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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흔히 수확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다. 우리 시단에서 가을(2004년 9∼11월)은 월간지 계간지 할 것 없이 '신인'이라는 결실을 거둬들이는 계절이다. 특히 중앙일보가 해마다 연초에 벌이는 신춘문예라는 축제를 9월로 옮김으로써 우리는 이 가을에 더욱 많은 신인의 목소리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중앙일보의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을 비롯하여 계간지 {시와 사상} {시안} {시작}을 통해 등단한 신인의 등단작 수준을 가늠하고 싶다.

  1.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 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 쳐요
  더 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 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박연준, [얼음을 주세요] 제1연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의 제1연이다. 당선자는 "생동하고 자연스럽다", "그 어조와 언술 내용이 생생했다", "상투적이지 않고 발랄했다", "자연스럽게 툭툭 던지는 말 속에 생의 비의가 담겨 있었다", "자신의 내밀한 직접 경험과 욕망의 상처를 드러내는 상상적 경험을 결합하는 솜씨도 뛰어났다"는 등 심사위원이 주는 상찬의 꽃다발을 혼자 들기 무거울 정도로 받고 있다. 아닌게아니라 이 작품은 '신춘'이라는 타이틀을 무색케 할 정도로 진부했던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에 비해 활달한 시상 전개와 신선한 언어 감각이 돋보인다. 유형화되거나 수준 미달인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이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낳았는데 이번 중앙일보 당선작은 참신성에 있어서나 작품의 수준에 있어서나 일반 독자의 기대에 값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시인은 발랄함을 취한 대신 진지함이나 치열함, 끈질김이나 사무침을 버린 것이 조금은 아쉽다. 제1연 4∼5행에서 보여주는 '장난질'이나, 8∼9행에서 보여주는 과장벽은 시를 한없이 가볍게 한다.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 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얼음을 주세요] 제3연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부분에 이르러 시인의 거침없는 표현에 탄성을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과장벽이 지나칠 정도이고, 상상력이 언어 유희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고 싶다. 심사위원도 이 점을 우려했는지 "자극적인 말들의 생산이라는 또 다른 타성에 젖을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거대담론이 무너진 지금, 시가 나날이 가벼워져 가는 추세이다. 설사 베스트셀러를 꿈꾸지 않더라도 시속(時俗)에 영합하려는 시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작금의 시단 풍토에서 시적 대상과 조금은 치열하게 대결해도 좋으련만. 나는 아웃복서로서 잽만 던지는 선수보다는 저돌적으로 파고들어 어퍼컷을 날리는 선수를 보고 싶다. 그런데 박연준은 계속 가볍게 뛰어다니며 잽만 던지지 않을까? 나비처럼 날아가서 벌처럼 쏘지 못하고 가볍게 뛰어다니기만 한다면? 이런 우려의 마음은 또 한 편의 당선작을 보면 더욱 강해진다.  

  내 길다란 속눈썹 위에 당신을 올려놓고 싶어
  내가 깜박이면, 깜박이는 순간 당신은
  나락으로 떨어지겠지?
  내 이름을 길게 부르며 작아지겠지?
  티끌만큼 당신이 작게 보이는 순간에도
  내 이름은 긴 여운을 남기며
  싱싱하게 파닥일 거야
                                     ―박연준,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제1연 후반부

  21세기 우리 시의 좌표가 이런 가벼운 뜀뛰기에 있다면 일부 대중은 휘어잡을지도 모르지만 세계적인 수준에는 오를 수 없을 것이다.

  2. {시와 사상} 신인상 당선작

  {시와 사상} 하반기 신인상 당선자는 조민과 하재청이다. '어떤 작품 외 4편'인 경우 제일 앞에 내세운 작품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제일 앞의 시를 보도록 하자.

  식탁이 조용하다
  0가 잠들면 길어지는 그림자
  나는 천년을 걸어와서
  아침을 차린다
  
  식탁은 풍성하다
  검은 강물이 흐르고
  포만으로 둥글어진
  접시에는 무성한 검은 풀
  
  무엇부터 먹을까
                                     ―조민, [즐거운 식사] 앞 3연

  풍성한 식탁에서의 즐거운 식사라고 하지만 '검은 강물'과 '검은 풀'로 봐서 역설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0시가 잠들면 길어지는 그림자요 나는 천년을 걸어와서 아침을 차린다니, 시간의 착종이라고 할까 의식의 혼란이라고 할까. 여성성이 느껴지지 않는 대신  생태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감지된다.

