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시 - 꿈꾸는 빈 통 / 김영교 2-2-2017
2017.02.20 07:32
밤마다 꿈꾸는 빈 통/시집
2006.01.31 19:2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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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7.02.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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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oungkyo
2017.02.20 09:40
척척박사님; 보완해주신 지혜, 감사
깡통이 있었군요. 람사르조약이 싫어하는
빈 깡통과 사금파리와 오염된 깨진 빈 병
나의 두뇌가 깡통인가, 꿈에서도 화들짝 놀라 깹니다.
관재구시인을 좋아합니다. 사평역에서 내 흔들리는 사평역에서
Pakarina 음률, 제 정신도 깨끗해 지는듯 정화.
아주 아름답습니다.
동면에서 깨어나도록
활성화를 향해 도와주시는 댓글 가족들
흐믓합니다.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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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7.02.21 09:40
세상 모든 것, 마음 먹기 나름입니다.
고질병에 점하나 찍으면, 고칠병이니,
점 하나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마음 심(心)자에 신념의 막대기를 꽂으면,
반드시 필(必)자가 되구요.
불가능이라는 뜻의 Impossible단어에 점 하나를 찍으면,
I`m possible이 됩니다.
빚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어보면 빛이 되지요.
띄어쓰기 하나로 문맥이 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Dream is nowhere." (꿈은 어느곳에도 없다)가
"Dream is now here." (꿈은 바로 여기에 있다)로 바뀝니다.
거꾸로 써서 달라지는 경우도 있구요.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역경은 경력
내~ 힘들다는 다~들 힘내가 됩니다.
부정적인 것에 긍정의 점을 찍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세상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경기불황도 원망말자구요.
우연한 기적은 바라지도 말것이며,
내가 기적이 되면 되고,
내가 기적을 만들면 됩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고,
방법이 없으면 찾으면 되지요.
세상은 있는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대로 있는 법입니다.
누구에게나 역경과 시련은 있지요. 다 똑 같은 심리적 무게입니다.
그럼에도 뜻하지 않은 눈앞의 시련를
장애로 생각하여 주저앉는 사람이 있고,
눈앞의 시련에서 성공의 악보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바꿀 순 없지만, 생각은 바꿀수 있습니다.
우리, 이 시각부터 긍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바꾸어 살아가심 어떨까요https://youtu.be/HUDpJAiefEY -
Chuck
2017.02.21 11:45
[아, 저詩]황성희 '부부'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어머니의 눈망울 속 가랑잎이 떨어져 내린다 /충돌과 충돌의 포연 속에서 /본능과 본능의 골짜구니 사이에서 /힘겹게 꾸려온 나날의 시간들이 /36.5 말의 체온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무릎을 쳤습니다. 나도 이 TV프로 본 적이 있는데! 그런데 내겐 한 순간의 우스개로 지나간 것이 황성희 시인에게는 저토록 절절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웃음 끝에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 아니 저 미움의 입을 단 지긋지긋한 사랑. 한 칠십년 곰삭은 불화가, 편집될 겨를도 없이 매스컴을 탈 때 거기에 내 사랑의 밑바닥이 보입니다. 평생 듣고서도 듣지못한 잔소리의 그리운 DNA가 시가 되고나서야,
징하게 고막을 칩니다.( 펌 )
https://youtu.be/HLr1yolMMtA
깡통/ 곽재구
아이슬랜드에 가면
일주일에 한 번
TV가 나오지 않는 날 있단다
매주 목요일에는
국민들이 독서와 음악과
야외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국영 TV가 앞장을 서
세심한 문화 정책을 편단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앉은
우리나라 TV에는
이제 갓 열여덟 소녀 가수가
선정적 율동으로 오늘밤을 노래하는데
스포츠 강국 선발 중진국 포스트모더니즘
끝없이 황홀하게 이어지는데
재벌 2세와 유학 나온 패션 디자이너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말 연속극에 넋 팔고 있으면
아아 언젠가 우리는
깡통이 될지도 몰라
함부로 짓밟히고 발길에 채여도
아무 말 못 하고 허공으로 날아가는
주민증 번호와 제조 일자가 나란히 적힌
찌그러진 깡통이 될지도 몰라
살아야 할 시간들 아직 멀리 남았는데
밤하늘 별들 아름답게 빛나는데.
- 시집『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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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이슬란드는 27년 전까지만 해도 국영방송사 하나뿐이었고, 목요일은 방송이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사도 3개로 늘어나 목요일 개점휴업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시의 발표 무렵인 1990년에 이미 그 사정이 바뀐 셈인데, 시인은 그 나라의 ‘세심한 문화정책’을 부럽게 생각하면서 우리의 TV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도 26년 전의 것이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다. TV는 그동안 많이 진화하였으나 아직도 고약한 물건이다. 다채로운 IT기술의 발달로 그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바보상자니 깡통이니 일축하기엔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고 막강하다.
TV는 언제나 가장 많은 여가시간을 우리와 함께한 쾌락의 정원이었다. 날마다 진보하길 원하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편채널까지 가세한 TV는 세상의 부조리를 읽는 유력한 참고서인 동시에 수단이며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양가적 속성을 지닌 채 문화는 박근혜 최순실의 농단에 의해 다시 위기에 처했다. 문화가 삶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란 것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수시로 망각되고, 주변화 되고 도외시되었다. 어떤 문화적 형식과 내용도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문화의 종합선물세트격인 TV와 스마트폰이 저렴하고도 손쉽게 그 갈증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형식은 다양성을 띠지 못하고 하나로 수렴되는 현상을 보인다. 박근혜 정권의 문화융성이란 오로지 그들 지적 수준에 걸맞는 이른바 ‘한류’에 기반을 둔 대중문화에 한정되었다. 그 명분을 내세워 재벌들에 돈을 뜯고 온갖 횡포와 횡령이 저질러졌다. 공연전시문화의 경우 ‘문화가 있는 날’을 지정해 매월 하루 주요 영화․스포츠․공연․미술관․박물관․고궁 등의 관람에 무료 또는 할인의 혜택을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푸는 수월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굳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한 달에 하루 ‘깡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정도인데, 그 시행과정에서 예기지 않았던 많은 부정적인 요소도 노출되었다.
정부의 문화콘텐츠에서 문학과 인문학은 찬밥신세였다. 그들의 관심과 깜냥에 미치지 않아서일지 모르겠다. 사물과 현상을 폭 넓고 깊게 사유하도록 돕는 인문학 관련 프로그램들이 박근혜가 즐겨보는 드라마에 밀려 TV에서 사라져갔다. 여전히 대중들을 단순하게 길들이고 깡통 앞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더구나 이즈음엔 그도 모자라 본인이 직접 개입해 세월호 침몰 당일 무슨 주사를 맞았느니 어디 미용사를 불러들여 머리손질을 했느니 막장 드라마 이상의 스캔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이것은 대중적인 ‘재미’를 위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포기하는 망동으로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이를 어쩌나, '살아야 할 시간들 아직 멀리 남았는데, 밤하늘별들 아름답게 빛나는데' ( 해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