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강민경
오늘도 나는 계곡에서 푸른 하늘 바라보며
산골짝 건널 일 산등성 넘을 일에
힘 드는 줄 모르고
올곧은 나무로 쭉쭉 뻗었다
개울물이 발끝을 적시고 흐르던
어느 아침
안갯속에서 함초롬한 이슬 물고 와
내미는 네 맨손이 하도 고와
퐁당 빠져들어 쿡쿡 하하
웃는 사이
너는 산맥처럼 일어선 내 어깨 근육을
뭉개고
거 쉼을 숨겨 돌돌 내 몸을 말아
옴짝달싹 못 하도록 욱죄고 귀골이 장대했던
나를 지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온데간데없고 덩굴, 너만 남았구나
다 내어 주고
속절없고, 한심하고, 어처구니없어
속 빈 강정처럼, 돌아온 탕아처럼, 먼데 가신
하늘이라도 되돌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네 뱃가죽이야 등가죽에 붙든지 말든지
눈길 한 번 주는 일 없는 너는
누구냐?
네가 그것이었니, 피를 말리는 꽃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