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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 중앙대학교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중대신문>에 연재했던 ‘나를 감동시킨 명문장’과 월간 『북새통』에 연재했던 짧은 서평 모음입니다. 새해 선물로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스무 개의 글을 모아보았습니다.
  미국에 계신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내내 건강하시고 뜻하신 일들 다 이루십시오.

  이승하 올림.


  1. 구약과 코란에서

  “되는 대로 하는 말은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지만,
  지혜로운 자의 혀는 상한 마음을 고쳐준다.”
    ―『구약』의 잠언에서

  “인간의 진정한 재산은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하는 선행인 것이다.”
    ―『코란』에서

  이번 여름에 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의 상당수가 어린아이들이었다. 이스라엘군 비행기들의 폭격과 함포의 포격,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현역군인보다 시민들이 더 많이 죽었고, 사망자 중 상당수가 어린아이들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유엔평화유지군이 분쟁지역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중동의 전화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헤즈볼라는 건재하고, 팔레스타인은 난민촌을 떠나 고토(故土)로 가고 싶어하고, 이스라엘은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주일이면 구약성경을 펼쳐들고 읽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중동의 국가들 중 상당수는 회교 국가이니 코란을 즐겨 읽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두 문장 다 둘 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성경에는 타인을 향해 따뜻한 배려의 말, 격려의 말, 용서의 말, 화해의 말을 하라는 가르침이 수도 없이 나온다. 코란에는 선행을 하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재산이라는 금언이 나온다. 이런 좋은 말이 담겨 있는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든 인간이 눈만 뜨면 총을 잡는다. 폭탄을 투하한다. 무고한 시민을 향해. 천진한 아이들을 향해. 폭력과 광기가 없는 날이 오기를!


  2. 노신의 글

  “희망은 원래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도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이 되는 것이다.”
    ―임현치, 『노신 평전』, 김태성 역, 실천문학사, 2006.

  여기, 완벽에 가까운 생애가 있다. 「광인일기」와 「아Q정전」의 작자 노신은 한 명 문학인에 불과했지만, 문학이 혁명의 봉화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노신은 중국 인민을, 안으로는 유교와 무지몽매와 봉건주의로부터, 밖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구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문학의 힘’으로. 그는 또한 구어체 문장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의 문학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하여 이를 완성한 사람이다.
  주변에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도박, 실업, 범죄, 병마……. 좌절은 겁쟁이의 친구다. 막연히 원하고만 있으면 도대체 뭐가 이루어지랴. 많은 사람이 걸어갔기에 길이 만들어진 것처럼 행동으로 옮겨야지 꿈이 이루어진다. 한국문학의 국부라고 할 수 있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열렬한 친일 행각을 생각해볼 때, 투철한 민족정신을 생애 내내 지니고 산 노신을 문학사의 앞머리에 갖고 있는 중국이 솔직히 많이 부럽다.


  3. 루이제 린저의 말

  “사랑은 또 다른 식의 창조물이에요. 아니면 그 이상의 창조 행위죠. 당신과 나, 우리는 그 둘을 다 할 수 있어요. 노래하기와 사랑하기. 예술에서건 정치에서건, 우리가 하는 일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일이고, 그건 언제나 사랑이에요.”
    ―루이제 린저, 『사랑했기에 나는 기꺼이 세상을 떠난다』, 김서정 역, 예하, 1998.

  독일연방공화국대공로훈장을 받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을 때였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그는 죽는 날까지 대한민국 땅을 밟지 못했다. 남북한 간의 대립과 광주항쟁, KAL기 폭파사건 등 고국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은 그를 늘 번민케 했다. 세계적인 현대음악가의 반열에 들기까지 창작상의 좌절로 고뇌의 늪에 빠졌던 적도 많았다. 바로 이런 때 『생의 한가운데』의 작가 루이제 린저를 만난 윤이상은 “이 모든 고통이 무엇 때문이죠? 왜,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당신은 어떻게 이 인생을 견디십니까?” 하고 물었다. 루이제 린저는 이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했다. 사랑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가 할 일이 아니겠냐고.
  윤이상 탄생 89돌을 기리는 ‘윤이상 평화음악축전 2006’이 도쿄에서 이 달 15일에 시작되어 서울, 베를린, 뮌헨, 평양까지 공연 여정이 펼쳐진다고 한다. 평양 공연의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정명훈 씨가 평양 윤이상관현악단을 지휘해 ‘윤이상 첼로협주곡’을 연주하고 정명화에게 배운 고봉인이 첼로 협연을 한다. 예술이 사랑을 창조하는 멋진 예가 아닌가.


