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훈 서재 DB

윤석훈의 창작실

| 윤석훈의 창작실 | 내가읽은좋은책 | 독자창작터 | 목로주점 | 몽당연필 | 갤러리 | 공지사항 | 문학자료실 | 웹자료실 | 일반자료실 |

손바닥

2007.10.05 18:16

윤석훈 조회 수:692 추천:52

욕조에 물 틀어놓고 변기에 앉아
김종철의 시집 <못에 관한 명상>을 읽는다
욕조에 떨어지는 물소리 듣다가
무심히 욕조 모서리에 붙박혀 있는 거미를 본다
명상에 잠겨있던 그의 몸 위로
물이 차오르자 서툰 탈출 시도하는데
욕조의 벽이 미끄러워 나뒹군다
수십번 반복되는 노력에도 절벽을 오르지 못하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서 못 박는 소리 들리다 이내 조용해진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둘둘 감아잘라
생명의 두레박처럼 그에게 풀어주었다
정신 차린 그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무사히 득도得道 하였다
화장지를 펴서 욕조의 턱을 넘겨
세상 밖으로 길을 내 주었다
저항하는 발길은 아름다운가
애써 다른 길 고집하는 여덟 개의 목발에
전등빛이 먼지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욕조 입구의 수직으로 뻗은 반들반들한 문틀을
오르고 오르다가 땀 다 쏟은 그가
욕조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화장실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리려다가
뒤돌아 서서 손바닥을 물 속으로 집어 넣었다
병아리 가슴털 같은 그의 몸이
손바닥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금요일 밤의 일이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4 꽃의 경계 윤석훈 2010.06.21 1017
213 초점에 대하여 윤석훈 2010.05.17 933
212 피아노 윤석훈 2010.06.02 920
211 불의한 꽃 윤석훈 2010.05.23 913
210 닭발/핑계 윤석훈 2009.07.15 838
209 투병일지/하하하 제국 윤석훈 2009.07.15 830
208 낭만과 실리 사이 윤석훈 2008.03.10 818
207 시간의 밀도 윤석훈 2010.05.17 814
206 휘파람 윤석훈 2010.05.13 807
205 얼굴 윤석훈 2007.10.20 805
204 윤석훈 2008.07.25 803
203 흘러가기 윤석훈 2010.09.11 800
202 시비를 걸다 윤석훈 2008.03.07 792
201 사랑의 무게 윤석훈 2007.11.01 791
200 새로 생긴 버릇 윤석훈 2010.05.03 777
199 소통의 흔적 윤석훈 2009.07.15 761
198 보리수 나뭇잎 윤석훈 2006.12.18 756
197 산에 오르며 윤석훈 2010.05.17 755
196 만년필 윤석훈 2009.07.15 750
195 잠실에서 다우니*로 윤석훈 2009.08.11 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