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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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

2023.02.01 12:53

조형숙 조회 수:31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세요?" 물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웃음소리가 없다. 온기가 없다. 어디일까? 꿈이었다. 손태진의 노래가 끝났다.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꿈을 연장해야했다. 목까지 이불을 덮었다. 눈을 감고 다시 싸락눈을 보려했으나  더 이상 아름다운 순간은 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음 음악회'는 서울대학교 남가주동창회와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이 주최했다. 서울대 재학생을 선발하여 미국방문으로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아 국제적 인재로 육성하는 장학프로그램이다. LA  '이음 음악회'에는 800명의 청중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서울대의 졸업생들 중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들이 무대를 마련했다. 특별히 팬텀싱어의 1회 우승자인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 4명 중 손 태진과 김 현수는 서울대 졸업생으로 한국에서 초청되어 왔다. 팬텀싱어는 아주 좋아하는 음악프로였다. 특히 손태진의 낮은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하여 마음을 다해 듣게된다.  '넬라환타지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 6곡과 앵콜곡 '향수'를 불렀다. 인터넷을 통해서만 듣던 노래를 무대 거의 앞줄에서 듣게 되는 기쁨과 감동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연주가 끝나고 그들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었다. 무대 앞으로 나갔다.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나도 줄을 서있다가 손 태진의 손을 잡고 무대위로 올라갔다. 사진을 몇장 찍었다. 그들은 5년 전 팬텀싱어에서 우승한 후 몇 개의 앨범을 내었고 바쁘게 연주를 하고 다녔지만 미국의 초청은 처음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전날밤 공항에 내려 조금 수척해 보였다. 손을 잡아 끌며 그들의 인사가 기억나서 말했다. "나도 5년을 기다렸어요." "감사합니다."  몇달 전의 일이었다.
 
 '국가가 부른다'라는 음악 프로에 손태진이 등장했다. 엷은 하늘색 수트를 입은 늘씬한 키의 가을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내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차창밖은 어둑해지고 있다. 둘의 시선이 따뜻하다. 함께 있는 것이 황홀하다.  운전하는그의 어깨에 기대어  가만히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본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 자꾸 웃음이 나온다. 이대로 어디든지 갔으면 좋겠다. 
 차에서 내려 손을 잡고 걸었다. 손태진이 내 어깨를 부드럽게 김싸주고 나는 그의 허리를 살짝 감싸고 걸었다. 얼마인지 모르는 시간을 말없이 길을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을 얼른 지나치려고 했을 때 눈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저 사람 좀 봐요. 나쁜 사람 같아요" 우리가 놀라는 순간 주머니의 주인이 눈치를 챘다. 그 남자의 멱살을 잡아 사진을 찍었다. 한쪽 벽에 커다란 카메라가 설치 되어 있었다. 잡았으니 안심이었다. 
빠르게 그자리를 빠져나와 언덕을 올라 사람이 드문 곳까지 갔다.  웃고 있는 둘의 앞에 기막히게 정겨운 장면이 펼쳐져 있다. 숲과 집과 교회의 뾰족한 지붕위로 하얗게 싸락눈이 내리고 있다. 저 언덕 아래까지 질펀하게 펼쳐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 보며 조심스럽게 싸락눈을 밟았다. 다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온기가 전해왔다. "전에 LA음악회에서 사진 찍었던 기억 나세요?" "그럼요. 그 때 내 손을 잡아끌어 무대에서 사진 찍던 일이 아직도 생생한걸요." "정말요?" "그럼요."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 안도감을 주었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낸다든가 응모하는 일은 평생 하지 않았다. 가수나 연예인에게 열광해 본 적도 없다. 열광하는 청중들을 보면 너무 심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음악프로를 보았다. 지금은 조금 변했다. 좋은 것은 좋다고 표현한다. 기회가 있으면 그들과 인사도 한다. 무대로 올라가서 함께 사진을 찍는다. 예전에는 왜그러지 않았을까? 고막도 심장도 사르르 녹이는부드러운 그 목소리로 나의 10월은 충분하다. 기억이 되돌아오고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면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다. 수줍어 박수치지 못하고 가슴만 조렸던 시간들이 이제 내게로 되감겨와 용기를 준다. 보고싶은 사람은 바람으로도 오고 비로도 온다는데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는 꿈으로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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