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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이 되는 것은 운명이다. 무당이 되는 것이 운명이듯이. 무당은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눠진다고 하는데 무병을 앓고 난 뒤 무당이 된 강신무든 무속에 관련된 기예를 배우고 익혀 무당이 된 세습무든 두 경우 모두 '운명'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내가 시를 쓰면서 살아가게 된 데는 몇 사람의 인도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김천문화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게 해주신 막내이모가 계셨고,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글을 쓰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국어선생님이 계셨다.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면서 학과 공부는 하되 사법고시 공부를 거부하더니 결국 졸업 후 국문학과 3학년으로 학사편입한 형이 있었다. 이 세 사람 외에 또 한 사람이 더 있었으니, 그이는 내가 10년 동안 편지를 보냈던 이른바 '펜팔 친구' 소녀였다.

  나로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고, 그 소녀는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이었다. 소년소녀잡지의 펜팔 난을 통해 주소를 알게 된 내가 먼저 편지를 보냈던 것 같다. 김천이란 소도시에서 살던 촌놈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얼굴도 모르는 소녀가 답장을 보내주니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편지를 한 통 보내고 나서 일주일이나 열흘쯤 있으면 답장이 오는 것이 신기했을 뿐만 아니라 내 편지에 대한 타인의 반응 자체가 감동적이고 감격적이어서 나는 밤잠을 못 이루며 그리움의 몸살을 앓았다. 편지를 읽고 읽고 또 읽었고, 내가 쓰는 편지는 글자 한 자도 또박또박 펜촉을 잉크에 찍어서 썼다.  

  편지 내용이야 뻔했다. 국어과목을 가르치신 권태을 김천성의중학교 선생님에게 보여드린 나의 시, 독후감, 산문 등이 편지의 주된 내용이었다. 내 반 담임을 한 번도 맡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백일장 대회가 있건 없건 간에 작품이 완성되면 바로 보여달라고 하셨다. 교무실로 찾아가 불쑥 내미는 원고지 묶음 '청호문집'에다가 선생님은 빨간색 만년필로 성의껏 첨삭을 해주셨고, 나는 열심히 퇴고한 작품을 보고서를 올리듯 서울의 한 살 아래 소녀에게 보냈다. 그 무렵 내가 책을 읽는 이유와 글을 쓰는 이유는 확실했다. 선생님의 칭찬도 듣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소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였다. 내 편지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편지는 내 어머니가 수시로 검열을 하곤 했다. 요 녀석들이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다가 무슨 사고라도 치는 것이? 그런 생각을 했을 테지만 너무나 건전한(?) 내용이라 양쪽 집에서 눈감아주기로 했다.

  나는 어느덧 사춘기를 맞이했고 그 소녀를 열렬히 연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너를 좋아한다는 뜻을 비치면 펜팔의 관계가 깨어질까 봐 내 속내는 숨긴 채 문학과 영화, 팝송과 클래식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며 편지를 써 보내곤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상대방의 주소와 이름만 아는 상태로 편지 교환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관계에 어떤 전환이 왔다. 형의 고시공부 포기가 불러일으킨 집안의 회오리바람을 감당할 수 없어 김천고등학교를 두 달 다닌 시점에 나는 서울로 가출이란 것을 했던 것이다. 난생 처음 본 서울역 앞 광장, 광화문 네거리, 세종로, 청계천……. 서울을 별천지였고 요지경이었다.