  날마다
  천년을 걸어서 오는
  나는
  입도 지우고 혀도 잘랐다

  오직 눈과 머리로만 먹는 음식
  세월처럼 긴 머리카락이
  젓가락에 엉키고
  뼈와 살을 발라낸 나를 차린다

  소리내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골고루 먹어
  식탁은 조용하다
  청동빛 조명 아래
  나는 천천히 씹는다
  하얀 알을 밴 나를
  골고루 음미하며 씹는다
                                     ―[즐거운 식사] 뒤 3연

  앞 3연을 읽을 때의 기대치는 후반부에 와서 무너져 버린다. 나 자신에 대한 도저한 부정의 정신은 느낄 수 있되 시 자체의 지향점은 그만 방향키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즐거운 식탁에 펼쳐져 있는 것은 오직 눈과 머리로만 먹는 음식인데, 결국 내가 나를 먹는 것이 된다. 왜 그런 것인지 시간과 검은 강, 검은 풀 외에는 암시하는 바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애매성이 지나쳐 의미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일상성의 시화(詩化)라는 차원에서는 다른 작품들도 동궤에 놓인다.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점은 신뢰할 만하지만 대개의 시가 설익은 것임에, 등단한 지금부터 배전의 각오로 시 쓰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감포 앞바다 지척에 두고
  길을 잃어버린 바다 속 대게
  설익은 까만 눈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꼼지락거릴 때마다
  푸른 바다가 신기루로 활짝 웃는다
  투명 유리벽 너머 바다로 가는 길
  껌벅대는 눈 속에 떠 있고
  투명 유리 속 다리
  벌써 유폐된 고통 잊어버린
  텅 빈 하늘 건너는 꿈을 꾸고 있다
                                     ―하재청, [유폐된 바다] 앞부분

  하재청은 정공법을 익힌 시인이라고 여겨지는데, 그래서인지 시의 소재와 주제가 분명하다. 그는 감포 앞바다에서 잡힌 대게가 수족관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한 편의 시를 썼다. 어느 행도 애매한 부분이 없이 쉽게 이해가 되고, 읽는 동안 시인의 의도가 자연스럽게 파악된다. 그런데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너무나 빤한 소재를 갖고 쓰고, 뻔한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고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낱낱의 표현에 있어서도 썩 신선한 구석이 없다. 신인에게 기대되는 참신성이 떨어지므로 하 시인의 행보가 순탄치 않을 수도 있으리라. [Dios, 빙하시대] 같은 싱싱한 상상력의 시가 제일 앞머리에 놓였더라면 어땠을까. 이 작품은 다행히도 신인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냉동실에 고기 한 토막
  오래 방치되어
  동공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나는 언 고기토막처럼 일그러진다
  냉동된 기억의 문을 열어
  애인의 가슴을 뚫어 굴뚝을 하나 낸다
  가슴 한가운데 톱밥난로를 지펴
  붉은 불꽃을 피운다
                                     ―하재청, [Dios, 빙하시대] 앞 2연

  소재야 별 새로운 바가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자세는 차분하면서도 집요한 구석이 있다. 앞으로 이러한 끈질긴 대결의식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3. {시안} 신인상 당선작

  {시안}도 2명의 당선자를 냈다. 그런데 최금지의 [길이 된 벼메뚜기] 외 4편은 아마추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나쁘게 말하면 설익은 시편이고 좋게 말하면 소박한 시편이다.
  
  햇살 짱짱한 오후 중인리 들녘 나들이 갔다 낱낱의 벼들 서로 어우러진 알갱이 속내를 길섶 감나무가 꺼끌꺼끌 훑어내린다

  논둑 길 후미진 곳에 등 터져 죽은 메뚜기 한 마리가 섬찟하다

  한때는 至心 깊은 벼 모감 위로 生의 촉수를 번뜩이며 튀어오르기도 했을
  한때는 풀잎 푸른 기차를 타고 어린 바람 무등의 꿈을 환히 키웠을

  견고한 그의 뒷다리를, 툭 불거진 겹눈을 떠올리면 식어버린 더듬이의 흔들림이 슬프다
                                     ―최금지, [길이 된 벼메뚜기] 앞 4연

  총 7연으로 된 시의 앞 4연이다. 절반 이상을 읽었지만 새롭게 발견한 시의 영토가 보이지 않는다. 상상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언어의 세공술도 보이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노래한 시인데, 신인다운 참신한 자기 세계가 없다. 소재와 주제는 물론 낱낱의 표현에 있어서도 '신인다운 것'이 없다. 어느 한 곳에서도 긴장감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인인 만큼 덕담을 해주고 싶은데,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게 된다.