  4. 제레미 리프킨의 글

  “오늘날 소는 인공 수정, 태아 이식, 복제 기술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소는 종의 적합성보다 시장 효용성을 목적으로 사육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에게 강제로 사료를 먹이고, 화학약품을 투약하며, 기계로 감시하고, 공장형 농장의 필수 조건에 부합하도록 규제하고, 관리하고, 쥐어짜고, 다른 모양으로 만든다.”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신현승 역, 시공사, 2002.

  9월 11일자 신문에서 우리나라 비만 환자가 5년 새 아홉 배 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육류 소비의 증가 때문이라는데 미국산 쇠고기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전해진다. 수백만 명의 인간이 곡식이 부족해 기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선진국에서는 사료로 사육된 육류, 특히 쇠고기의 과잉 섭취로 인한 질병으로 영양 결핍이 원인이 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서구인들은 곡물로 사육된 쇠고기를 탐식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풍요의 질병’인 심장질환과 당뇨병, 각종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이제는 이런 질병이 전세계적이다. 날로 증가하는 축산 단지와 쇠고기 소비에 대항하여 지구와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제레미 리프킨의 노력이 눈물겹다. 『엔트로피』의 저자는 21세기에 인류는 육식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명체들의 안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5. 에밀 졸라의 말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저는 그것을 맹세합니다! 저는 제 생명을 거기에 걸겠습니다. 그리고 제 명예까지 걸겠습니다. 인간적 정의를 대변하는 이 법정에서 이 성스러운 순간에, 저의 온갖 것을 걸고 맹세합니다. (…) 저는 제 조국이 사기와 불의의 제물이 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유죄판결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자신의 명예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제게 감사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에밀 졸라의 법정연설, 『들어라 세계여 시대여』, 박석기 외 역, 책세상, 1987.

  유태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유럽 사회에서 유태인으로서 프랑스군 대위가 된 드레퓌스는 군에서 기피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군의 극우주의자 몇 사람이 유태인과 공화주의자와 적국 독일을 한꺼번에 궁지로 몰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이다. 독일 대사관원 장교에게 군사기밀을 팔아 넘긴 죄로 체포된 드레퓌스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영화 「빠삐용」의 무대이기도 한 유명한 ‘악마의 섬’에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 사건을 수상하게 여긴 소설가 에밀 졸라는 분연히 일어나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는 논설을 발표한다. 극우주의가 팽배해 있던 프랑스에서 이 글은 그를 법정에 서게 했으며 프랑스군 참모본부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그는 유죄판결을 받는다. 바로 그 법정에서 졸라는 목숨을 걸고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다. 위의 글은 장장 1시간이 넘게 토해낸 진술의 마지막 부분이다. 영국으로 망명까지 한 졸라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출소한다. 한 사람의 무죄를 확신하고 군부 전체와 맞서 싸운 졸라의 용기는 나를 전율케 한다. 지식인이란 머리에 지식을 지닌 이가 아니라, 그 지식을 몸으로 실천하는 자임을 보여준 이가 바로 자연주의의 문을 열고 닫은 소설가 에밀 졸라이다.


  6. 전봉준의 글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라 근본이 쇠잔하면 나라가 망하는도다. 보국안민의 방책을 생각지 아니하고 밖으로 향제(鄕第)를 설치하여 오로지 제 몸만을 위하고 부질없이 국록만을 도적질하는 것이 그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우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일지라도 나라에 몸 붙여 사는 자라 국가의 위망을 좌시할 수가 없다. 팔로(八路)가 동심하고 수많은 인민이 뜻을 모아 이제 여기에 의기(義旗)를 들어 보국안민으로써 사생의 맹세를 하노라. 금일의 광경은 비록 놀랄 만한 일이기는 하나 경동하지 말고 각자 그 업에 안착하여 다같이 태평세월을 빌고 함께 임금의 덕화를 입게 된다면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노라.”
    ―김의환, 『전봉준 전기』, 정음사, 1974.

