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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웅산’은 내게 두 가지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첫째는 1983년의 아웅산 묘지 폭발 사건. 전두환 대통령이 서남아시아를 순방하다 들른 버마(지금의 이름은 미얀마)의 아웅산 장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각료와 수행원 열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에 분노한 버마는 북한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또 하나는 장군의 딸 아웅산 수지 여사가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일. 수지 여사는 바로 전 해, 당수임에도 입후보를 못함은 물론 자택 연금이 된 상태에서 치른 총선거에서 81%의 의석을 차지하는 폭발적인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수십 년 군사 정권의 굴레를 벗으려 했다는 이유로 자택에 연금이 된다. 사랑하는 영국인 남편과 두 아들의 목소리조차 못 듣는 긴 세월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버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은 독립 직전에 암살 당한다. 국가는 미망인에게 인도 대사를 주어 예우하였고, 딸 수지는 열다섯 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인도 뉴델리에서 살게 된다.

  뉴델리에 있는 대학에 잠시 다니다가 영국 유학을 떠나면서 어머니의 슬하를 벗어난 수지는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 철학, 경제를 전공해 3등으로 졸업한 뒤 뉴욕의 유엔본부에 취직했으니, 버마가 낳은 최고의 재원이었던 셈이다.

  대학 시절 수지는 집안과 외모에 있어 지극히 평범한 마이클 앨리스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연애할 당시 마이클은 직업도 없었으며 명문대학 출신도 아니었다. 히말라야에 심취해 평생 산이나 연구하겠다는, 어느 연구소의 하급 직원이었다.

  가난한 영국 청년 마이클은 동양에서 온 처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수지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만다. 마이클의 끈질긴 구애는 이국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주었지만 수지는 선뜻 응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저는 반드시 버마(1989년,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제압한 군부는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수도 이름을 ‘랑군’에서 ‘양곤’으로 바꾼다)로 돌아갈 겁니다. 국적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아기가 태어나도 영국 국적 대신 버마 국적을 갖게 할 거예요."

  마이클은 수지의 말에 동의한다. 수지가 유엔에서 일하는 동안 두 사람은 2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수지가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저와 제 조국 사이를 가로막지 말아 주세요. 버마 사람들을 위해 제가 행할 기본적인 의무를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마이클은 이 모든 요청에 동의한다. 7년 동안의 사랑이 무르익어 결혼식을 올린 것은 1972년 설날, 런던에 있는 수지의 후견인 자택에서였다. 두 사람의 신혼여행지는 부탄이었는데 부부는 그곳에 정착해 1년 반을 산다. 남편은 그 지역을 연구했고 아내는 외무부에서 유엔 관계 일을 돕는다. 런던으로 돌아와 첫아이를 낳더니 세 식구가 이번에는 네팔로 떠난다. 역시 마이클의 연구 때문이었다.

  반년을 거기서 산 뒤 런던으로 돌아와 마이클은 대학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고 수지는 가정주부가 된다. 둘 사이에 또 한 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수지는 청소와 세탁, 요리와 뜨개질 등 온갖 집안 일에 여념이 없는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틈이 나면 소설책을 읽고 피아노를 쳤다.

  그녀의 운명이 급선회한다. 1988년 4월, 모친을 간병하기 위해 런던에서 랑군으로 갔을 때였다. 군인들이 반정부 시위대에 가한 총격으로 거리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수지는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해 8월 26일, 군중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연설을 하고는 시위대의 선봉에 선다.

  시위는 계속되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당 결성, 선거 유세, 81% 의석 획득, 당원들 무더기 체포, 기나긴 연금의 시작, 노벨평화상 수상…. 그녀는 가족과의 해후를 포기하고 민주주의의 화신이 된다. 연금이 풀릴 때까지 그녀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전화 한 통화 할 수가 없었다. 편지도 교환할 수 없었다.

  군인들이 계속 따라다니며 협박하는 와중에도 전국 유세를 강행할 때였다. 수지는 잠자리에 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발이 차가워. 마이클의 따뜻한 발이 그리워.”

  자택연금이 6년 만에 해제되자마자 당 사무총장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하고 다시 가택연금, 2000년 9월부터 수지 여사는 또다시 남편의 따뜻한 발을 그리워하게 된다.

                                           ―졸저 『빠져들다』(좋은생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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