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소리/강민경
산책길 비 피하려고
뉘 집 처마 밑에 들어
발밑을 살피는데
열매 몇 알 떨어져 있다
단내를 따라 줄을 잇는 개미떼
민감한 후각 앞세운 주인 행세라니
먹음직스런 열매를 열어
달콤한 맛에 푹 빠진 잔치
지척에 있는 나에겐 관심도 없다
열매에 살 올려놓고 떠나는
가을비의 배려였을까
저 때문에 굶주릴지도 모를
새와 개미를 걱정한 걸까
하나같이 빨갛고 노랗게 잘 익은 것들이다
꽃술을 털어내며 커지는 오진 열매를 보면서
오지고 기뻤던 기억의 한편은
실패한 인생 같아 스산하다
자연의 섭리라지만
내 가슴 속에 이는 생성(生成)의 외침
결실을 보고 떠나보내는
시간의 질곡(桎梏)을 벗아 나지 못한
가을비 소리
듣는 이의 가슴에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