  이 글은 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의 총대장으로 활약한 혁명가 전봉준이 직접 써서 백성들에게 반포한 창의문(倡義文)의 마지막 부분이다. 1894년 4월, 전봉준은 농민군의 전열을 정비하여 전북 무주와 장성으로 진격하면서 혁명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고 백성의 동요를 막고자 저잣거리에 이 글을 써 내걸었다. 몰락양반(잔반)의 후예인 전봉준은 다섯 살 때부터 한문 공부를 시작하려 열세 살 때 한시를 지은 문장가였다. 그래서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은 인륜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글로 시작하는 이 「창의문」은 읽는 이의 피를 끓게 한다. 천민으로 태어나면 평생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세상, 청나라와 일본 등 외세를 끌어들여 의존하려는 사대사상, 탐관오리들의 발호, 삼정의 문란…. 전봉준은 이런 것들을 뜯어고치기 위해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사상과 국방을 튼튼하게 하고 백성을 안심시키는 정치를 해달라는 보국안민사상이 혁명의 기본정신이었지만 농민군은 개화파가 끌어들인 일본군에 의해 대다수 전사하거나 처형된다.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낸 동학농민전쟁의 패배 이후 조선은 국권을 잃고 만다.


  7. 강우규의 시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강우규, 「사세시(辭世詩)」 전문                        

  강우규(1855~1920)의 이 짤막한 유고시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쓴 것이다. 강우규는 북간도와 연해주를 넘나들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 8월에 서울에 잠입했다. 9월 2일, 남대문정거장으로 간 그는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총독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일본의 고위 인사 37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 의사는 그 해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는데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에 쓴 시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강우규는 몸은 있어 사형이라도 당할 수가 있지만 나라가 없는 것이 너무나 비통하다고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참으로 의연하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시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음풍농월이 아니면 유유자적이 아닌지. 학생들에게는 치열하게 쓰라고 요구하면서 나 자신은 그저 습관적으로 써온 것이 아닌지 뼈저리게 반성하게 된다. 나라를 빼앗기자 울분을 참지 못해 음독자살한 황현이나 식민 지배의 최고 우두머리를 암살하려다 붙잡혀 사형당한 강우규의 애국심을 지금 이 시대에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혹은 ‘목숨을 다해’ 시를 썼던 두 사람의 자세는 우리 모두가 배울 필요가 있다. 쉽게 씌어진 시는 쉽게 잊혀질 터이니.


  8. 부처와 예수의 마지막 말

  부처 : “생자(生者) 필멸(必滅)하니, 정근(精勤) 정진(精進)하라.
    ―『수타니파타』에서

  예수 : “주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여,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목이 마르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다 이루었다.”
    ―『성경』 루가복음, 마태복음, 요한복음 참조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한 말을 모아보면 흥미롭다. 괴테는 임종시에 방이 어두웠는지 “조금 더 빛을!” 하고 외친 후에 죽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 이어 『판단력비판』을 씀으로써 3부작을 완성했기 때문인지 “이제 되었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하는 시저를 미워한 공화주의자들이 원로원에서 시저를 암살하기로 했다. 칼을 꺼내든 무리 중에 시저가 평소에 총애했던 브루투스가 끼어 있자 시저는 “브루투스 너마저도!”라고 외친 뒤에 숨을 거두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는 괜찮아……”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세계 3대 종교 중 불교의 창시자 부처는 살아 있는 자는 반드시 죽에 되어 있으니 죽은 그날까지 열심히 참선하고 보시하면서 자기를 갈고 닦아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충고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예수가 생의 마지막에 남긴 말들을 순차적으로 써보았는데 참으로 인간적이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이들을 용서해주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도 그렇고, 처형을 함께 당하게 된 도둑이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나를 기억해달라고 간청하자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것도 그렇다. 하느님을 향한 애소도, 목마름에 대한 호소도,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의탁도, 최후의 한마디도 예수의 생애가 ‘완전한 생애’가 되게 한다. 범인인 우리는 죽기 직전에 무슨 말을 유언으로 남길까? “다 이루었다”고 말하기란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구세주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려니.
  

  9. 파블로 네루다의 말

  “나는 어두운 지방, 지리적으로 싹둑 잘려져 다른 모든 지방에서 고립되어버린 나라에서 왔습니다. 나는 시인들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았던 사람이었으며, 내 시 역시 지역적이었고, 고통에 찼었고,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바로 이것 때문에 내가 내 시와 함께, 또 내 깃발과 함께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끝으로 선한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에게, 시인들에게, 랭보의 다음 시구 안에 우리 전체의 미래가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단지 불타는 참을성만을 가지고 우리는 전 인류에게 빛과 정의와 그리고 위엄을 줄 빛나는 도시를 정복할 것이다.” 이처럼 시는 결코 헛되어 노래되지 않을 것입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서

