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9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 성백군

 

 

출근길

공원 가시나무에 가오리연이 걸려있다

바닷속에서 살던 가오리가 하늘을 날아 보려고 뭍으로 나왔다가

가시나무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제 살만 찢고

이민자로 보이는 한 중년 여인은 바람을 등지고 벤치 위에 누워있다

 

간혹

그녀의 이동식 홈, 쇼핑카에서는

헌 옷가지들이 펄럭거리며 세상을 향하여

오늘은 바람이 왜 이리 드세하는데도

담요 속으로 움츠러드는 그녀의 맨발의 속도는

좀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그녀도 한때는 펄펄 날랐을 것이다

넓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탯줄 끊어내던 날의 아픔도 잊은 체

이국 하늘을 자기의 하늘로 만들겠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햇빛이 비치면 비치는 대로 빛을 주워담고

닥치는 대로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처박히면 다시 일어나고

날고 날아서, 돌고 돌고 돌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그녀가 지금 있는 곳은 동내 공원 한 귀퉁이 낡은 벤치 위

다 떨어진 담요 속,

세상을 등지고 돌아누운 엉덩이에는

팽팽한 긴장으로 조이던 본능마저 허물어지고

바람만 멋쩍게 치마를 들썩거린다

실바람 속에서도 폭풍우 속에서도 도무지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녀

얼핏 드러나는 허벅지의 굵은 핏줄과 종아리의 퍼런 멍 자국

쩍쩍 갈라진 발바닥의 깊은 골이 그녀의 이력을 말해주고 있다

 

누가 그녀의 얼레에 손을 대었나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연줄을 끊게 했을까

이른 아침 빈 공원에 가오리 한 마리 가시나무에 걸려서

바람이 불 때마다 세상을 향하여 욕을 하는지 하소연을 하는지 몸살을 앓고

쇼핑카의 헌 옷가지들은 한 번만 더 세상에 나가보고 싶다고

마지막 여력을 다해 그녀를 깨우고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30 연이어 터지는 바람 성백군 2010.08.22 980
1629 연어 복 영 미 2006.01.26 269
1628 연말 / 성백군 하늘호수 2020.12.23 127
1627 연리지(連理枝 ) 사랑 1 박영숙영 2021.03.03 128
1626 연륜 김사빈 2008.02.10 166
1625 연두빛 봄은 김사빈 2005.05.08 356
1624 연가(戀歌.2/.秀峯 鄭用眞 정용진 2015.03.07 151
1623 연緣 / 천숙녀 2 file 독도시인 2021.05.23 130
1622 시조 연(鳶) / 천숙녀 1 file 독도시인 2021.03.16 122
1621 역사에 맡기면 어떨지 1 유진왕 2021.07.27 261
1620 여호와의 거시기는 & 아무거나 file 박성춘 2007.06.25 330
1619 여행을 떠나면서 김사빈 2005.09.05 345
1618 여행은 즐겁다 김사빈 2008.06.12 339
1617 여행기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었던 시인을 찾아서 이승하 2005.07.10 803
1616 여행-고창수 file 미주문협 2017.06.29 155
1615 시조 여행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3.23 165
1614 여한 없이 살자구 2 유진왕 2021.08.10 154
1613 여지(輿地) 유성룡 2007.04.02 155
» 여인은 실 끊어진 연이다 / 성백군 하늘호수 2015.05.03 393
1611 여백 채우기 박성춘 2009.04.29 590
Board Pagination Prev 1 ...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