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5 13:36

패디큐어 (Pedicure)

조회 수 35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패디큐어 (Pedicure)


                                                                    이 월란




우울한 날엔 패디큐어를 해요
속눈썹이 두 배로 길어보이게 하기 위해 10분을 투자하는 것처럼
늙어가는 육신, 포기할 줄 모르는 무시무시한 집념으로
우울한 날엔 패디큐어를 해요
신발 밑창에 코를 박고 변덕이 죽 끓듯하는
마음따라 육중한 몸뚱아리 배달다니기에 바빴던
내 육신의 땅끝마을로 가요
열개의 갈라진 포구마다 꽃을 심죠
절망의 순간들이 단단히 굳어버린 살
숨기고 싶은 일상의 각질을 다듬어요
잊었던, 지나쳤던 마음의 찌끼들이 거기 모여 있답니다
해져가는 생의 뒤꿈치를 꿰매죠
<발톱엔 강렬한 색상을 바르세요>
이제 막 시판이 시작된 청량음료같은 그녀의 목소리
손톱에 꽃을 놓고 수를 놓고 싶어 10년 두드리던
피아노를 걷어차버린 그녀를 이젠 미워하지 않아요
그래도 우울한 날엔 패디큐어를 해요
외면했던 족지갑 속에 흑장미도 심고 봉숭아도 심어요
펄로 반짝이는 에나멜
몸끝에 아름다운 제국 하나 건설했죠
온종일 꽃을 밟고 다니죠, 가시는 없어요
꽃내음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죠
맨발로 아무리 뛰어다녀도 아무도 이쁘다고 하질 않아
고양이를 붙들고 자랑을 하다가
텔레비전에 정신을 박고 있는 그 남자에게 가요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그 남자의 코 앞에 들이대죠
<내 발꼬락들 넘넘 이쁘지?>
그 남잔 말하죠, 손에 눈이 달렸는지 눈은 텔레비전에 있는데
그 남자의 손이 말하죠
<응, 넘넘 이뻐>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92 대청소를 읽고 박성춘 2007.11.21 117
1891 許交 유성룡 2007.11.23 134
1890 한시 십삼분의 글자 박성춘 2007.11.24 277
1889 人生 황숙진 2007.12.01 119
1888 라이팅(Lighting) 성백군 2007.12.06 191
1887 꽃피는 고목 강민경 2007.12.08 243
1886 곳간 성백군 2007.12.13 145
1885 상처를 꿰매는 시인 박성춘 2007.12.14 359
1884 정의 - 상대성이런 박성춘 2007.12.17 193
1883 나는 벽에 누워 잠든다 JamesAhn 2007.12.23 346
1882 들국화 강민경 2007.12.29 191
1881 바람 성백군 2007.12.31 128
1880 한해가 옵니다 김사빈 2008.01.02 111
1879 해 바람 연 박성춘 2008.01.02 186
1878 방파제 성백군 2008.01.06 79
1877 카일루아 해변 강민경 2008.01.06 179
1876 올란드 고추 잠자리 김사빈 2008.01.21 414
1875 이해의 자리에 서 본다는 것은 김사빈 2008.01.23 282
1874 예수님은 외계인? 박성춘 2008.01.27 368
1873 봄은 오려나 유성룡 2008.02.08 152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