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5 19:10

오디 상자 앞에서

조회 수 41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7 내다심은 행운목 성백군 2014.03.15 277
636 새벽, 가로등 불빛 성백군 2005.07.28 278
635 성탄 축하 선물 이승하 2005.12.21 278
634 한시 십삼분의 글자 박성춘 2007.11.24 278
633 8.15 해방 70년을 생각한다 son,yongsang 2015.08.14 278
632 채 송 화 천일칠 2005.01.10 279
631 어젯밤 단비 쏟아져 서 량 2005.07.28 279
630 신아(新芽)퇴고 유성룡 2006.03.03 280
629 초롱꽃과 도둑 벌과 나 성백군 2013.07.29 280
628 단풍 한 잎, 한 잎 강민경 2013.11.23 280
627 나목(裸木) - 2 하늘호수 2017.11.03 280
626 비와 외로움 강민경 2018.12.22 280
625 정독, 인생길 / 성백군 하늘호수 2023.09.05 280
624 빈방의 체온 강민경 2005.08.18 281
623 초가을인데 / 임영준 뉴요커 2005.09.12 281
622 날지못한 새는 울지도 못한다 강민경 2008.10.12 281
621 이해의 자리에 서 본다는 것은 김사빈 2008.01.23 282
620 선잠 깬 날씨 강민경 2013.02.13 282
619 별은 구름을 싫어한다 강민경 2013.12.03 282
618 저 하늘이 수상하다 성백군 2014.08.07 282
Board Pagination Prev 1 ...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