  눈 내리는 아침/홀로 산길을 걷는다/눈의 가장 낮은/세상 어디라도 몸 부리면/꽃이 되어/하르르르 키보다 더한 어둠을 벗긴다/잎 떨어진 갈참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세월 깊이 가라앉은 마른 풀잎과 풀잎 사이/억 만 꽃 번 져/그만 환해진다/지난날,/어깨 겯고 돋아난 나무와 풀들에게/꽃이 되길 거부했던 삶의 어혈들/오솔길에 반질반질 족적으로 되살아나/언 땅 건너야 할 가슴 더욱 시리다/숲 언저리/여윈 종아리 세운 강아지풀처럼/모른다 모른다 갸웃거릴 때/대숲을 걸어나온 청바람/한정짓던 마음의 문 한 짝/슬그머니 걷어내고/어둠 걷힌 속, 빈 가지마다 오늘은/한 生 건너도 좋을/하얀 눈꽃이 핀다.
                                     ―최금지, [눈꽃] 전문

  심사위원의 말대로 "맑고 깨끗한 자연서정의 감각"이 깔려 있고, "언어의 조탁에 상당한 공력을 들인 흔적이 있"으며, "주제를 두 번 세 번 접어서 표현하는 솜씨"를 지니고 있기에 당선된 것이리라. 하지만 신인에게 기대되는 신선한 감수성과 새로운 감각은 보이지 않는다. 2편 시의 서정은 참으로 낯익은 것임에, '진부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정신이야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바뀔 것이 없지만 내용과 형식 모두 옛것을 답습해서는 곤란하다. 사람도 '온고지신'이니 '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시골 얘기를 해도 좋고 과거지사를 다뤄도 좋지만 동시대인의 아픈 영혼을 감싸안을 줄 알아야 한 명의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꽃이 되길 거부했던 삶의 어혈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다뤘더라면 좋은 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시인이 뻔한 이야기 감을 뻔한 방법으로 풀어나가면 독자는 지루해 한다. 새로운 영토 개척을 위해 최 시인은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신인이므로 등단작이 조금 허술한 것이야 당연한 노릇, 앞으로는 보다 견고한 언어의 집을 지어 한 선배 시인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기를.

  보험 없는 도시인들은 차라리
  시인이나 되라지
  보험이 멈춘 두 달 동안 겨우
  나는 시인이었고 삶이 위험하였다
  빨간 신호등 아래 기생하는
  앵벌이 할머니가 십자가처럼 빛나는
  후레쉬껌을 들이민다
  잔뜩 껌을 씹는 하늘에는
  보험 연체된 별들이 알알이 씹히고
  잔뜩 밀린 별들은 서쪽 하늘로 이주하였다
  어수선한 불빛을 맞으며 꺼내든 독촉장에는
  좋은 말씀이 한 가득 묵직하다
                                     ―김원국, [서쪽의 별] 가운데 연

  대학 4학년 학생의 시여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상력이 발랄하고 시어가 상큼하다. 소재 선택, 주제 설정,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진부함을 떨쳐버리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게다가 현대인의 땀 냄새가 물씬 풍기고, 생활의 실감이 느껴진다. 흠이라면 건조한 문장의 나열로 정제미가 떨어져서 그런 것일까, 허술한 느낌을 준다. 즉, '언어의 집'이 견고하지 못하다. 시인 운운하더니 보험이 멈추고(연체되고?) 앵벌이 할머니가 나타난다. 마지막에 가서는 화자가 "근심걱정 많은/서쪽이 목성"이 되겠다고 한다. 시상이 좌충우돌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런 것이 매력일 수도 있겠다. 특유의 유머러스한 상상력도, 재치 있는 언어 구사력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어 앞날이 기대된다.