  1971년, 칠레에게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수상연설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철학을 설파한다. 그리고 자화자찬을 하는 대신 프랑스 상징파 시인 랭보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시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천명한다. 전 인류에게 빛과 정의와 위엄을 줄, 빛나는 도시를 언어의 힘으로 정복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으므로 우리는 “불타는 참을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런 인내심이 시의 생명력을 천년 만년 이어갈 것이라고. 아닌게아니라 우리는 2천 년도 더 전에 불려진 유리왕(예소야의 아들이다)의 사랑노래 「황조가」와 백수광부의 처가 목 놓아 불렀던 「공무도하가」를 기억하고 있다. 중국 두보의 시가 좋다는 소문을 접하고서 성종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두보의 시를 번역하게 했기에 우리는 1200년도 더 전의 시인 두보를 『두시언해』를 통해 공부하고 있다. 네루다는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망명지를 떠돌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는 칠레의 시인이 아니라 세계의 시인이 되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시집이다.


  10.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시

  그대여, 방구석에 처박힌 시인이여. 그들이 내일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증오의 노래를 부르도록 명령을 내린다면, 선택은 오로지 하나.
  아니오, 라고 말하라.
  그대여, 병상에서 진료하는 의사여. 그들이 내일 장정들을 갑종으로 판결하도록 명령을 내린다면, 선택은 오로지 하나.
  아니오, 라고 말하라.
  그대여, 설교단에 선 목사여. 그들이 내일 죽음을 축복하고 전쟁을 성스럽게 미화하라고 명령을 내린다면, 선택은 오로지 하나.
  아니오, 라고 말하라.
  그대여, 증기선을 타고 있는 선장이여. 그들이 내일 더 이상 밀을 실어 나르지 말고 대포나 장갑차를 실어 나르라고 말한다면, 선택은 오로지 하나.
  아니오, 라고 말하라.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그렇다면 선택은 오로지 하나뿐!」에서

  병상에 누워 쓴 이 글은 절규에 가깝다. 반전의 메시지가 가슴을 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폴란드와 프랑스 함락에 만족하지 않고 러시아까지 진격하였고, 군인 보르헤르트는 몸도 약한 터에 러시아 전선에 배속이 된다. 한창 추운 1942년 1월에 황달에 걸려 입원한 보르헤르트는 병자였지만 치료를 받는 대신 재판을 받는다. 히틀러의 전쟁 도발이 너무나 불만스러웠던 그는 수백만 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나치 정권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가 발각되어 군사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정확히 26년 6개월을 살았고 2년 정도밖에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보르헤르트는 독일 문학사에서 금자탑의 위치에 올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학사를 기술하는 문학사가 어느 누구도 보르헤르트를 소홀히 다루지 않을 정도로 그의 문학사적 위치는 확고하다. 그는 나치스 정권의 침략 전쟁을 반대한 반전론자였기 때문에 군 생활의 거의 전부를 군 교도소와 군 병원을 전전하며 보냈다. 이라크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전화(戰火)를 거의 매일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는 나는 보르헤르트의 용기에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1. 기독교인들의 맹세

  “형제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 기다려라. 기다리는 중에 내가 변화된다. 그러면 변화된 나로 인하여 형제가 변화될 것이다.
  악은 실체가 아니다. 선의 부족 상태일 뿐. 그러니 선을 북돋워라. 악은 몰아댈수록 야수처럼 자라지만 선은 식물처럼 기다림 속에 자라난다.“
    ―초대 기독교 수도 공동체 규칙서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기독교인들은 공동체를 만들어 수도생활을 하면서 ‘규칙서’라는 것을 만들었다. 일종의 서약서라고 할 수도 있고 기도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글은 종교적인 가르침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변하지 않고 남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꾸지람을 많이 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내가 과연 훌륭한 스승 상이었는지 반성이 많이 된다. 변화된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어야 하거늘 네 탓이다 네 잘못이다 하고 남을 비방하는 데 앞장서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선명하게 구분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2007년에는 우리 모두 선을 북돋우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사실 완전한 악인이 어디 있는가. 사형수도 사형 집행에 즈음해서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맑은 영혼으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악은 실체가 아니고 선의 부족 상태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에도 나는 때때로 증오심에 사로잡혀 고통을 겪고 때로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기반성과 착한 일 하기로 마음의 수양을 했던 초대 기독교 수도 공동체 규칙서를 꺼내들고 관용과 이해, 화해와 용서의 철학을 가슴에 새겨야 하겠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지 않으리라. 분노해야 할 때는 정당하게 분노하는 것이 내 마음속의 악을 몰아내는 일일 테니까.


