love
Anchor on American soil, accross the sea
Your forehead endured with sweat
The road of forty- five hills, built with tears
Achievements that will be handed down to future generations
Tenacity. to love our nation
Towards a brighter tomorrow
Running passion lively pulse
Monumental Tower of alive and breathing Korean Nation
Happy and raise a clear flag,
with indomitable will
Be the light of our lives forever
The light shine again that we are alive today
Your dream will become a beautiful scent
Win with the flag of eternal joy, forever and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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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내 뿜는 황혼의 정거장 - 박 복 수
하룻 날도 님 없이는 한 해같이 길고 길어
찬 가슴 언저리 보고지고 천길 물속으로
삭막한 밤바람 세월을 끌고 있다
삶의 연륜, 구십고개, 또 하나 넘어 선
인생 역정, 한 시대 돌아 간 내 사랑,
서로 악기들을 등에 지고 함께 달리던 길
국제전시회 위한 열 두 해를 사진기 든 산과 바다
이 고개 저 고개, 오늘은 홀로 넘는 아픔
비단 길 놓은 여생의 생명
고운 세상 보는 안경 하나 얻으면
인간애로 넘실데는 사랑의 호수
분홍 빛 무지개로 가슴의 분화는
아름다운 극치, 영원한 광채로 눈 부시네
서산 넘어 산자락, 수련한 이 봄
열매들은 알맞게 익었네
뒷모습 부끄럽지 않은 생애
하늘 우러러 감사만이 넘치는
향내 뿜는 황혼 천리 길 정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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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연가 - 박 복 수
하나밖에 없던 나의 화살을
파란 하늘 저 편에 쏘아 올렸지요
나를 떠난 화살의
그 낙하 지점을 나는 몰랐지요
빠른 화살의 속도를 쫓기 엔
내 열망은 앞서지 못했고
나의 눈길은 따라 잡을 수 없었어요.
하늘가 향해 날려보낸
하나 밖에 없던 나의 노래 한 곡
메아리 되어 돌아 온 상념
누가 그 노래의 높이 뛰어 오름을
따를 만큼, 예리하고
뛰어난 집착으로 앞서 갈 수 있었을까
오랜 훗날 망구 되어 참 나무에 박힌
아직도 끊어지지 않은 화살을
나는 보았지요
그 노래 또한 처음 부터 끝까지
백발 그대 마음속에 꽃혀있었음을
구십 두 고개를 바라보며 나는 알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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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꽃잎 이어라 - 박 복 수
꽃잎들이 속삭입니다.
형제여 자매여 하며
정답게 손을 잡아 주고
노닐고 있습니다
흠 많은 얼룩 나방인 저에게
이토록 고운 꽃들로
꽃꽂이를 시키시는 주님
기쁨을 한 아름 담아
꽃잎 속에
향기 되어 닥아 오셔서
다정한 노래도 들려 주시고
단단한 언약의
미소를 띠우신 주님
꽃잎들이 방끗거리면
저의 부족했던 사랑은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 두 손 사이로
꼭 꼭 숨어 버렸지요
그러나 저는 무척 행복했어요
꽃잎 사이로 더욱 커가는
우리의 사랑이 보였기에...