  나는 창녀들을 욕하지 않는다
  나는 돈을 받고 몸을 건네주는 그것을 못 견디므로
  참을성 깊은 그들을 뭐라 하지 않는다
  오늘 한 선배가 술을 건네고
  내 허벅지를 더듬었다
  그리고 선물로 받은 시집
  알렌 긴스버그의 아우성
  이 인간을 한 대 후려칠까 하다가
  참을성이 깊은 창녀들을 떠올렸다
  담배 한 대 물고 밖으로 나와
  이 시집을 어떻게 할까
  이길 저길
  창녀처럼 헤매 다니다가
  첫눈을 맞았다
                                     ―김원국, [첫눈] 전반부

  '첫눈'이라는 시어가 등장하는 것은 제14행이고, 사실 이 시가 첫눈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적 화자가 첫눈 내린 날 겪는 일이 한 편의 시가 된 것이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그렇듯 이 시도 한 개인의 일상사가 시시콜콜 이야기됨으로써 한 편의 작품이 되었다. 이런 시에서 어떤 주제를 도출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창녀들과 시집과 동성애자인 듯한 선배와 첫눈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시적 대상들이 별 연관성 없이 나열되고 있기에 언어의 집이 허술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사고가 활달한 언어 구사에 힘입어 시가 꽤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그래도 박연준처럼 대상을 가볍게 다루는 몸놀림은 못내 아쉽다.
  
  4. {시작} 신인상 당선작

  계간 {시작}은 이영옥과 박윤일 두 여성을 시단에 내보냈다.

  그는 침침한 백열등 밑에서 저녁을 먹는다
  굳어버린 혓바닥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밥상이 곤두박질 칠 때마다
  늙은 아내는 깨진 것들을 천천히 쓸어 모았다
  그를 지탱하는 의식들은
  이빨 나간 그릇처럼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치욕은 아내의 손톱 밑에 파고든 양념찌꺼기 같았다
  한바탕 울분 뒤에
  몰아쳐 오는 적요는 언제나 쓸쓸하다
  그는 잘 씹히지 않는 명태를 우물거리며
  바다 속의 깊은 적막을 우려낸다
  하루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명태 한 마리의 온전한 고독이 필요할 테지
                                     ―이영옥, [밥상 위의 명태 한 마리] 전반부

  총 27행 시의 앞 14행이니 거의 절반을 인용한 셈이다. 이 시의 특징은 묘사가 아니라 진술이다. 은유가 아니라 설명이다. 사색이 아니라 사건이다. 그래서 상황은 충분히 감지되지만 오랜 되새김질을 요하지 않는다. 일종의 이야기 시인데, 이야기 자체가 흥미를 유발하지 않으므로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사물을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은 산문정신이지 운문정신이 아니다. '그'는 폭력을 일삼는 못난 가장인가? 그의 저녁식사가 어떻다는 것일까? 마른명태가 달리 뜻하는 바가 있을까? 일단 끝까지 읽어보자.

  관자놀이의 힘줄이 불끈 일어선다
  내 영혼은 얼마나 더 능멸당해야 잠들 수 있나
  꿈에서조차 그는 말을 더듬는다
  그는 마른명태처럼 딱딱해진 생각들을
  탕탕 두들겨
  북북 찢어놓고 싶었다
  환멸에서 생 비린내가 났다
  백양나무가 바람 든 뼈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누런 이파리들의 밭은기침에서 튀어나오는
  죽음의 파편들
  그는 온몸에 어둠을 퍼담고 고즈넉하게 저물어간다
  처마 밑의 마른명태는
  먼지를 한 겹 두른 후 하루 더 희망을 품기로 했다.
                                     ―[밥상 위의 명태 한 마리] 후반부

  "내 영혼"의 '나'는 그인가 시적 화자인가. 내가 그와 동일인이 아니라면 왜 느닷없이 등장했으며, 왜 느닷없이 "내 영혼은 얼마나 더 능멸당해야 잠들 수 있나"고 한탄하고 있는 것인가. 글쎄, 명색이 등단작인데 나의 감상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끝까지 읽어봐도 낯설기의 효과를 노린 시행이 보이지 않고 내용에 있어서도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이 없다. 어느 가난한 부부의 저녁 식탁 풍경인 것 같은데 내용 파악은 차치하고라도 풍경화 자체의 미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남자는 달려오는 빛을 향해 몸을 날렸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생일전야]와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괄약근의 신축성이 특별했던 그 집은/검은 순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었어"란 문장으로 시작되는 [질긴 내장으로 만든 집]은 제일 앞에 내세운 작품보다는 낫지만 초반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이야기 시'를 지향할 때 이야기의 진부함을 떨쳐버리게 하는 것이 시인의 상상력인데 이영옥은 관찰력이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야간 응급실] 같은 작품은 그래도 가능성을 내비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한다. 장대비가 내리는 밤, 삼겹살 집의 풍경이 고호의 그림처럼 거친 톤으로, 그러나 선명하게 그려진다.