  12. 샘 키스의 글

  “다 큰 어른들이 음식을 깨작거리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우선 전혀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먹는 음식이 너무 고급화되어서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더 이상 즐길 줄 모르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으면 아쉬워할 줄도 모른다. 내가 큰 짐승들을 통해 배운 게 있다. 그들이 먹는 것은 하루하루 별반 다를 게 없다.”
  ―샘 키스, 『알래스카의 늙은 곰이 내게 인생을 가르쳐주었다』, 이한중 역, 도서출판 비채, 2006.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 나온 것이 1854년, 그로부터 119년 만인 1973년에 리처드 프뢰네케의 일지와 사진을 바탕으로 샘 키스가 『한 남자의 야생:알래스칸 오디세이』를 썼고, 마침내 올해 우리나라에서 ‘알래스카의 늙은 곰이 내게 인생을 가르쳐주었다’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의 장점은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체험의 기록이다. 환경에 관한 많은 책자가 통계치에 입각해서 도시인이 쓴 것인데 반해 이 책은 저자가 자연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것이다. 소로우는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고, 이 책의 주인공 리처드 프뢰네케는 알래스카에서 아주 오래, 그냥 살았다.
  둘째,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력이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를 방불케 한다. 그만큼 아름답다. 샘 키스의 시적인 문장이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셋째, 인간 지혜의 집적이 이룩한 문명이 편리와 유용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수많은 질병과 마음의 아픔을 가져다준 괴물임을 말해준다. 이 책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공허하게 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相生의 길을 모색케 한다. 또한 저자는 자연 예찬을 통해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 소박이 미덕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소박한 집, 식탁, 생활, 꿈이 우리에게 무병장수를 가져다주는 반면 욕망은 질병을 야기한다. 욕심이 없는 자에게 자연은 꽤 관대함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알았다.
  넷째,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이 수집 장의 선명한 사진을 통해 펼쳐진다.  
  30년 전에 나온 책……. 알래스카는 지난 30년 동안 파괴되지 않았을까?


  13. 닐의 말

  “가르치는 문제에서 부딪히는 장애는 대학 입시가 그것을 좌우한다는 것이고 또 그 시험 문제는 내가 학생 때 보았던 것과 거의 똑같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제곱근을 배워야 한다. 내 직업이 뭐냐를 떠나서, 나는 실생활에서 제곱근을 사용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돈을 나누는 데도 긴 나눗셈을 쓴 적이 없었다.”
    ―A.S. 닐,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 한승오 역, 아름드리미디어, 2006.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나는 대학생이 된 기쁨만큼이나 수학 공부를 하지 않게 된 기쁨 때문에 환호작약했었다. 12넌 동안 나는 수학 때문에 솔직히 불행했었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6학년인 아들을 엄마가 매일 한두 시간씩 ‘잡는다’. 어떤 때는 아이의 책이 찢어지고 어떤 때는 엄마의 편도선이 붓는다. 닐은 학생에게 하고 싶은 공부를 알아서 하라고 자율을 주었다. 그 학생들 중에 잘못된 예는 거의 없었다.
  문학을 전공하는 나의 제자들은 대다수 발표력이 부족하고 토론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초중고교 재학시 발표를 거의 해본 적이 없었으며, 작품에 대한 토론은 더더구나 해본 적이 없다.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들인 것이다. 합평식으로 수업을 전개하면 절반 이상이 시간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 세상 학교의 태반이 지금도 ‘권위’와 ‘규율’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창의력’과 ‘자율’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이런 학교 교육에 반기를 든 서머힐의 창시자 A.S. 닐의 교육 방식과 교육 철학, 교육의 사례가 기술되어 있는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이 이 땅의 교사들에게 널리 읽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교사의 마음이 제자에게 전해지는 학교, 아이들의 꿈이 교사에게 전달되는 학교, 그곳이 바로 서머힐이다. 서머힐은 또한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되는 학교이며 유희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학교이다.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개척하게끔 가르치는, 아니 가르침 대신에 깨달음이 있게 하는 학교가 A.S. 닐이 만든 서머힐이다. 너무 늦게 번역되었다.


