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에 길을 묻다 / 성백군
집, 안과 밖
세상 이쪽과 저쪽 사이, 회색 벽돌담 위를
봄 여름 지나 가을까지 줄곧
초록으로 단풍으로 기어 오르던 담쟁이가
지난밤 된서리 맞고 비밀을 드러냈습니다
낙엽 한 잎 두 잎 땅 위에 쌓일 때는
억척스럽다는 담쟁이도 별수 없다 여겼더니
지금은 겨울 한 철 일손을 놓고 잠시 쉴 때라며
그동안 일군 성과를 담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무도 넘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담장 위에 길이 났습니다
담을 타고 다니며 사방으로 얽힌 까만 줄기는
소통을 원하는 억눌린 사람들의 호소처럼 힘이 있습니다
삶을 찾아 이동하는 개미들의 행렬입니다
선구자처럼
한 생애 목숨 다해
회색 공터 위에 길을 터 놓았으니
이제는 가서 깃발만 꽂으면 된다고
발밑 수북한 낙엽들이
내 발길을 툭툭 치며 힘을 보탭니다
643 - 12052014
시
2014.12.30 08:56
담쟁이에 길을 묻다
조회 수 287 추천 수 0 댓글 0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691 | 밤에 듣는 재즈 | 서 량 | 2005.05.17 | 290 | |
1690 | 손들어 보세요 | 서 량 | 2005.08.13 | 290 | |
1689 | 시 | 길 위의 샤워트리 낙화 | 하늘호수 | 2015.08.30 | 290 |
1688 | 시 | 구름의 속성 | 강민경 | 2017.04.13 | 290 |
1687 | 생선 냄새 | 서 량 | 2005.07.24 | 289 | |
1686 | 시 | 물의 식욕 | 성백군 | 2013.11.03 | 289 |
1685 | 시 | 엉덩이 뾰두라지 난다는데 1 | 유진왕 | 2021.07.18 | 289 |
1684 | 나 팔 꽃 | 천일칠 | 2004.12.30 | 288 | |
1683 | 코리아타운. (1) | 황숙진 | 2007.08.30 | 288 | |
1682 | 시 | 창살 없는 감옥이다 | 강민경 | 2014.05.05 | 288 |
1681 | 시 | 빈말이지만 / 성백군 | 하늘호수 | 2019.01.05 | 288 |
1680 | 시조 | <제30회 나래시조문학상 심사평> | 독도시인 | 2021.07.09 | 288 |
1679 | 밴드부 불량배들 | 서 량 | 2005.08.03 | 287 | |
1678 | 바람난 첫사랑 | 강민경 | 2013.07.07 | 287 | |
» | 시 | 담쟁이에 길을 묻다 | 성백군 | 2014.12.30 | 287 |
1676 | 시 | 언덕 위에 두 나무 | 강민경 | 2015.01.25 | 287 |
1675 | 시 | 한 점 바람 | 강민경 | 2015.09.25 | 287 |
1674 | 겨울 바람과 가랑비 | 강민경 | 2006.01.13 | 286 | |
1673 | 일곱 살의 남동생 | 김사빈 | 2008.06.05 | 286 | |
1672 | 헬로윈 (Halloween) | 박성춘 | 2011.11.02 | 2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