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어간 자리 / 성백군
종일 몸살 앓던 대지(大地)가
서산에 해 떨어지자
신열을 토해내며 기지개를 켭니다
굽은 등이 펴지고 팔다리가 뻗칠 때마다
관절 사이에서 어둠이 기어나와 발바닥을 핥습니다
침묵은 깨어지고
발등으로, 무릎으로, 언어(言語)들이 올라와
귀가 밝아집니다.
한낮의 열기가 밀리는 자리에
밤의 정령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억눌린 육신을 덮어주고
소외된 영혼이 위로를 받습니다
삶이 삶 같지 않더라도
생욕은 영원하고
고난의 앞자리가 아프긴 하지만
끝자리도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고난 속에도 기쁨이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둠이 깊어 갈수록 별들은 밝아지고
별이 똑똑할 때마다 어둠은 어리석어집니다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해 넘어간 자리에는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어있는
참 편안한 행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