  돈을 충분히 갖고 가출을 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차비, 독서실비, 매 끼니 식사비 등을 쓰다 보니 금방 돈이 떨어져 형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형은 그때 이미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있었다. 승하 녀석이 너한테 오거든 꼭 붙들고 있거라. 아버지한테 붙잡혀 내려갔는데 집안 분위기는 여전했고 나는 부산으로 대구로 춘천으로 떠돌며 10대 후반기를 보냈다. 검정고시 준비를 해 합격을 했지만 재수학원에는 가지 않고 독서실이나 공공도서관에서 나날을 보내며 그 소녀만을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이상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을 것이다. 편지에 구체적으로 설명해놓지 않아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이 오빠는 고등학교를 무슨 이유에서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쳤구나. 지난번 편지는 대구에서 오더니 이번 편지는 춘천에서 오네. 어, 이번에는 또 고향 김천에서 오네. 어찌어찌 세월을 보내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합격을 하긴 했는데 곧바로 휴학을 했다. 처음에는 문학을 평생 할 자신이 없어 다시 입시공부를 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는데 4년 간의 방황으로 영혼이 피폐해져 몸까지 엉망이 되었다. 관절염이 생긴 데다가 불면증이 심해져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자 나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승하를 구해줄 사람은 너밖에 없을 것 같구나. 김천에 와서 오빠한테 격려를 좀 해주렴. 그럼 불면증도 낫고 앞날에 대해 희망을 가질 터인데.' 뭐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란 소녀는 그간 받아서 간직하고 있던 내 편지를 몽땅 반송하면서 나름대로 '절교'를 선언했던 것인데 나는 그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대학시절에는 이상하게 내가 편지를 보내도 그녀는 제대로 답장을 해주지 않았고, 몇 통을 보내면 마지못해 겨우 엽서 한 장을 보내줄 따름이었다.

  대학 3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그녀를 만날 결심을 했다. 대학 2학년 때 전국대학 문예작품 공모에도 당선되고 교내 신문사 공모에도 당선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던 것인데, 어느새 그녀는 4학년이 되어 있었다.

  펜팔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만났던 그날, 1982년 10월 모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비록 얼굴은 처음 마주하지만 내 인생의 10년을 알고 있는 그녀 앞에서 얼마나 황홀해 했던가. 근년에 편지가 뜸해졌는데 예전의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한 내 말이 실언이었음을 그 때는 알 수가 없었다. 이 말이 내 입밖에 나온 순간부터 그녀의 표정에는 의구심이 떠올랐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나고 있으며,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 같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편지로 오빠가 용기를 주었던 은혜를 잊지 않을 거라는 둥.

  그녀는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나의 요청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고 84번 버스를 타러 흑석동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신파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려는 양 뒤쫓아가며 "○○아! 행복해야 돼!" 하고 외쳤었고.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생명에서 물건으로}란 시집에는 [오월의 물가에 와―첫사랑에게 바침]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집을 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을 때였으니 1995년 가을쯤이 아니었을까. 그녀와의 또 한 번의 해후는 이 시집 덕분인데 시집에 실린 그 시를 읽은 그녀는 출판사로 전화를 해 내 연락처를 알아내어 회사(쌍용)로 전화를 해왔던 것이다.

  1982년 그때, 10년 만에 얼굴을 내민 '승하 오빠'라는 사람이 자신을 한 명의 이성으로, 성숙한 여성으로 생각해주기를 바랐는데 기대 밖에도 다시 편지를 주고받자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대단히 실망하여 돌아섰던 것임을 그제야 그녀는 내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처음 만난 그날 자기가 했던 엉뚱한 얘기들은 지어낸 것이었으며, 버스를 타고 가며 하염없이 울었다는 그녀의 말은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으나 그녀는 이미 그때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지금 어디서 사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꽤 늙은 것처럼 그녀도 눈가에 주름이 제법 잡혀 있으리라. 나는 첫 번째 만남에서 두 번째 만남 사이의 13년 동안 그녀를 많이 원망했었다. 매몰차게 이별을 선언하고 떠나갔으니까. 하지만 이별 선언의 이유가 나한테 있었음을 알게 된 이후 내 어떻게 그녀를 원망할 수 있으랴.

  정확히 10년 동안 그녀는 내 글의 충성스런 독자였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격려를 해주고 칭찬을 해준 고마운 애독자였다. 내가 시를 쓰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 이제서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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