[ 5월의 맑은 날, 잔 잔한 호수를 내려다 보며
꽃꽂이 봉사를 권사회 회장 은퇴하고도 7년을 더 해
34년의 봉사를 마치던 날 ..엘씨노어 기도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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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한 조각 구름인 것을 - 박 복 수
한 점 구름 처럼 떴다가
어느 사이 비 바람 처럼 사라져 가는
우리의 삶 , 만남과 헤어집의 연속인 것을
어제도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임을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때론 자학하고 때론 애무하며
그렇게 하루 하루
생을 이어가고 있는
한점 구름인 것을
전설처럼 붇잡고 영원처럼 간직할
천하국보 같은 시인의 유한 세월
무상한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시간과 낭만을 쫓아 유랑하는
순백 시인의 구름과 바람
저 구름 저 바람 잠시 내 곁에
머물다 가는
하나도 내 것이 아닌 유구한 공백
어제도 오늘도 내일 마저
노상 그리 왔다 가는 것을
권태의 늪에서 들 볶이며 해매이다
멋 없이 떠 가는 한 점 구름인것을
음악의 한 음절 되어, 고맙게 주어진 오늘
이 노망구 귀하게 비파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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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밤의 낭만 - 박 복 수
모닥불 벌겋게 물든
그녀의 하얀 기타는
달콤한 노래 날개 위에
우리 모두를 올려 놓고
하모니를 이루던 밤
밤 새들도 덩달아 노래 하고
별을 향해 춤추 던 신록의 숲
우리들의 웃음 소리
멀리 메아리로 울리던
여름 밤의 낭만이여
고된 삶 잠시 접고
땀내, 사랑내, 사람 내
물씬 묻어 나던 마음의 불꽃
정답게 잡아 보던 손과 손
나무도 바람도 노래 하던 밤
행복이 작열하는 정열
하염없이 즐거운 노래로
꺼지지 않을 추억의 불을
피우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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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매인 곳 없이 흐르는 구름 - 박 복 수
하와이 바닷가, 억매인 곳 없이 흐르는 구름
손 잡고 걸으며부르던. '토셀리의 세레나데'
온 갓 사념들이 흘러 드는 길
계절의 문턱에서 가슴 풀어
그리운 이름 불러 본다
달밤에 곤돌라의 객이 되어
아내를 품에 안고 불러 주던
'오 솔레미오' 나폴리 항구, 이태리
주민들의 정겨운 환호 소리 Bravo!!
바람에 실리어 지나가듯 지나
돌아 오지 않는 강물 되어
하루 하루 흘러 가는 길
이별은 가슴에 응혈로 남아
다시만날 날을 빛으로 피우며
바람은 천상의 하모니로 위로하네
살 같은 세월 휘청이며
황혼의 시간 타고 흘러만 가네
마음 속의 봄은 찬바람만 불고
별이되어 찾아 온 님, 나만 바라 보던 밤,
나폴리 달빛에 흠뻑 젖은 이 가슴
내 사랑의 몸부림 인가요
손잡고 걸어 보는 바람속의 모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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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ouds flowing without restraint -
By: Boksue Park
Hawaii beach, clouds flowing without restraint
'Toselli's Serenade' that we sang as we walked hand in hand
The way thoughts flow, At the threshold of season
I open my heart and call out the name I long for
Become a guest of Gondora on a moonlight night
He sang with his wife in his arms
'Oh sole mio ' Port of Naples, Italy
The cheers of the residents , "Bravo!!"
Carried by the wind , it passes like clouds passing by
Become a river that never return
the way it goes day by day
Farewell remains as a blood clot in the chest
Let the like day we meet again bloom with light
The wind comforts with the harmony of heavenly songs
Years like flesh are staggering
The time of twilight rides and flows
The spring in my heart only blows cold wind
The night he looked at me, Who became a star
This chest drenched in the moonlight of Naples
Is it the struggle of my love
Walking hand in hand on a sandy road in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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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미주 문단을 섬긴지도 22 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는데 .. ... 얼룩 나방이 보기에는 난쟁이 키 재우기 같은데... 시하나 제대로 못 써도 인맥이 있는 사람들은 상을...
- 우리 모두 낙타 되어 - 박복수
탯줄 끊어지는 흐느적 한 고요
끊임 없이 펼쳐진 황막한 모래 벌판
풀도 마르고 선인장 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도 숨 죽은 종말의 늪
천지 개벽 부터 누 누 억만년
불 박이 별처럼 한 치도 요동 치 않은
인류문명사
지구는 지금 명맥을 다 한 것일까
새로운 세상, 멸할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리라