  비 오는 저녁
  허름한 삼겹살 집 구석자리에
  두 부자가 고기를 먹고 있다
  옆자리에는 지친 가방이 뭉개져 있고
  아들은 두 볼이 미어터지게 씹고 있었지만
  눈빛은 허공에서 불안하게 흔들렸다
  함석지붕 위로 탄환 같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자욱한 연기를 사이에 두고 부자는 말을 꿀꺽 삼킨다
  (…)
  좁은 바닥에 백열등 그림자가 탄피처럼 흩어진다
  장대비는 밤새 몇 개의 황토 길을 토해낼 것이다
  또다시 철창 같은 빗줄기로 포위되자
  삼겹살 집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껴안고
  야간 응급실처럼 잔뜩 긴장한다
                                     ―[야간 응급실] 부분

  이 시의 장점은 실감나는 묘사이며 단점은 소설의 일부처럼 '보여주기'에 그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장점은 크게, 단점은 작게 여겨진다.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치밀한 묘사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야간 응급실]은 바로 이 점을 갖고 있어서 후속 작품에 대한 기대가 간다.
  또 한 명의 등단자인 박윤일은 이름도 남자 같지만 시도 여성성을 지니는 대신 샤프하고 터프하다. 영등포 종착역에서 강화행 버스를 탄 화자가 빨간 고무대야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미꾸라지들을 보고 쓴 시가 있다.

  나는 졸아든 물 속에서 반란처럼 허우적거리다가
  더러는 거꾸로 뒤집힌 채 둥둥 떠올라 있는
  녀석들의 창백한 뱃가죽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급하게 먹은 자장면 때문인지 자꾸만 헛구역질을 해대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뒤바뀌지 않는 생의 노선에
  몇몇 녀석들은 아예 맞서 버티기를 포기한 듯
  물위에 가만히 떠 있거나 때로는 튕겨져 나와
  연옥처럼 뜨거워진 시멘트 블록 위에 나뒹굴고 있다
                                     ―[영등포 종점] 끝 2연

  미꾸라지 그림이 구체적이어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신인의 시에 레슬링 선수의 근육처럼 힘이 넘쳐난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문제는 사실적인 풍경화 속에 어떤 내용의 그림을 그려 넣는가 하는 것. 사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어떤 묘사에는 독자의 가슴을 찌르르 떨리게 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번들거리는 근육 드러내놓고 달리기를 하는 사내들과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젊은 아낙의 아이들이 하나 둘 그를 비껴 나가지만 물통과 수건을 들고 그림자처럼 사내의 뒤를 따르는 여자의 두 볼은 한창 피어난 벚꽃 무더기처럼 환하다
                                     ―[그림자] 끝 연

  이런 뒤집기는 참 좋다. 앞으로 박윤일 시인이 그리는 그림의 아름다움이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 시인이 달려야 할 앞길에는 냉정한 문학평론가들과 그들보다 더 냉정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인식이 없이는 곤란한데 앞에 예로 든 두 편 시도 그다지 새롭다고 할 수 없는 심상이다.
  10월호 {현대시학}과 {현대시}도 각각 2명의 시인을 내보냈는데 원고가 넘쳐버려 언급하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이번 가을에만 해도 시인의 관을 쓴 사람이 이렇게 많다. 중요 문예지를 다 찾아보지 않았음에도 10명이 넘는 신인이 등장한 것이다. 이분들의 등단작이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2∼3년은 더 수련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몇 계단 더 올라선 뒤에 등단했어야 하는데 조금은 일찍 등단을 하여 작품들이 무르익어 있지 않다. 야! 괜찮은 시인이 나타났구나, 하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하는 시인이 없다. 하지만 대가도 애송이 시절이 있는 법이다. 기왕 시인의 관을 썼으니 본격적인 습작기가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매서운' 시를 써주실 것을 당부한다. 한국 시의 미래는 그대 신인들의 새로운 목소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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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2 월 강민경 2005.12.10 231
159 신 내리는 날 성백군 2005.12.07 228
158 품위 유지비 김사빈 2005.12.05 653
157 준비 김사빈 2005.12.05 292
156 12월, 우리는 / 임영준 뉴요커 2005.12.05 232
155 그때 그렇게떠나 유성룡 2006.03.11 178
154 시파(柴把)를 던진다 유성룡 2006.03.12 275
153 고주孤舟 유성룡 2006.03.12 137
152 하소연 유성룡 2005.11.27 232
151 여고행(旅苦行) 유성룡 2005.11.26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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