  14. 이기와의 글

  “비구니 절에는 남자가 하는 일을 여승들이 다 한다. 땔감을 구해오는 일도, 전기 배선을 하는 일도, 하수구 뚫는 일도, 못질, 삽질, 트럭 모는 일도 여승들이 하고 있다. (…) 백장 선사가 말씀하신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가르침에 따라 대지에 땀방울을 흘린 만큼 밥을 먹는다. 불자들이 시주하는 공양물도 있겠지만 토지를 경작해 식량의 50%를 사찰 내에서 해결하고 있다. 땀을 흘리며 일에 몰두하는 뒷모습만큼 아름다워 보이는 모습도 없다.”
    ―이기와, 『비구니 산사 가는 길』, 노마드북스, 2006.

  일단, 겉모습이 아름다운 책이다. 책의 판형, 지질, 인쇄, 활자 등에 나무랄 데가 없다. 사진작가 김홍희 씨가 찍은 산사, 산사 가는 길, 산사의 주변 풍광 사진이 하나하나 너무 아름답다. 이보다 더 잘 찍을 수 없는 사진이 수십 장 책을 수놓고 있어 책을 넘기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책의 본문은 시인 이기와 씨가 전국 13군데 비구니 사찰을 탐방한 르포이다. 시인은 평창 오대산 지장암, 청도 호거산 운문사, 울산 가지산 석남사, 양산 천성산 내원사 등을 직접 찾아가서 사찰(혹은 암자) 경내를 샅샅이 살펴보고 그곳에서 수도하고 있는 비구니들을 만났다. 편편의 글에 담겨 있는 것은 비구니들의 생활과 내면, 가람의 아름다움과 역사 등이다. 이런 것뿐이라면 책은 딱딱한 탐방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와 씨는 놀랍도록 유려한 필체로 자연과 인간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청정 공간을 그린다. 세속인의 입장에서 수도인의 생활과 내면을 그린다. 글 가운데에는 고사(故事)도 나오고 자신의 과거지사도 나오고 시도 나오고 잡담도 나온다. 깊은 철학적 사유를 펼치는가 하면 인간의 무한 욕망과 비구니를 백안시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형이상학적 담론과 시정의 한담이 교대로 펼쳐지니 읽은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결국 비구니들이다. 나 같은 속세의 남자가 절에 가지도 않고서 비구니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크나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음을 감사드린다.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리라. 한참을 써야 할 테니까.
  저자와 사진작가도 이 한 권의 책을 위하여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출판사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는 책이다.

  
  15. 김열규의 글

  “시골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그것은 얽히고설킨 우리들의 삶의 뿌리라고…. 나무 뿌리는 어울러서 등걸만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각을 버티고 있는 힘살. 우리들 삶에도 그 같은 뿌리가 있어 그것을 길, 시골길이라 했다. 길에 길이 연하여 마을과 마을이 둥우리를 이루고, 길 너머 또 길이 있어 고을끼리 사로 하나가 된다. (…) 신행 가는 딸의 뒷모습이 마지막 사라지는 등마루 길에 못 박히던 늙은 어머니의 시선에 비친 것은 멀어져 가는 세월이 아니었던가.”
    ―김열규, 『꿈엔들 잊힐리야』, 호영출판사, 2006.

  책표지에 적힌 “한국인의 정서를 정갈하게 담아낸 新 귀거래사”에 이 책의 성격이 고스란히 설명되어 있다.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예컨대 시골길, 장터, 나루터, 포구, 아리랑 고개, 징검다리, 샘터, 개울, 물레방아, 서낭당, 뒷동산, 앞마당, 구들방 아랫목 등에 대한 김열규 교수의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있는 산문집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정신이 그런 장소에 깃들어 있었건만 이제 우리는 아스팔트 위 꽉 막힌 승용차의 대열 속에서 화를 버럭버럭 내고 있거나 높은 빌딩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종일 쳐다보고 있다. 귀향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본 김 교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제는 그 고향마저도 심하게 오염되고 훼손되고 있다. 아늑하고 넉넉한 고향이 어디 있으랴.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저자의 향수가 절절하여 가슴 아프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는 모든 것이 좋았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이 도시를 어떻게 가꾸고 정화시키느냐에 대해 말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헌만의 사진 중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참 많다.


  16. 잭 캠필드 외 지음

  “나는 고통스럽게 내뱉는 그녀의 거친 호흡에 박자를 맞춰가면서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순간 이전까지 내게 중요했던 것들이 과연 지금도 똑같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곧 긴장이 풀렸는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수녀님 중 한 분이 나의 절망적인 눈빛을 보고 다가오셨다.”
  ―잭 캠필드 외, 『더 좋은 세상을 위한 행진』, 도솔출판사, 2006.

