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8 07:44

지식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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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글> 지식인의 말 성 기 조(시인ㆍ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잘돼가는 나라, 발전하는 나라일수록 지식인들의 발언이 활발하다. 특히 서양의 지식인들은 공공문제에 관한한 용감하다고 말하리만큼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나선다. 이 점은 동양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위급할 때, 혹은 그 존망이 풍전등화 같을 때는 지식인들이 서슴없이 나서서 방책을 말하거니 병든 근본을 치유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을 보면 지식인 중, 몇 사람이 옳은 일에 뛰어 들었을 뿐, 일반적으로는 山林산림에 숨어 입을 다문 사람이 더 많다. 때문에 지식인도 모두 바른 지식인이 아니란 말이 나온지 오래다. 조선 말에 최익현이나 황현 같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바른 말을 하는 용기있는 지식인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날, 역사의 기록으로 남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만 그 시대에 함께 살았던 수많은 벙어리 지식인들은 지금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비굴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무리 선비요 지식인이라고 자처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문제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만큼 大義대의에 충실했고 옳은 행실을 위해서는 어떤 고통도 감내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적당히 숨어 살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의 지식인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겠지만 몇 안되는 민족의 師表사표가 되는 지식인들은 단연코 그런 비열한 행동을 배척했다. 오늘 날 이름을 남긴 지식인들이 숨어 살면서 목숨만 부지하기 바랐다면 그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所信소신에 따라 충실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없이는 바른말을 하기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점은 동양과 서양이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사적인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공적인 의리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위대한 삶을 살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형편이 좋지 않는 편이다. 말 뿐 아니라 실제로 형편이 좋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느 분야에서도 뚜렷한 발전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이 지경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단체도 마음 놓고 일해 볼 시간이 없다. 지지고 볶고, 조이고 쥐어짜는 기술이 온 사회를 뒤덮어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그래도 막상 말이 없다. 막힌 것은 풀어야 하고 조인 것은 느슨하게 만들어야 한다. 발전방향이 지지부진하면 이를 바로잡아 확실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백가지 천 가지 의견이 필요하고 방향제시가 뒤따라야 하는데 막상 국가나 단체를 책임진 사람들이나 지식인들은 딴 짓만 한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은 국민의 잣대로 공직을 수행하지 않고 자신의 이로움만 따지는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그 하위기관이나 단체에서는 눈치 보기에 바빠 많은 일을 추려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이 빛나는 일, 자신이 돋보이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이 모든게 公論공론이 없어서 이 지경이 된다. 다시 말하면 알만한 지식인들이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알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지식인이다. 정치인이 잘못하면 정치학자나 정치평론가들이 공론을 일으켜야 하고 지식인이 잘못하면 지식인 사회를 이끄는 사람이나 비평가들이 입을 열어야 한다. 이치가 이런데도 각계 각층의 지식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투다. 이래가지고는 발전할 수 없다. 준엄한 충고와 제의, 그리고 비판하는 공론은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문화 예술계가 혼란스럽다. 그래도 누구하나 처방을 내놓는 인사가 없다. 되레 혼란을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한국을 대표할만한 미술전람회에서 잡음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를 주관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그렇게도 많이 떠들던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금기의 성역이 생겨난 것 같다.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무런 공론이 없다. 이게 바로 지식인들이 입을 다무는 좋은 예가 된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글도 안 쓰고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가지고 문화가 발전하고 좋은 예술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緣木求魚格연목구어격이 된다. 산에 가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가. 프랑스의 시인이요 작가였던 빅토르 위고(1802~85)는 ‘레미제라불 (1962년 간)’을 썼다. 누구나 아는 세계적 작가다. 영국 런던의 허스트 앤 불라케트 출판사 앞으로 편지를 썼다. ‘레미제라불’이 발간된지 한 달 만이었다. 그 내용은 였다. 내용은 의문표 하나, 그리고 서명 뿐이었다. 이 편지의 답장은 , 단 한 글자. 둘 다 말을 않기로는 똑같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 내용은 모두 안다. 는 책이 잘 팔리는가였고 는 예, 잘 팔립니다 였다. 사건이 전개되면 단 한글자로도 그 속내를 말 할 수 있다. 암호처럼, 그러나 묵묵부답이면 아무것도 모른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제부터라도 닫힌 입을 열어 말을 토해내야 한다. 짧던 길던 관계없이 사안에 따라 비판적인 言動언동을 지속적으로 토해내야 공론이 일어난다. 그것만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이며 지식인들이 생존한 까닭임을 깨우쳐야 한다. 지식인들이 明珠闇投명주암투란 말과 같이 깜깜한 밤에 아무렇게나 던진 구슬처럼 쓸모없어서야 되겠는가? 한 시대를 빛내는 지식인들은 아름다운 구슬처럼 소중하게 대접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적당한 말, 바른 말을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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