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5 13:36

패디큐어 (Pedicure)

조회 수 37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패디큐어 (Pedicure)


                                                                    이 월란




우울한 날엔 패디큐어를 해요
속눈썹이 두 배로 길어보이게 하기 위해 10분을 투자하는 것처럼
늙어가는 육신, 포기할 줄 모르는 무시무시한 집념으로
우울한 날엔 패디큐어를 해요
신발 밑창에 코를 박고 변덕이 죽 끓듯하는
마음따라 육중한 몸뚱아리 배달다니기에 바빴던
내 육신의 땅끝마을로 가요
열개의 갈라진 포구마다 꽃을 심죠
절망의 순간들이 단단히 굳어버린 살
숨기고 싶은 일상의 각질을 다듬어요
잊었던, 지나쳤던 마음의 찌끼들이 거기 모여 있답니다
해져가는 생의 뒤꿈치를 꿰매죠
<발톱엔 강렬한 색상을 바르세요>
이제 막 시판이 시작된 청량음료같은 그녀의 목소리
손톱에 꽃을 놓고 수를 놓고 싶어 10년 두드리던
피아노를 걷어차버린 그녀를 이젠 미워하지 않아요
그래도 우울한 날엔 패디큐어를 해요
외면했던 족지갑 속에 흑장미도 심고 봉숭아도 심어요
펄로 반짝이는 에나멜
몸끝에 아름다운 제국 하나 건설했죠
온종일 꽃을 밟고 다니죠, 가시는 없어요
꽃내음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죠
맨발로 아무리 뛰어다녀도 아무도 이쁘다고 하질 않아
고양이를 붙들고 자랑을 하다가
텔레비전에 정신을 박고 있는 그 남자에게 가요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그 남자의 코 앞에 들이대죠
<내 발꼬락들 넘넘 이쁘지?>
그 남잔 말하죠, 손에 눈이 달렸는지 눈은 텔레비전에 있는데
그 남자의 손이 말하죠
<응, 넘넘 이뻐>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49 광녀(狂女) 이월란 2008.02.26 170
448 유성룡 2008.02.26 419
» 패디큐어 (Pedicure) 이월란 2008.02.25 370
446 그대 품어 오기를 더 기다린다지요 유성룡 2008.02.25 214
445 검증 김사빈 2008.02.25 206
444 사유(事由) 이월란 2008.02.24 102
443 이의(二儀) 유성룡 2008.02.23 211
442 바람의 길 4 이월란 2008.02.23 352
441 illish 유성룡 2008.02.22 112
440 心惱 유성룡 2008.02.22 126
439 삶은 계란을 까며 이월란 2008.02.22 495
438 노을 이월란 2008.02.21 107
437 바람서리 이월란 2008.02.20 258
436 봄을 심었다 김사빈 2008.02.20 126
435 눈꽃 이월란 2008.02.19 89
434 곱사등이춤 이월란 2008.02.18 257
433 깡패시인 이월란 황숙진 2010.03.01 905
432 플라톤 향연 김우영 2010.02.24 1248
431 박성춘 2010.02.23 768
430 지나간 자리는 슬프다 강민경 2010.02.20 790
Board Pagination Prev 1 ...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