  이 지구상에 포성이 멎을 날이 언제일까. 폭력 기사가 신문에 나는 않는 날이 언제일까. 그런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폭력과 광기의 나날’과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 외 여러 사람이 쓰고 모은 또 한 권의 ‘101가지 이야기’ 시리즈인 『더 좋은 세상을 위한 행진』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월드컵 축가나 화려한 쇼, 일주일이면 시드는 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다.
  위에 인용한 글은 스테이시 스미스라는 여자가 막 숨을 거두는 인도의 거지 여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어 편히 영면케 하는 장면이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에게 매일 자기 도시락을 건네는 3학년 아이 케이티의 우정, 21세 청년인 내 아이를 살해한 살인범 찰스에게 악수를 청하는 어머니의 자비심, 천방지축 문제아들을 작문 실습을 통해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 작다리 선생님의 지혜…….
  이 책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 발 양보하는 정신으로 이웃과의 화해를 모색하고,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휴먼 스토리가 101개 소개되어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들려오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와 천재지변들, 전쟁의 피해 등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을 읽으니 그래도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가들이 아니라 약한 자를 배려할 줄 아는 장삼이사이다.


  17. 바바라 호지슨의 글

  “아마도 여성이 출간한 첫 오스트레일리아 여행기는 군함 고르곤 호의 선장 존 파크의 부인인 메리 앤 파커의 『세계 일주 항해』(1975)일 것이다. 그녀의 항해는 희망봉, 오스트레일리아, 노퍽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 바다 여행은 견딜 만했다. 죽은 사람은 승무원 두 명뿐이었다. (…) 그들은 귀향할 때 사람들과 가축, 식량으로 가득 차 있는 배에다 캥거루, 주머니쥐, 그리고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온갖 진기한 물건’을 함께 실었다. 그리고 12월에 돛을 올렸다. 파커 선장은 도중에 황열병으로 죽었고, 메리는 과부가 되어 상륙했다.”
  ―바바라 호지슨, 『세상에 못 갈 곳은 없다』, 곽영미 역, 북하우스, 2006.

  16~19세기의 세계사는 서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발견의 역사, 개척의 역사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남극, 북극 등 세계 곳곳의 오지를 탐험하고 개척한 사람으로 우리는 마젤란, 리빙스턴, 항해왕 핸리, 아문센, 콜럼버스 등 남성의 이름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이것이 완전히 잘못된 선입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부엌을 박차고 나가 오지를 탐험하여 훌륭한 기행문을 남긴 여성이 수백 명에 달한다.
  저자 바바라 호지슨은 수많은 책을 뒤져 탐험에 나선 여성들의 활약상을 추적하였다. 때때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용감하였고 더 인내심이 강했다. 부부가 함께 여행에 나섰을 때, 꼼꼼하게 여행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 여성의 몫인 경우도 많았다. 이 책의 강점은 이런 기록의 내용보다도 수백 컷에 달하는 그림과 사진이다. 깨끗하게 인쇄된 그림과 시진만 보아도 책값은 건지고 남는다.


  18. 스야후이의 글

  “소자유는 평생 형으로 인해 수많은 고생을 겪었다. 소동파는 성품이 직설적이고 논쟁을 좋아하며 불공평한 것을 참지 못했기 때문에 자주 좌천을 당했다. 그리고 좌천을 당할 때마다 소자유도 연루되었지만, 그는 한 번도 형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수록 더욱 형을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 소동파가 세상을 뜬 후 그는 형이 남긴 글들을 감히 보지 못했다. 글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스야후이, 『소동파 선(禪)을 말하다』, 장연 역, 김영사, 2006.

  형 소동파는 감옥에 갇혀 틀림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동생 소자유에게 시를 두 수 전해준다. 그 중의 한 수는 이렇게 끝난다. “너와 더불어 세세생생 형제로 지내리니/ 다음 생애에는 끝내지 못한 인연을 다시 맺으리라.” 소자유의 형이 써준 이 시를 읽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책의 제목만 보면 무척 어려울 것 같지만 이 책의 강점은 쉽다는 데 있다. 장시 「적벽부」를 쓴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가 불가의 진리를 이렇게 구수한 일화들로 전해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선불교’라는 것이 고차원적인 형이상학의 세계일 거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에게 저자 스야후이는 소동파에 얽힌 수많은 에피소드와 그가 남긴 시편을 통해 너무나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사는 일에 쫓겨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내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소동파의 시와 그가 남긴 일화들, 그리고 시인의 불교적 성찰은 청량음료 몇 배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지질도 좋고 인용문이나 인용시의 색깔이 너무 예쁘다.  


