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6 15:12

흔들리는 집

조회 수 23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흔들리는 집


                                                                   이 월란




언제부터였을까
노인성 백내장으로 한쪽으로만 보시던 내 아버지
버릇처럼 한쪽 손으로 회백색으로 흐려진 수정체를 가리시곤
뗏다 붙였다 뗏다 붙였다
<한쪽으론 정확한 거리측정이 역시 불가능해>
사물을 재어보시곤 하시던 내 아버지
저만치 슬픔이 아른거리며 다가올 때나
이만치 눈물겨움이 그림자처럼 스쳐지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쪽 눈을 가렸다 뗏다 거리측정을 한다
명절이면 표준말을 쓰는 곱상한 남매를 데리고 손님처럼 묵고가던
내 아버지 쏙 빼닮은 배다른 오빠가 문득 고향처럼 보고파질 때
나도 한쪽 손을 올렸다 내렸다 삶의 초점을 다시 맞춘다
가까운 것들과 먼 것들이 늘 뒤섞여 있던 내 아버지의 시야 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간다
알뜰히 물려주고 가신, 미워할 수 없는 불손한 유전자를 너머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 지령받은 사랑의 형질로
너무 멀어 그리워만지는 것들을
너무 가까워 안일해만지는 것들을
나도 한번씩 내 아버지의 거리측정법으로 파악해 보는 습관
아른아른 멀어진 걸어온 지난 길들은
생의 압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푸르스름한 눈동자 속에
흔들리는 집을 지어버린 나의 착시였을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0 꽃씨 이월란 2008.03.11 171
469 Daylight Saving Time (DST) 이월란 2008.03.10 188
468 울 안, 호박순이 성백군 2008.03.09 255
467 봄밤 이월란 2008.03.08 184
466 獨志家 유성룡 2008.03.08 160
» 흔들리는 집 이월란 2008.03.06 232
464 병상언어 이월란 2008.03.05 133
463 바닷가 검은 바윗돌 강민경 2008.03.04 248
462 날아다니는 길 이월란 2008.03.04 241
461 이월란 2008.03.03 175
460 詩똥 이월란 2008.03.09 356
459 자연과 인간의 원형적 모습에 대한 향수 박영호 2008.03.03 659
458 사랑 4 이월란 2008.03.02 118
457 강설(降雪) 성백군 2008.03.01 108
456 하늘을 바라보면 손영주 2008.02.28 242
455 대지 유성룡 2008.02.28 246
454 그대! 꿈을 꾸듯 손영주 2008.02.28 400
453 질투 이월란 2008.02.27 116
452 바람아 유성룡 2008.02.28 125
451 팥죽 이월란 2008.02.28 206
Board Pagination Prev 1 ...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 115 Next
/ 115