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2018.08.22 06:19

김세명 조회 수:8

어르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정부는 '노인'을 '어르신'이란 호칭으로 바꾸었다. 어르신은 원래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로 춘부장이라고도 한다. 같은 말로 노인, 늙은이, 고령자, 시니어, 실버라고도 하나, 어르신이 무난할 것 같다. 시간처럼 공평한 게 없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공짜로 갖게 되며 때가 되면 돌아간다. 역사도 그렇게 흘러갔고 도 결국은 그런 과정으로 끝난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어르신 세대를 살고 있다. 요즘은 왜 시간이 빨리 가는지 한 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 가까워 온다. 중학교 때 기억은 언제 3년이 지나 졸업할까 했는데 요즘은 금방 3년이 지난다. 내가 어렸을 때엔 빨리 커서 어른이 되었으면 했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다. 왜 그럴까?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를 어른이 돼서 가 보면 거리는 옛날에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 보인다. 옛날에는 길이 한없이 길게 보였는데, 지금은 몇 걸음 걷지 않아도 그 거리의 끝이다. 골목길, 학교, 광장, 공원 등 모든 것이 옛날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버린 것 같다. 심지어 교실도 작아 보인다.

 

 세월의 문제는 곧 기억의 문제다.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가 쓴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란 이 물음엔 이미 상식이 된 답이 있다. 사람의 일생 중 어떤 기간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그 사람 인생의 길이와 관련돼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열 살짜리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느끼고, 쉰 살을 먹은 사람은 50분의 1로 느낀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경험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기억할 만한 것도 사라지고, 시간이라는 열차는 기억이라는 정거장을 경유하지 않은 채 마구 달린다. 누구나 자기가 겪은 일들을 실제보다 더 최근의 일로 기억한다. 현재와 가까운 일처럼 인식하는 효과로 인해 시간적인 거리가 축소되고, 따라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 중뇌에 자리한 인체 시계가 느려진다.

 

 어르신으로 노인을 존칭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한국처럼 노인을 공경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박대하는 나라도 드물다. 노인이 박대 받는 세상에선 노인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사회적으로 노인 박대는 자해(自害).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데 노인은 지병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요즘 치매노인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치매는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도 불행해진다. 치매 예방 3.3.3 수칙이 있다. 3권(三勸)은 운동 식사 독서이고, 3금(三禁)은 술 금연 뇌손상 예방이며, 3행(三行)은 건강검진 소통 치매 조기발견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87월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5백16천, 총인구의 10.3%. 2018년에는 14.3%'고령사회', 2026년에는 20.8%가 되어 '초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어르신은 존경의 의미고 꼰대는 노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청소년들이 쓴 은어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걸 비하해서 하는 말이다. 전부터 흔히 써오던 노인네나 꼰대라는 단어는 양호한 축에 든다. 젊은 세대는 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 등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을 연금충(연금 +곤충)’이라고 비하한다. 또 자신의 주장을 펴는 노인을 일컬어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이라고 부르며 한심한 사람취급을 한다. ‘틀딱충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늘어놓는 노인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어르신으로 대우받으려면 어르신다운 처신이 필요하다. 늙고 병들면 추해지는 건 세상 이치니 어쩔 수 없다. 나의 손위 동서는 작고하기 전 방에 면회 사절이라고 써붙이고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세상을 떠나셨다. 끝까지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족에게 당부한 것이다. 그럴진대 젊은이로부터 비하 받는 노인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인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비하 받는 말을 듣지 않는 어르신이 되어 죽는 날까지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다.

                                                          (2018.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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