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01 16:44

동학사 기행/이광우

조회 수 598 추천 수 1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동학사(東鶴寺) 기행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고급반 이광우



  쌀쌀한 겨울바람이 얼굴을 차갑게 스치던 대한(大寒) 후 이틀째 되던 날, 동학사를 찾았다. 알려진 명성만큼 찾는 사람이 많았다. 대학생 차림, 신혼 부부 차림의 젊은 사람이 주류였고, 우리 문우들도 그들과 한 축에 끼었다. 깊고 그윽한 기분을 더해주는 산자락의 안온함은 솜이불처럼 아늑하고 정다웠다. 동학사를 둘러싼 이 일대는 명산 대찰(名山大刹)인 그 이름만큼 전해오는 전설이 많다.

  길을 따라 한 참을 걸으니 여기저기 안내판이 눈에 띈다. 절 입구에 이르기 전에, 동쪽으로 산길을 따라 비탈길을 올라가면, 갑사(甲寺)로 가는 길이다. 그 중간쯤에 남매탑(男妹塔)이 있단다. 남탑(男塔)은 5층, 여탑(女塔)은 3층인데 탑에 대한 전설이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상원조사가 이곳 암자에서 살았는데, 어느 겨울밤에 호랑이가 나타나 괴로운 몸짓을 하기에, 수상히 여겨 호랑이 입 속에 손을 넣어 이(齒牙) 사이에 낀 비녀를 뽑아주고 "함부로 사람을 잡아먹지 말라"고 호통을 쳐 보냈단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밤에 그 호랑이가 젊은 여인을 물고 와서는 내려놓고 가더란다. 놀라서 기절을 한 여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 연유를 물은즉, 자기는 경북 상주에 사는 김화공의 딸로서 결혼식 전날 밤에,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왔다고 하더란다. 눈 쌓인 산 속이라 해동(解冬)하기를 기다려, 그 여자네 집으로 찾아갔더니 "그것도 너의 운명이니 받아들여라'면서 스님을 따라가라기에, 할 수 없이 되돌아왔단다. 그런데 도를 닦는 스님의 몸이라 부부간이 될 수는 없고, 남매로 살자고 약속하고 일생을 불심 속에서 마쳤단다. 사후에 그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곳에 절(청량사)을 짓고 탑을 세웠단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생긴 동학사는 여자를 기리는 뜻에서 비구니 가 운영하는 절이 되었단다.

  계룡산 자락에는 도읍지(都邑地)로 알맞다는 신도안(新都安)이 있다. 정감록 비결에 피난지라고 지정된 곳이어서, 많은 민간 종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조 개국 시(開國 時)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이곳에서 터를 다듬은 지 1년쯤 되었을 때, 꿈에 하얀 할머니가 나타나 "이곳은 정씨가 도읍을 정할 곳이니 딴 맘 먹지말고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더란다. 그래서 이성계는 정도전 등과 상의하여 이곳을 포기하고 한양에다 터를 잡았단다.
  동학사 바로 옆에는 동계사(東界寺), 삼은각(三隱閣), 숙모전(肅慕殿)이 있어서 내방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동계사는 신라 박제상(朴堤上)을, 삼은각은 고려 말의 세 충신(忠臣)을, 그리고 숙모전은 세조의 왕위찬탈(王位簒奪)에 희생된 충신들을 모신 곳이다. 신라 고려 조선조들의 충신을 모두 모신 셈이다. 나라를 위해 내 한 몸 던질 수 있는 충신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대표적인 이들을 고이 모셔서 후손들에게 귀감으로 삼으려는 속셈이리라. 이곳은 국사교육의 산 교육장이다.
  동계사에 모셔진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왕의 아우를 구출하고 자기는 왜지(倭地)에서 순절한 충신이었다. 삼은각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忠臣 不事二君)"는 정신의 본보기인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목은 이색(牧隱 李穡), 야은 길재(冶隱 吉再)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숙모전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과 그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 황보인(黃甫仁), 김종서, 안평, 금성 대군 등의 충의 지사를 모신 곳이다.
  동학사의 이름은 동학사(東鶴詞)가 변하여 동학사(東鶴寺)가 되었단다. 그리고 여승들이 운영하는 절로서 엄숙하고 안정감 있는 수양도량(修養道場)으로서 분위기가 숙연했다. 진입로 양편에는 커다란 벚꽃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었고, 산자락에는 느티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숲과 서늘한 바람, 쉴새 없이 흐르는 계곡 물은 정말 세속을 떠나온 느낌이었다. 나무마다 잎이 무성하여 물가에 그늘을 드리우는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좋은 피서지가 되리라.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진 나무들의 전송을 받으며 더 머물고 싶은 미련을 남긴 채 계곡을 빠져나왔다.  

  (2005년 1월 29일)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50 오늘은 묻지 않고 듣기만 하리 전재욱 2004.11.30 508
2249 <도청> 의원 외유 정진관 2005.01.25 1055
2248 화 선 지 천일칠 2005.01.20 506
2247 막 작 골 천일칠 2005.01.27 509
2246 미리 써본 가상 유언장/안세호 김학 2005.01.27 564
2245 해 후(邂逅) 천일칠 2005.01.27 237
2244 삶은 고구마와 달걀 서 량 2005.01.29 556
2243 봄 볕 천일칠 2005.01.31 298
» 동학사 기행/이광우 김학 2005.02.01 598
2241 미인의 고민/유영희 김학 2005.02.02 454
2240 생선가시 잇몸에 아프게 서 량 2005.02.03 863
2239 아들의 첫 출근/김재훈 김학 2005.02.03 611
2238 철로(鐵路)... 천일칠 2005.02.03 236
2237 해 바 라 기 천일칠 2005.02.07 274
2236 우리 시대의 시적 현황과 지향성 이승하 2005.02.07 1181
2235 몸이 더워 지는 상상력으로 서 량 2005.02.07 459
2234 우회도로 천일칠 2005.02.11 230
2233 위기의 문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이승하 2005.02.14 679
2232 주는 손 받는 손 김병규 2005.02.16 491
2231 눈도 코도 궁둥이도 없는 서 량 2005.02.17 35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