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나는 이 시조가 우리나라 고시조 중 가장 아름다운 시조가 아닌가 한다.
달빛 가득한 가을밤에 바람은 잔잔히 불고
가볍게 물결치는 강물위로 달빛은 은은히 비치고
무심히 떠 있는 조각배 위에 사공은 낚시를 하는 둥 마는 둥
시조를 읽는 동시에 한 폭의 동양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야말로 유유자적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物我一體, 物心一如의 경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멋들어진 시조를 지은 이는 월산대군(1454-1488)이다.
세조의 장손이자 성종의 형인 그는 일찍이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오르기로 되어있던 아버지인 덕종이 일찍 죽으면서 순탄할 것 같은 운명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작은 아버지인 예종마저 일찍 사망하자 한명희의 농간에 의해 동생인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른다. 이가 바로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이고 한명희는 성종의 장인이었다. 월산대군은 이처럼 동생인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초야에 묻혀 살며 시화를 벗삼아 지내다 젊은 나이인 35세에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풍월전집이 전한다.
그런데 이처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는 모습에서 나는 낚시와 관련된 또 다른 작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이다. 1952년 발표된 헤밍웨이의 이 짧은 단편으로 인하여 그는 1953년 퓰리처 작품상과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이 84일 간이나 고기 한 마리 못 잡다가 어느 날 노인이 탄 조각배보다 더 큰 고기가 낚시에 걸리자 이틀 밤을 사투 끝에 이 거대한 고기를 잡는데 성공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앙상한 뼈다귀만 싣고 돌아온다는 웬만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렸을 적 읽은 적이 있는 유명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유명한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으나 결코 패배될 수 없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란 구절이 나오는데 평생을 사냥과 낚시, 투우와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투쟁적 삶으로 일관해 온 그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헤밍웨이에 있어서 인생이란 나(인간)를 굴복시키려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여기서 자연이란 나를 실현시키고자 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극복대상에 불과하다.
물고기는 낚시를 문채 노인을 한없이 끌고 간다. 이윽고 시야에서 육지가 사라지고 밤이 찾아온다. 허기와 갈증은 그보다 앞서 왔다. 낚싯줄을 붙들고 견디는 노인의 손과 어깨에는 살이 패여 피가 흐른다. 그럴수록 노인은 “자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위대한 디마지오 선수처럼, 발뒤꿈치 뼈를 다쳐 몹시 고통스러운데도 모든 플레이를 완벽하게 해 낸 그 훌륭한 선수처럼, 나도 훌륭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며 투지를 북돋운다. 별들이 떠오른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면서 다짐도 한다. “나는 저 물고기에게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 주겠다.”라고. 그리고 마침내 승리한다.
나도 한 때는 이러한 승리가 아름답게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은 오히려 고기 한마리 못 잡고 달랑 달빛만 가득 실고 돌아오는 월산대군의 유유자적한 삶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그 여유가 부럽게만 보인다. 월산대군이라면 자신의 배보다 더 큰 고기가 낚시에 걸렸다면 이내 줄을 풀어 주었으리라. 헤밍웨이에 있어서는 비록 집으로 가져오지 못 하고 상어 밥이 될 지언즉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투쟁이 인생이라면 월산대군에 있어서 삶이란 자연 속에서 제 분수에 벗어나지 않고 그 속에 안주하는 체념과 여유인지도 모른다.
1961년 7월 아프리카 사냥 여행 시 비행기 추락 사고에 의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헤밍웨이는 사냥총에 의한 자살로 생을 마쳤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인류를 위협하고 군국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20세기의 전반기에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활약하는 등 죽음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투쟁하여 온 헤밍웨이에 비해 월산대군은 혹시 자신의 처세가 잘못되어 동생인 성종에 누가 될까봐 평생을 자연에 묻혀 은거하다시피 살았다. 죽을 때도 그는 자신의 묘를 대궐이 있는 한양 쪽을 바라보지 말고 북쪽을 바라보게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성종 또한 이런 형의 마음씨를 매우 애틋하게 여겨 왕이 된 후에도 형을 자주 찾는 등 형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항상 자연을 극복해야 할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구에 비하여 동양에서는 자연 속에 도가 있어 自然의 스스로 그러함을 항상 본받으려 하였다. 즉 인간이 행함이라는 人爲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나 스스로 그러함인 無爲自然을 본받으려 하였다.
세계화 서구화로 전 세계가 미국적 가치관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드리고 발전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지구 곳곳에서 자연에 대한 훼손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오늘날 투쟁과 극복, 도전과 응전, 선과 악,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원론, 남성다움과 용기 등이 숭상 받는 서구적 가치관에 비해 체념과 용서, 적응과 합일, 物我一體, 凡我一如등의 일원론적 세계관과 부드러움과 여성성이 강조되는 동양적 가치관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나의 나이 탓에 따른 연약함인가?
어느 날 신문을 펼치면 온통 테러, 보복, 투쟁, 응징, 납치 등의 싸움만이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불현듯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자 했던 월산대군의 유유자적한 풍류의 세계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같은 낚시를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며 동서양의 뚜렷한 가치관의 차이를 새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에는 제발 테러와 투쟁,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되는 투쟁의 역사가 종식되고 자연 속에서 도를 찾고자 했던 동양의 정신이 새롭게 부활하는 그러한 세기가 왔으면 하고 꿈꾸어 본다.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나는 이 시조가 우리나라 고시조 중 가장 아름다운 시조가 아닌가 한다.
