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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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시집『청담 晴曇』(一潮閣, 1964)


예전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눌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가장의 가슴에도 

그들을 향한 사랑만큼은 밝고 따뜻했다.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길은 언제나 ‘눈과 얼음의 길’이었으며 가팔랐다. ‘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당도한 문간에서 올망졸망한 신발 아홉 켤레를 보며 울컥 자녀들과 가정을 굳게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https://www.youtube.com/embed/DY5h9ILS2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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