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의 달’을 생각 한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이른바 '문화융성'을 천명하고 '문화가 있는 날'을 정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의 주체가 되는 시대’를 슬로간으로 정한 바 있었다. 즉 ‘문화융성-국민체감의 시작’을 주제로 삼아 국민 문화체감 확대, 인문·전통의 재발견, 문화기반 핵심 서비스산업 육성, 문화가치의 확산 등 네 가지를 정책 기조로 제시한 것이다. 이 정책은 선진국의 정책 우선순위가 국민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 영역으로 옮겨가는 추세에 비춰 볼 때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에 관련된 설문 결과를 보니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국민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가 않아 좀 씁쓸한 느낌이었다. 얘긴즉, 근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융성'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20.1%,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는 응답자는 19%에 그쳤다는 것. 결국 ‘문화’에 관심 있는 국민은 40% 남짓 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국민 전체의 문화능력 제고에 정부가 눈을 뜬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장기적으로 자생적 문화융성의 토양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문화 향유의 공간을 넓히고 생산 기회를 민주화하는 건 ‘문화대국’으로 가는 핵심적 정책이다. 문화 영향평가 및 협업의 강화와 문화산업 네트워크 구축은과거의 획일적인 문화전시산업 대신 지역의 전통과 역사와 환경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이것이야말로 다양성이 숨 쉬는 문화국가를 도모하는 길이다.
이에 대해 김광억 (서울대/인류학) 교수는 “문화개념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생활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체계로서 그것의 주체가 무엇보다 국민이란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책의 바탕으로 인문정신과 가치의 진흥을 강조한 것은 인문가치가 예술의 ‘내용’을 채워주고, 또 예술이 정신문화를 아름다운 ‘형식’으로 실천토록 하는 선 순환적 상호작용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표현과 구성의 수단으로서 과학기술이 매개가 된다면 문화는 전혀 새로운 의미와 감동과 아름다움을 창출할 수 있다는 지론이었다.
이어 김교수는 이전에는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하고 둘 사이를 시장논리로만 인식했지만, 이제는 생활 속의 문화를 확산하고 지역문화의 특성과 자생력을 조성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이 문화의 생산자 겸 유통자, 향유자가 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융성의 핵심적 자산으로서 강조된 인문가치와 정신문화는 우리 전통문화의 재인식은 물론 통일과 다민족사회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연결되어 평화와 화해, 그리고 배려의 철학이 깔린 미래지향적 문화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
문화일(文化日)? 사실 좀 웃기는 말이지만, 그래도 정부가 국민들에게 '한 달에 한 번 평일에 일찍 퇴근해서 문화생활을 하라'고 권유(?)한 날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문화일'을 확실히 체감하도록 하고 싶다면, 이런 식으로 '한 달에 한 번 평일에 일찍 퇴근해서 문화생활을 하라'고 권유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냥 주말에 한 번이라도 날을 정해 가족과 함께 영화관이나 공연장, 미술관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그리고 정해진 '문화일'에는 최소한 국.공립 시설만이라도 확실하게 반값 정도로 할인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면 사람들은 가지 말래도 간다. 그러면 국민의 공감 지수도 또한 훨씬 올라갈 것이다.
10월은 ‘문화의 달’이라 한다. 이에 발맞추듯 우리나라 각 지방정부와 여러 지역의 많은 문화 단체들이 기획하는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줄을 이어 주민들이 아주 즐겁다고 한다. 공연에 참석한 많은 주민들은 한 유명가수 초청에 수만 원 이상 씩의 표 값 내고 구경 가기보다는 이러한 지역 행사가 충분히 즐겁다고 한다.
사실 우리에게 의식주 상의 모든 생활은 그와 관련되는 거리와 동네 모두가 문화 실천의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예술작품, 체육시설, 박물관, 도서관 건물 등이 공원 녹지와 어울려 있어야 하며, 공기 · 물 · 바람 · 냄새 · 색깔 · 소리 · 공간 · 장소 · 풍경 등등 모든 것이 하나의 체계를 이뤄 독특한 감정과 미적 흥취와 의미를 주는 문화경관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거기에 아울러 함께 사는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이 스스로 품격을 갖추도록 만들어주면, 그야말로 누구나 품위 있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웰빙이 뭐 별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