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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성격은 자기의 운명이다.

인간의 성격은 자기의 운명이다.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읽은 솔 벨로우의 오기 마치의 모험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난한 유태인 청년의 젊은 날의 방황을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인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아직도 소설 첫 장의 첫 구절은 또렷이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이 소설을 읽고 30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는 이 말이 완벽하게 나에게도 적용될 뿐만 아니라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너무도 끔찍한 진리가 아닌가? 하고 스스로가 놀랄 때가 많다. 지난 나의 삶을 회고해 볼 때 운명처럼 그러한 삶이 내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나의 성격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조금 생각을 바꾸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내 주변의 많은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그들 또한 어쩔 수 없는 자신들의 성격에 의하여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첫사랑에 실패한 후 그 충격으로 지금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내 친구와 부모가 보기에는 3년이나 쫓아다녔던 정말 건실한 남자친구를 하루아침에 차버리고 건달패 같은 놈과 사귀고 있는 내 딸이나 바람나서 남편을 배반한 아내를 일 년이 넘게 잊지를 못하고 헤매는 직장동료를 볼 때 나는 인간의 성격은 자기의 운명이다. 라고 기원전 500년에 이미 갈파한 헤로도토스의 이 천재적 명언에 새삼 감탄하는 것이다. 오로지 추억 속에서만 완벽한 사랑을 설정해 놓고 그 모든 현실의 사랑은 불순한 것으로 여기는 그 친구의 결벽증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3년 동안 괴팍한 자신의 성격도 다 참아내고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모습에서 진실한 사랑의 참모습을 보기를 거부했던 오만한 내 딸의 성격이 아니었던들, 매 주말마다 기도원에 간다며 외박하고 불륜을 벌였던 아내를 내 직장동료가 좀 더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의 운명 또한 바뀌었으리라.

그러나 인생이란 현실은 항상 진행형이며 ‘만일 뭐 뭐 했었더라면’은 세월이 흐른 후 가정법일 뿐이다. 여기에 인생의 두려운 모습이 있다. 즉 인간이란 결코 자신의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삶이란 자신의 성격과 마주치는 사건과의 연속적인 작용과정인데 인간은 절대 현재에는 자기 삶을 reflect할 수 없고 오직 세월이 흐른 후에만 회고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좀 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결코 자기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를 자기방식대로만 보려는 것은 아닌가? 더 나아가서 사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세계가 아니라 각기 개개인이 바라보는 다른 세계의 무수한 집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결국 실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 것은 마음속에서만 일어난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그린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들은 각기 개인의 마음속에 나름대로의 우주를 만들고 그 우주를 숙명처럼 받들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자연이라는 객체가 존재하고 인간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자연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고전물리학의 순진한 객관주의가 20세기에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의하여 여지없이 깨지고 오히려 모든 세계를 인식의 주체인 마음의 작용으로 보는 불교나 도교 같은 동양적 세계관이 우주의 본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 최근 현대 물리학의 추세이다.

거기엔 눈이 미치지 못하고
말이 미치지 못하고, 마음이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며.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을
그것을 어찌 가르칠 수 있으라.(우파니샤드)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노자)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말 그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라든가 “그(그녀)를 사랑할 수는 없어요.” 등등으로…….
그러나 사실 이 말은 “나는 정말 그것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요.”라든가 “그(그녀)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요.”등으로 바뀌어야한다. 우리의 마음은 사실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렇게 보는 세상은 그 실재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스스로의 굳어진 성격에 의하여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보며 그렇게 아는 세상을 자신의 아집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다. 그래서 인간의 성격이 자기의 운명인 것이다.

어느 날 저녁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소주 한 잔을 했는데 평상시보다 더욱 침울해진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했더니 며칠 전 한국의 그 첫사랑의 애인이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내가 “박 형! 이제는 가슴에서 그녀를 보내고 박 형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지.”했더니 친구는 내가 지금 슬퍼하는 것은 그녀가 죽었다는 데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조금도 슬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 반평생을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는데도 슬퍼지지 않는다면 자신은 그동안 그 누구를 사랑하며 가슴앓이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침 공기가 조금은 쌀쌀해져 가을의 우수를 느끼는 요즘 부쩍 나는 나의 성격으로 인하여 엉망이 되어 버린 지난날을 쓰라린 심정으로 회상해 보곤 한다. 그리고 때로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    

멀고먼 훗날 어딘가에서 나는

한숨 지며 오늘 일을 말하고 있으리라.

노란 숲속에 두 길이 갈라져 있었는데

내가 인적이 덜한 길을 택했었기에

오늘의 이 운명이

정해졌다고......!



아아! 그리고 나는 말하리라.
인간의 성격은 자기의 운명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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