  19. 안건모 씨의 글

  “우선 눈이 좋아야 멀리 숨어서 단속하는 경찰관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이 나쁘면 일 년에 몇 번씩 정지 먹는 딱지를 뗄 수밖에 없다. 달리기 실력이란 속된 말로 ‘조진다’고 한다. 운전하면서 옆 차 백미러와 내 차 백미러 사이에 두꺼운 도화지 한 장 끼우면 딱 맞을 정도로 사이를 두고 70~80킬로미터로 조질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종점에 들어가서 오줌 눌 시간을 벌 수 있다. 또 아무리 눈이 좋고 잘 조진다 해도 눈치가 없으면 정류장을 통과할 수 없다. 저 손님이 내 차를 탈 ‘말뚝 손님’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고 술에 취한 사람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정류장을 통과해야 밥 먹는 시간 5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지독하게 참을성이 없으면 끝없이 싸우자고 덤비는 옆 차 기사들과 또 손님들과 하루 종일 대가리 터지도록 싸울 수밖에 없다.”
    ―안건모,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보리, 2006.

  <한겨레신문>을 통해 자주 만난 안건모 씨의 칼럼과 체험담이 책으로 묶여져 나와 관심을 갖고 읽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한 장 있을 뿐이고, 검정고시를 거쳐 한양공고에 들어가 2학년 때 중퇴한 학력이지만 글을 정말 잘 쓴다. 20년 동안 버스기사로서 서울 시내를 누비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글로 씌어졌고, 그 글이 모여 책이 되었다. 짤막짤막한 글마다 미소가 머금어지는 재미와 코끝이 찡한 감동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뒤부터 한산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나를 태우지 않고 휑하니 달려가는 운전기사한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때때로 난폭하게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게도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나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무표정한 운전기사에게도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이해 못할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이 책 덕분이다. 나는 서울시내 버스 운전기사들을 앞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할 것이며, 애틋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서울 시내 버스 운전기사들의 삶과 애환, 처지와 소망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둘째, 시내버스 회사의 사업주들이 운전기사들의 복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셋째, 시내버스 노동조합에 문제가 많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운전을 배우지 못했다. 앞으로도 배울 생각이 없다. 나는 버스기사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애용할 것이다. 버스기사를 그만두고 『작은책』 발행인으로 나선 안건모 씨의 수입이 많이 줄어들 텐데, 걱정이 된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라도 몇 쇄 찍었으면 좋겠다. 버스기사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오게.


  20. 도미니크 보나의 글

  “로맹 가리는 이 텍스트의 발표로 야기될 한바탕 소란의 덕을 보려 하지도 않았고, 노골적인 혹은 기분 나쁜 몽타주의 성공을 즐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소중한 관객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음미하며 먼저 떠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아내려 헛되이 애를 쓴, 짧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마지막 텍스트에서, 그는 자신에게 ‘서정적인 환상’의 눈부신 본보기인 변장의 온전한 의미를 제시하고, 자기 운명의 더없이 명철한 주인으로서 삶에 대해 이렇게 결론짓는다.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소. 그럼 안녕히.“
    ―도미니크 보나, 『로맹 가리』, 문학동네, 2006.

  로맹 가리는 66세 때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비평가상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미국에서 주는 최우수단편상을 수상한 로랭 가리는 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평가들의 비난을 사기 시작한다.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영화배우 진 시버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본부인과 이혼을 한 뒤에 진과 재혼을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여러 편 썼고, 자작 시나리오를 여러 편 감독했다. 비평가들이 그를 무자비하게 공격하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 앞의 생』으로, 그는 또다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욕만 퍼붓는 프랑스 평단에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해준 것이다. 실종 8일 만에 진 시버그의 시체가 발견되자 가리는 15개월 뒤에 권총자살을 한다. 자신이 왜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야만 했는지를 밝힌 ‘텍스트’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은 자살 다음해에 출간된다.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는 소설가 로맹 가리의 생애를 완벽하게 재현해 놓은 전기 작품이다. 이 책의 강점은 전기가 재미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 데 있다. 온갖 자료를 모아 나열하는 식의 전기가 아니라 한 작가의 고생과 고뇌가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전기의 표본이 되는 책이다. 온갖 악평과 구설수, 편견 속에서도 로맹 가리는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들은 하나같이 뛰어났다. 이 전기가 우리나라에 로맹 가리 펜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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