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기도 제목

2013.10.16 14:41

강성재 조회 수:0

어느 철야 기도회 밤이었다
기도원은 적막 했으나
적막한 만큼 벌레들은 더 크게 울었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일수록
죄가 없는 사람
아내는 적막보다 더 고요하게 기도했다
아내의 죄는 그러니까
볼지어다 두드려도 듣지 못하는
어금니 사이로 삐쳐 나온
짐승을 닮은 나의 언어와도 같은,
아내의 기도 제목은 그러니까
나의 죄목과도 같은 것

아무래도 휴지가 필요한 밤이었다
아내는 늘 휴지를 가지고 다녔다
나에게는 닦아내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것은 내가 너무 더럽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아내의 기도는
쌓여가는 먼지들 사이로 숨은
닦아도 더러워지고 닦지 않아도 더러워지는
한없이 순서를 기다리다 한 순간 구겨져 사라질
아픈 고백과도 같은 것

그 날 밤 아내의 비밀스런 간증을 엿 들으며 생각했다
엄마에게 한번도 휴지를 사 달라고 조른 적 없는
나의 유년은 깨끗 했을까
내가 잠들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을
이 적막한 기도원의 밤에
아내는 젖은  휴지 조각으로
나의 영을 깨끗이 씻어
잠 재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