달빛 가득한 가을밤에 바람은 잔잔히 불고
가볍게 물결치는 강물위로 달빛은 은은히 비치고
무심히 떠 있는 조각배 위에 사공은 낚시를 하는 둥 마는 둥
시조를 읽는 동시에 한 폭의 동양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야말로 유유자적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物我一體, 物心一如의 경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멋들어진 시조를 지은 이는 월산대군(1454-1488)이다.
세조의 장손이자 성종의 형인 그는 일찍이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오르기로 되어있던 아버지인 덕종이 일찍 죽으면서 순탄할 것 같은 운명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작은 아버지인 예종마저 일찍 사망하자 한명희의 농간에 의해 동생인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른다. 이가 바로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이고 한명희는 성종의 장인이었다. 월산대군은 이처럼 동생인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초야에 묻혀 살며 시화를 벗삼아 지내다 젊은 나이인 35세에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풍월전집이 전한다.
그런데 이처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는 모습에서 나는 낚시와 관련된 또 다른 작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이다. 1952년 발표된 헤밍웨이의 이 짧은 단편으로 인하여 그는 1953년 퓰리처 작품상과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이 84일 간이나 고기 한 마리 못 잡다가 어느 날 노인이 탄 조각배보다 더 큰 고기가 낚시에 걸리자 이틀 밤을 사투 끝에 이 거대한 고기를 잡는데 성공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앙상한 뼈다귀만 싣고 돌아온다는 웬만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렸을 적 읽은 적이 있는 유명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유명한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으나 결코 패배될 수 없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란 구절이 나오는데 평생을 사냥과 낚시, 투우와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투쟁적 삶으로 일관해 온 그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헤밍웨이에 있어서 인생이란 나(인간)를 굴복시키려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여기서 자연이란 나를 실현시키고자 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극복대상에 불과하다.
물고기는 낚시를 문채 노인을 한없이 끌고 간다. 이윽고 시야에서 육지가 사라지고 밤이 찾아온다. 허기와 갈증은 그보다 앞서 왔다. 낚싯줄을 붙들고 견디는 노인의 손과 어깨에는 살이 패여 피가 흐른다. 그럴수록 노인은 “자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위대한 디마지오 선수처럼, 발뒤꿈치 뼈를 다쳐 몹시 고통스러운데도 모든 플레이를 완벽하게 해 낸 그 훌륭한 선수처럼, 나도 훌륭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며 투지를 북돋운다. 별들이 떠오른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면서 다짐도 한다. “나는 저 물고기에게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 주겠다.”라고. 그리고 마침내 승리한다.
나도 한 때는 이러한 승리가 아름답게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은 오히려 고기 한마리 못 잡고 달랑 달빛만 가득 실고 돌아오는 월산대군의 유유자적한 삶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그 여유가 부럽게만 보인다. 월산대군이라면 자신의 배보다 더 큰 고기가 낚시에 걸렸다면 이내 줄을 풀어 주었으리라. 헤밍웨이에 있어서는 비록 집으로 가져오지 못 하고 상어 밥이 될 지언즉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투쟁이 인생이라면 월산대군에 있어서 삶이란 자연 속에서 제 분수에 벗어나지 않고 그 속에 안주하는 체념과 여유인지도 모른다.
1961년 7월 아프리카 사냥 여행 시 비행기 추락 사고에 의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헤밍웨이는 사냥총에 의한 자살로 생을 마쳤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인류를 위협하고 군국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20세기의 전반기에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활약하는 등 죽음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투쟁하여 온 헤밍웨이에 비해 월산대군은 혹시 자신의 처세가 잘못되어 동생인 성종에 누가 될까봐 평생을 자연에 묻혀 은거하다시피 살았다. 죽을 때도 그는 자신의 묘를 대궐이 있는 한양 쪽을 바라보지 말고 북쪽을 바라보게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성종 또한 이런 형의 마음씨를 매우 애틋하게 여겨 왕이 된 후에도 형을 자주 찾는 등 형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항상 자연을 극복해야 할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구에 비하여 동양에서는 자연 속에 도가 있어 自然의 스스로 그러함을 항상 본받으려 하였다. 즉 인간이 행함이라는 人爲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나 스스로 그러함인 無爲自然을 본받으려 하였다.
세계화 서구화로 전 세계가 미국적 가치관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드리고 발전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지구 곳곳에서 자연에 대한 훼손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오늘날 투쟁과 극복, 도전과 응전, 선과 악,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원론, 남성다움과 용기 등이 숭상 받는 서구적 가치관에 비해 체념과 용서, 적응과 합일, 物我一體, 凡我一如등의 일원론적 세계관과 부드러움과 여성성이 강조되는 동양적 가치관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나의 나이 탓에 따른 연약함인가?
어느 날 신문을 펼치면 온통 테러, 보복, 투쟁, 응징, 납치 등의 싸움만이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불현듯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자 했던 월산대군의 유유자적한 풍류의 세계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같은 낚시를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며 동서양의 뚜렷한 가치관의 차이를 새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에는 제발 테러와 투쟁,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되는 투쟁의 역사가 종식되고 자연 속에서 도를 찾고자 했던 동양의 정신이 새롭게 부활하는 그러한 세기가 왔으면 하고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