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1 16:17

억세게 빡신 새

조회 수 21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억세게 빡신 새 / 성백군
                                                                                              

산기슭 개울가 잡초들 틈에 끼어
고개 숙인 억새꽃 본다
봄 여름이 산자락 지날 때는 거기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이제, 가을이라
제 모습 드러내며 삶을 묵상하는 것일까?
실바람에도 꺼덕꺼덕 생각이 깊다

잘살아보겠다고
바람 따라 흐르다가 물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서
무턱대고 주저앉은 삶
그 자리가 살 곳인지 죽을 곳인지도 모르면서
잡초들 속에 섞여 잡초 잡아먹는 잡것이 되어
억세게 살다 보니 억새라고 불어더란다.
조상님들의 유전자가 붙여준 이름, 억세게 빡신 새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지
맨몸으로 이민 와서 삼십 년 넘게, 계단도 없는 삶
잠시도 쉴 새 없이 언덕을 기어오르다 보니,
자식들 결혼하여 분가하고 손주들 몇 안아보고
이제는 홀가분한 삶, 어느새 훌쩍 커서
머리에 은빛 면류관 서넛 쓰고 주위를 굽어보는데
아직은, 키만 컸지 보면 볼수록 허허로운 세상 벌판
아무도 없고 나만 있다.

억새다
산기슭 돌아가는 저녁 해거름,
가을 노을에 붉게 젖어 하얗게 식어가는 저
백발 머리에 손을 대본다.
드디어 홀씨를 하늘로 날려 보내노니
너 혼자가 아니라고
내년 이맘때는 여럿 생길 것이고
내명년 후에는 억새밭이 될 것이라며
나를 위로해 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44 어머니의 소망 채영선 2017.05.11 223
743 봄 배웅 / 성백군 하늘호수 2022.04.20 223
742 엉뚱한 가족 강민경 2014.11.16 222
741 낯 선 승객 박성춘 2015.06.15 222
740 입춘(立春) 하늘호수 2017.02.15 222
739 들꽃 선생님 하늘호수 2016.09.07 222
738 듣고 보니 갠찮다 강민경 2019.04.10 222
737 정용진 시인의 한시 정용진 2019.05.17 222
736 미리준비하지 않으면 강민경 2016.01.26 221
735 상현달 강민경 2017.11.20 221
734 옥양목과 어머니 / 김 원 각 泌縡 2020.05.09 221
733 밤비 하늘호수 2016.06.10 220
732 금단의 열매 1 유진왕 2021.07.25 220
731 입춘대길(立春大吉) / 성백군 하늘호수 2022.02.08 220
730 노숙자의 봄 바다 강민경 2018.04.11 219
729 고맙다. ‘미쳤다’는 이 말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04.09 219
» 억세게 빡신 새 성백군 2013.11.21 218
727 알러지 박성춘 2015.05.14 218
726 환생 강민경 2015.11.21 218
725 숨쉬는 값-고현혜(Tanya Ko) 오연희 2016.07.08 218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50 Next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