코로나 투망 속에 갇힌 6대주 5대양
어디 한군데 상한데 없이
보이지 않는 모래바람 끝없이 휘몰아쳐
피를 말리고 살을 깍아내도
죽음의 사막을 건널 수 있는 낙타
나침반 없는 캄캄한 밤하늘
빛과 어둠은 함께 있는 거
줄행랑 치는 코로나 말로
보고야 말지
모래 바람으로 사라질 검은 구름
사막의 낙타 되어 깊은 발자국 남기며
어둠의 장막 헤쳐 몰아내며
오늘도 간다 북극성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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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도 목욕하는 엘시노어 호수- 박 복 수
물먹은 저녁노울 하도 고와
날마다 내려와 목욕하는 삶
엘시노어 호수에 빠져
달과 함께 두둥실 젖어 있네
예수님 거닐 던 갈릴리 호수
하늘 빛 닮은 영혼의 꽃들
파아랗게 피어나네
달빛은 산허리 따라 쫓아 오는데
죽은 듯, 호수에 누어 있는 산
예수의 깊은 눈빛 속엔
밤 산이 누어 신음하고 있네
새벽 동틀 무렵
날개 달은 봉우리
세마포 안개 벗어 놓고
너도 나도 새로 태어나네
(엘시노어 기도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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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 박 복 수
저녁이 내리는 나폴리 항구
도시의 불빛, 하나 둘, 눈 눈이 깨어 나는데
그분을 향한 내 가슴도
깊어가는 어둠속에 타 오른다
질주하는 차들의 불빛은
가로등과 어울려
영롱하게 꼬리를 이어가며
살아 있음을 자랑한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듯
저 깊은 바다의 어둠을
환히 비추어 준 따스한 누군가가
조용히 내 볼에 입을 마춘다
정다운 속삭임이 오고갔다
그분을 담고 있는 공간 전채를
흡수 하려는 숨 막히는 시간은 지나가고
불멸의 한 가운데서
나를 이끌고 있는 그분의
높은 위상에 나는 머리 조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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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로 핀 꽃송이 - 박 복 수
가득 고인 동공 속에
허무가 검은 별로 뜬다
내부의 탑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웃음을 채워야 했나
참회를 상징하는 눈물은
슬픔, 고통 시련이지만 한편 인간에게
진실에 이르게 하는 촉매채가 되어
영혼의 정화를, 눈물은 선하고 맑고 아름다워
생의 찌꺼기 말끔히 씻어내고
위선까지 닥아내는 눈물 샘
누구에게나 보이지 못하는 애상,
한 줄기 시원히 흘러
진실의 빗줄기 하나 쏟아져
꽃 처럼 아름다운 눈물로
잠겨 있던 매듭이 꿈으로 풀린다
눈물보다 더 맑은 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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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충고- 박복수
바람은 소리친다
삶은 네일을 사는 거라고
시기와 미움의 화살이
너를 향해 날아와도
노하지 말라고
노여움과 미움은
무서운 독소만을
몸 속에 풀어 놓고
모든 것은 수난적
시간은 그들을 싣고
떠나기 마련
참음은 값진 것이라고
귓전을 치며 지나간다
슬픔이 파도 처럼 넘실데도
위에는 부신 햇살
그 손은 너를 잡고
평온의 길로
이끌어 준다고
바람은 이 아침에도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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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길에서 - 박 복 수
발을 먼추게 하네, 눈길 빼았은 곳
닥아 간 한 석고상
나의 님에게 눈짓 주네, 셨터 눌으라고
내 몸을 휘감는 그 손길 따뜻하나
옷과 옷 사이 싸늘한 공기 내 피부 적시네
이 목구비 수려한 그녀, 회칠 된 살갖 속
무거운 흰 옷자락, 배인 찌든 냄새
나그네 코를 찌르네
돌이 된 육신의 사연들,
하나의 절규로 매아리 치고
핏발 솟은 눈 동자 빈 주머니 재촉하네
공평치 못한 세상 고발하네
보이지 않은 삶, 그렇게도 무거운 것일까
아~ 사람들, 흰 돌 되어 다가오고
당황한 빈 주머니, 내 귀 열기 토하게하네
동전 몇입이 때린 빈 깡통소리
너무 부끄러워.....
[ Florence Sigroria Plaza Della애서]
.......................................
[[인생의 황혼의 언덕에서]
- 태평양 바다 위에 별들 - 박 복 수
캄캄한 바다 위로
별들은
심중에 끝없이 타오르던
의문을 향해
소리치며 쏟아져 내린다.
모든 시가 다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모든 시인이 깨끗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마음 엔 시의 양심이
아쉬운 신혈로 몸살이 나고
시 같이 아름답지도 못한 내 마음
밭은 기침으로
환부를 달래고 있다.
아~ 시는 별같이 존재하는 것
이것은 온통
살아 숨쉬는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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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돌아 보니 너무 부끄러워 떠날 날이 가까워지니 ...이대로 눈을 감을 수 있을까 해서 문학 소녀 시절과 더부러 뒤 돌아 보며 내가 좋하는 선배님들. 문우님들께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떠나지 않는 먹 구름....
멸시 천대 받고 떠날 준비를 하며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말아야지 하며 이 아픈 가슴을 호소합니다.
넉넉한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읽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래오래 건필하시며 미주문단의 길잡이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