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4 15:22

날아다니는 길

조회 수 20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날아다니는 길



                                                                                                                                                                                                                  이 월란



1.
봇짐 지고 미투리 삼아 넋 놓고 걸었었지 않나. 굴렁대로 굴리며 놀더니 네 발 도롱태를 달아 눈이 번쩍
뜨여 미친 말처럼 달리기 시작했지. 방갓 아래 세월아 네월아 눈 맞추던 백수같은 노방꽃들도 이젠 머리
채 잡혀 끌려가는 바람난 아낙네처럼 KTX의 차창 밖에서 눈 한번 못맞추고 휙휙 낚아채여 허물어지고
날아가던 새들도 주둥이를 헤 벌리고 쳐다보았지.


2.
어둠이 가로수나 지붕들을 우걱우걱 삼켜버리고 나면 잘 들어봐, 길들의 소리가 들려. 꿈의 유골이 다닥
다닥 귀를 맞추며 일어서는 소리가 들려. 그래서 은빛 날개를 달고 산호 속같은 미리내 숲길을 날아다니
고 있지. 그것도 모자라 지상의 모든 길들이 합세해서 액정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온 그 날 모반의 세월
을 감아 쥐고 아이디 몇 자로 익명의 굿길을 날아다니기 시작했어. 구석기 시대를 꿈꾸는 하이퍼 텍스트
의 언어로 부활한 사랑을 속삭여. 야반도주를 해.


3.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장을 받은 그 날 클릭한 2~3초 후에 태평양의 갱도를 빛처럼 날아온 녹음
된 목소리가 전해 주는 인증번호를 받고 난 내가 복제당하거나 도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육감에 맨발의 잠옷바람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더니 오래 누워 있던 길들이 가등 아
래 허연 뼈만 남기고 사라졌더군. 어둠의 정적을 물고 서 있던 노상방뇨된 꽃들이 길들이 넋 놓고 달아난
허공에서 뿌리채 흔들리며 멍하니 쳐다보았어.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7 오월-임보 오연희 2016.05.01 291
606 오월의 아카사아 성백군 2014.06.08 315
605 오월의 찬가 강민경 2015.05.29 298
604 오해 하늘호수 2017.10.12 315
603 시조 오후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4.25 86
602 시조 옥수수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10.30 62
601 옥양목과 어머니 / 김 원 각 泌縡 2020.05.09 216
600 옥편을 뒤적이다 박성춘 2011.03.25 459
599 올란드 고추 잠자리 김사빈 2008.01.21 413
598 올무와 구속/강민경 강민경 2019.06.11 180
597 옷을 빨다가 강민경 2018.03.27 197
596 옹이 / 성백군 하늘호수 2020.03.25 104
595 와이키키 잡놈 / 성백군 하늘호수 2020.09.15 83
594 왕벌에게 차이다 성백군 2012.06.03 215
593 왜 이렇게 늙었어 1 강민경 2019.12.17 108
592 왜 화부터 내지요 강민경 2019.12.28 150
591 외눈박이 해와 달/강민경 강민경 2019.04.01 66
590 외도 / 성백군 하늘호수 2023.08.22 165
589 외등 / 성백군 하늘호수 2019.10.04 181
588 외로운 가로등 강민경 2014.08.23 442
Board Pagination Prev 1 ...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